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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만나자, 놀자, 공부하자’, 밀양인문학캠프 참관기

지난 814()부터 19()까지 밀양 너른마당에서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밀양두레기금 너른마당 그리고 문탁네트워크(용인수지) 공동주최로 ‘2017 밀양인문학캠프 만나자, 놀자, 공부하자가 열렸다. 초등 논어서당, 청년 토크쇼, 어르신 인형극, 사주 명리학, 수지침, 동의보감, 인문학특강 등 열 세 개의 프로그램이 뜨거운 호응 속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캠프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하였고, 실제 캠프기간에는 1주일간 밀양에 머무르며 진행자로 활동했다. 캠프를 준비할 때는 어떤 프로그램이 밀양에 도움이 될까 고민을 거듭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겪어보면서 프로그램의 내용 못지않게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강의를 들은 분들이 질문을 하며 속내를 꺼내놓고, 어르신들이 투쟁했던 현장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그날의 긴박한 순간을 전해들으며 나누는 공감이 우리 사이를 더욱 가깝게 했다. 특히 밀양×문탁 포럼에서는 서로의 고민과 과제를 묻고 답하는 가운데 지금 밀양이 간절히 바라는 작은 승리의 열망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송전탑 반대를 위해 싸웠던 분들은 지금 외롭게 마을공동체 파괴의 후폭풍을 버텨내고 있다. 우리가 일주일간 묵었던 동화전 마을의 한 집에 아침 댓바람에 이웃 사람이 들이닥쳐 왜 연대자를 묵게 하냐, ‘친척 외는 들이지 말라고 고함을 치고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는 마을에서 소수로 고립되어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며 찬성파 주민들의 전횡과 잔치를 속절없이 지켜보며 분개하는 그 가슴앓이를 두 눈으로 보면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밀양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밀양이 바라는 것은 정부와 한국전력, 경찰공권력이 주권자이자 당사자인 주민들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이다.” 작지만 또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바람인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국가폭력에 대한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마을공동체 파괴의 진상파악도 없이, 고리1호기를 멈추어도, 신고리3·4호기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도 전력수급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밀양송전선을 강행한 이유에 대해서 어떤 해명도 없이 이 싸움을 끝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마지막 날은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서 230회차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밀양어르신들은 신고리5·6호기 공론화와 관련하여 불러주기만 한다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가 핵발전소건설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여전히 식지 않은 투쟁의 의지로 공론화가 탈핵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이 뭉클하게 와 닿았다.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하셨지만, 정작 고마운 것은 우리들이었다. 밀양인문학캠프는 또 다른 형식의 깊은 만남과 뜨거운 연대의 장이 되었다. 밀양이 일상의 평화를 회복하는 그날까지 밀양과 함께 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새롭게 찾아나가고 싶다.

 

 

탈핵신문 2017년 9월호 (제56호)

나은영(문탁네트워크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