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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탈핵신문 발간사. 후쿠시마 3주기, 진행중인 과거

2014년 탈핵신문 발간사

후쿠시마 3주기, 진행중인 과거

김준한 신부(본지 발행인)

 


 

후쿠시마, 바로 우리의 문제

2011311일 오후 246, 도호쿠 지방 산리쿠 앞바다에서 쓰나미가 일어나 동일본 대재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재난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거치면서 그 정점에 이르러, 3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진행중에 있습니다. 더더구나 그 영향은 땅과 바다, 그리고 대기 중으로 급속히 퍼져나가 복구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한중일 3국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후쿠시마를 기억하고, 이즈음에 탈핵의 기치를 특별하게 힘주어 외치는 것은 말 그대로 후쿠시마는 일본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 이 사고의 양상이, 핵발전소 증설계획을 부르짖는 영혼 없는 정치인이 집권하고 있는 3국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핵발전, 이중차별과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

후쿠시마 현이 도호쿠지방에 있고 도호쿠전력 관할지역이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도호쿠전력 소속이 아니라 도쿄전력 소속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3국의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낙후된 변방지역이, 각국의 대도시를 위해 희생되는 구조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또 하나는, 사고를 수습하러 투입된 작업원의 많은 수가 바로 그 지역 사람들이고, 그 중에는 대피소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조차 있다는 점입니다. 핵폭발로 피해를 입은 해당 지역주민이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피폭 노동자로 투입되는 이 이중 차별은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탈핵신문은 그 창간선언문에서 핵발전으로 말미암아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는 발전소 및 송전탑 주변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탈핵을 위한 싸움에서 책상머리가 아니라 그 현장에서 싸우는 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이와 같이 핵발전으로 인한 차별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특별하게 미래세대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2차 대전 말기 일본 육군은 핵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후쿠시마 현 남부의 이시카와마치에서 우라늄을 채굴하였는데, 그 우라늄 채굴에 동원된 이들이 바로 다름아닌 미래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시카와 중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미래세대에게 핵을 통한 전시체제를 강요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핵발전을 통해 새롭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탈핵신문, 탈핵의 절박함으로 정직하게 나아가겠습니다!

20121월부터 네 차례에 걸친 창간준비호, 그해 66일 발기인대회를 거쳐 공식 창간한 탈핵신문은, 아직도 갈 길이 참으로 멀게만 느껴집니다. 후쿠시마의 참상을 목격하고 많은 이들이 탈핵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그 열기가 조금씩 식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찬핵진영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더욱 정교한 논리와 물량을 동원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탈핵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고 스스로 자위할 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탈핵은 현실성이 없는 불가능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에 탈핵신문은 후쿠시마 3주기를 맞아 다짐해봅니다. ‘탈핵희망 국토도보순례단20126월부터 201431일까지, 86일간 1,609.1km에 걸쳐 전국의 핵발전소 지역을 정직하게 한 걸음씩 걸으며 탈핵을 외쳤던 것을 느껴보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도 함부로 관념속에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탈핵의 절박함을 정직하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다시 첫 마음으로 탈핵을 위해 나아가는 성실한 움직임을 조직하는데 작은 힘이 되고자 합니다. 그때 우리는 의례적인 행사처럼 후쿠시마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중인 이 비극을 오감으로 느끼며,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발행일 : 2014.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