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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할매-할배 길을 걸으며, 연대와 고마움을 느낀 하루 -밀양 행정대집행 2주년 행사 참관기

할매들은 궁금했다. 도대체 저 위에서 공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꽃과 나무는 얼마나 파헤쳐졌는지를.

 

그러나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공사는 버젓이 진행되었다. 지팡이를 짚고 공사 현장에 가려는 할매들을 막은 건 경찰이었다. 그래서 할매들은 경찰이 없는, ‘길이 아닌 길을 걸어야 했다. 경사가 급해 때로는 네 발로 기어야 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조차 지나갈 수 없는 길, 막혀 있는 길. 그 길이 바로 밀양 송전탑 싸움을 보여주는 듯 했다.

 

행정대집행 2주년인 지난 611, 할매들이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지금도 밀양을 잊지 않는 전국의 연대자 150여 명이 신청했고 그들은 할매길과 할배길을 나눠 걸었다. 위양사랑방에서 출발하여 126번 철탑을 지나는 할매팀과 동화전 사랑방에서 출발하여 용회사랑방을 지나는 할배팀은 도곡저수지에서 만나 문화제를 진행했다. 밀양 주민들을 향한 국가폭력의 극치였던 20146·11행정대집행 2주년을 기억하자는 취지였다.

 

평밭마을의 이남우 할아버지는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해마다 와줘서 정말 고맙다라며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참가자들에게 전했다. 길을 걷다 101번과 126번 송전탑 아래에서는 숲속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이 세상은 불타는 숲/ 그러나 도망가지 않겠어/ 우리가 모으는 물방울 그 하나하나가/ 이 세상의 숲과 마을 조금씩 되살릴 수 있다면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은 노래로 밀양 주민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을 보여주었다.

 

장장 9시간, 15km를 걸은 참가자들은 오후 7시 상동면 도곡저수지에 도착했다. 연대자를 비롯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40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녁을 먹었다. 문화제가 시작되고 도곡마을의 김말해 할머니는 잊지 않고 찾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참가자를 대표하여 한진희 씨는 너무 힘들었지만 101번 아래에서 바라보는 밀양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밀양이, 밀양의 산과 나무가 송전탑 때문에 파헤쳐진 게 안타까웠다고 말하며, “우리는 이 길을 오늘 한 번 걸었을 뿐이지만 할매·할배들은 이 길을, 이 산을 오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라며 할배길을 겪으면서 했던 생각과 느낌을 나누었다.

 

공연과 노래로 흥겨웠던 문화제에 밀양대책위가 준비한 영상이 나왔다. “소 잡는 칼로 천막을 북북 찢던 놈들/ 우리를 짓밟아 놓고 V자 기념 촬영하던 놈들”, 2년 전 행정대집행을 할매는 담담히 읊조렸다. 그 영상 말미에 할매는 다시 한 번 싸우겠다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버티며 싸우고 있습니더라고 말했다. 밀양 주민들은 영상을 통해 연대자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낍니더/ 법이 바뀌고 정책이 바뀔 때까지/ 철탑을 뽑아낼 때까지/ 저놈들이 사죄하고 무릎을 꿇을 때까지/ 밀양은 계속 싸울낍니더

 

참가자들에게 나눠 준 티셔츠에는 전국의 연대자에게 하고 싶은 할매의 말이 적혀 있었다. “우정은 산길과 같아서 자주 오고 가지 않으면 그 길은 업서 지나니.”

 

할매·할배들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사진설명 : 6월 11일(토) 밀양 행정대집행 2주년 행사에 참여한 연대자들이 '할배길'을 걷고 있다.

사진 제공=김우창


탈핵신문 2016년 7월호 (제43호)

김우창(밀양대책위 전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