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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청도송전탑을 반대한 불법인간 - 윤대한 (대학생) '두렵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두렵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밀양 어른신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은 작년 한해 전국을 애타게 했고, 지금도 그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밀양에 인접한 경북 청도군 삼평리에서도 지역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은 지난하게 전개되었고, 지금도 악전고투중이다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는 오는 36() 35, 81, 1억원의 법률기금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을 준비하고 있다. 탈핵신문은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대구경북민중언론 뉴스민(newsmin.co.kr)에 연속 게재된 <불법인간> 관련 꼭지 중 5번째, 대학생 윤대한 씨 기고문(216일자)을 양해를 얻어 게재한다-편집자 주.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하던 청도 삼평리 주민과 대책위 회원들은 벌금 폭탄을 맞았다. 지난해 721일 새벽 한전이 공사를 강행하자 이를 정면으로 맞서 저지했기 때문이다. 20여 명이 총 1억여 원에 달하는 벌금으로 삼평리 주민과 대책위 회원은 모두 불법인간이 됐다. 불법인간이 된 이들의 목소리를 뉴스민에 연속해서 싣는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윤대한 씨다. 그는 노동당 활동을 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삼평리 농성장을 지키다 경찰에 연행돼 벌금 2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200만 원을 모두 노역으로 채우려면 그는 복학을 할 수 없다. 두려우면서도, 건강해져야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뉴스민 편집자 주

 

 

윤대한 (대학생, 금오공대)


 

 

 

나는 금오공대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백수가 되기까지 1년 반이 남아있다. 나는 송전탑 공사와 핵발전에 대한 위험성과 폭력성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고, 노동자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이나 그들의 저항들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던, 그저 정치를 싫어하던 한 사람이었다.

구미에서 노동당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의 현실에 대해서 직시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어 밀양과 청도 삼평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함께 하지 못함에 마음 한쪽에는 항상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과 미안하다는 생각이 있던 것 같다. 그래서 괜히 도움될 일 없나 찾아다니기도 하고 구미에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시도도 하려고 했었다. 어쩌면 사람들 뒤만 쫓아 다녔는지도 모르지만.

삼평리에는 노동당이 농성장 지키는 당번일 때에 처음 갔었고, 이 후 계속 삼평리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삼평리를 위한 모금도 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 다음날에 한전이 이른 새벽에 기습적으로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날 삼평리에 가게 되었다. 삼평리를 향하는 길목엔 의경들이 타고 온 버스가 가득했고, 평화공원이 있던 자리에는 한전 측 인부들과 공사를 위한 자재들이 쌓여있던 걸로 기억한다.

몸이 좋지 않았다. 원래부터 배가 조금씩 아프고 빈혈기가 있었는데 삼평리로 갔던 날도 몸이 축 처지고 기운이 없었다. 원래 그때쯤에 쉬기 위해 본가인 충주에서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무리하게 삼평리로 향할 만큼 한전의 공사 강행은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농성장을 지킬 때, 같이 술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분들이 끔찍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생각하니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오해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날 연행된 것은 아니다. 그 당일엔 대책위 분들과 주민들이 연행되었다고 들었다. 당시만 해도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공사장 문 앞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공사를 나름대로 저지시키고 지연시킬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전은 헬기를 이용해 송전탑의 기초공사에 필요한 시멘트를 나르기 시작했다. 정문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당황하기도 했고 허탈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헬기의 운행을 지연시키고자 여러 방법을 강구했다. 그 방법의 하나로 레미콘 차량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차량을 운전하며 길을 막지는 않고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서행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무슨 욕심이었는지, 무슨 오만이었는지는 몰라도 경찰들을 얕봤(?)었고, 좀 지나칠 정도로 서행을 해 강제로 연행까지 됐다.

내가 도로에서 서행한 사실 때문에 도로교통법 등과 관련해서 처벌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검찰에 송치된 것도, 기소된 것도 모두 업무방해죄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경찰서로 연행되어 유치장에 있으니 피로가 풀리고 몸이 회복되었단 느낌이 들었단 거다. 그때 삼평리에서는 연행자들에게, 유치장에서 시원하게 씻고 푹 쉬고 오니 좋을 것이라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내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유치장에서는 좀 떨리긴 했어도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하진 못했던 것 같다. 경찰서에서 시간을 잘 때우고 삼평리로 돌아왔다가, 얼마 후 사정이 있어 구미로 돌아가게 되었다.

구미의 기숙사에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쉬고 있으면 몸도 점차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개학하기 전부터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되고 있던 것이다. 하루에 밥 한 끼도 먹기를 포기할 정도로 배가 많이 아팠고, 강의실까지 걸어가는 것이 힘이 들 정도였다. 도저히 학교생활을 못하겠다고 판단한 나는 고민 끝에 휴학을 하고 본가인 충주에 올라와서 병원에 몇 차례 들렀다. 간단한 병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조금은 생소하게 들릴 크론병(비감염성 염증성 질환으로 소화기관 전반에 걸쳐 원인 모를 염증이 생기는 만성질환이다.)’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연예인 윤종신이 앓고 있어서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대장 전체를 드러내고 인공 장루를 달고 평생 살게 된다던가, 개복수술을 해서 소장의 일부를 잘라내야 하는 등 심각한 수준까지도 갈 수도 있는 병이다.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여러 가지 약을 처방 받아 복용했지만, 상태가 악화되어 입원치료까지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개복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어쩌지, 만일 상태가 악화되면 누굴 탓해야 하나. 국가의 폭력이 한 개인의 건강에 까지 미친다는 사실에 원망도 들었다. 하지만 다행이 특정 주사요법으로 충분히 치료와 관리가 가능하다고 했고 실제로 점차 나아졌다.

하지만 퇴원하고도 후유증이 굉장했다. 이 병에서 주의 깊게 봐야하는 것이 염증 수치인데, 염증수치가 정상인처럼 좋게 유지되기 시작했는데도 치료하는 동안 밥을 잘 못 먹어서인지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일반인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 관리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사실 이때쯤엔 삼평리에서 연행되었던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법원에서 출석을 하라는 통지서를 보내오는 바람에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고 말았다.

법원에서 통지서를 받아서인지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 통지서를 받았을 땐 실형을 살게 되지는 않을지 벌금이 많이 나오지는 않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몰라도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시진 않지만, 조금이나마 실형을 살게 된다면 강제로 알려지게 된다. 안 그래도 그 전에 1년 휴학을 해서 더 기다리면 졸업이 많이 늦춰지기 때문에 빨리 복학해야 했는데, 복학은커녕 학교도 못 다니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걱정을 하며 변호사님께 물어봤더니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핀잔을 주셨다. 단지 걱정은 집행유예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그리고 솔직히 이번 일이 취업하는 데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알아보기도 했는데, 구직 시에는 보통 해외여행 결격사유만 없으면 된다고 한다. 벌금형 한번으로 해외여행 결격사유가 생기진 않는 거 같다. 집행유예도 마찬가지이고.

어찌됐든 벌금형을 받았다. 200만원이란다. 검사는 300만원을 구형했고 현명하신 판사님이 많이 줄여 주실 거라 기대 했지만 200만원 까지였다. 요즘엔 하루 노역하면 10만원으로 쳐 주기 때문에 노역형을 20일 살면 되는 정도인데, 그러다보니 정말로 갔다 올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몸도 회복이 안 됐었고 노역하게 되면 복학을 못할 거 같아서 정말로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법률기금이 마련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이번 사건 때문에 대구에 가기는 했는데 가서도 그냥 멍했던 것 같다. 대구까지 가기위해 전날 충분히 잠을 자고 갔는데도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고 그날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그때 무슨 얘기를 하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했다. 막상 공판에 출석 했을 때도 크게 긴장했었다. 몸에서 피로는 느껴지고 판사와 검사의 말에 대답도 해야 하니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입이 바짝 말랐다. 몸도 좋지 않고 긴장해서인지 괜히 내가 잘못된 일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꼭 범죄자가 되어있는 느낌도 들었다. 사실 범행사실만큼은 명확하기 때문에 변호사님과 상의해서 혐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야기했다. 마지막 검사의 뜻밖의 질문에는 뭐가 나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대답했던 것 같다. 나와서 들어보니, 쓸데없이 내 운전 실력이 좋다고 어필했었단다.

내 사건이 조금 일찍 진행되고 선고를 일찍 받은 편이라 법률기금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면 한 달이 넘어가는 관계로 항소를 넣게 되었다. 벌금은 한 달 내로 내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노역장에 끌려간다고 한다. 사실 한 번 더 법원에서 피고인석에 앉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걱정되기는 하다. 몸도 지금은 많이 회복되고 집에서 운동도 하기 시작해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당장 이번 일에 도움이 못되어 미안한 마음뿐이다. 충주에서 복학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번 일이 법적으로는 잘못된 일이란 것은 알지만, 도의적으론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잘못이 있다면 지나치게 자만을 했다는 점이랄까. 단지 나는 국책사업이란 명목으로 마을 하나를 도려내는 만큼의 불합리함에 마땅히 분노했을 뿐이며 저항했을 뿐이다. 힘없는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것뿐이지 한전이란 기업에, 직원들에게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어 손해를 입히려 한 것도 아니다. 아니 이제 와서 원한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내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으니.

건강해져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몸도. 마음도. 내가 건강해야 당당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까지고 무섭다고 벌벌 떨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난, 두렵지 않다.

 

발행일 : 2015.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