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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밀양.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황성원(에너지정의행동 회원·번역가)


 

밀양앓이농성장 개장 소식에 서슴없이 기차표를 끊다

밀양앓이라고 하던가. 밀양투쟁 연대자들이 만든 채팅방에서 주워들은 말일 것이다. 기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밀양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것이 당위나 불순한의도에서가 아니라 주관적 의지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강렬한 애착의 발로에서 진행되는 일들임을 보여주는 그 표현을 발견했을 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소싯적 부모님을 따라 얼음골에 갔던 것 말고는 밀양과는 그 어떤 인연도 없었던 나 자신이 611일 이후 겪고 있던 열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라고 부르는 이도, 가라고 떠미는 이도 없었지만 75일 세 마을에서 농성장 개장식이 열린다는 소식에 서슴없이 기차표를 끊은 것도 바로 그 정체불명의 열병 때문이었다.

아침잠을 설쳐가며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밀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지난주에 먼저 개장식을 한 위양의 농성장은 빈 논 한구석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알고보니 오전나절 위양농성장 설치작업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동래할머니 댁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가고 난 뒤였다. 동래할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도 분주하게 식사준비가 진행되던 중이었다. 난데없는 객이었지만 안주인은 전혀 싫은 내색 없이 상 한켠의 자리를 내어 주셨다. 과연 그 살벌한 127번 현장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거두고 먹이던 동래할머니이신지라 본가의 상차림은 가히 잔치상 못지 않았다. 오전내내 새 농성장 단장을 하시다 왔다고는 믿기 어려운 진수성찬이었다.

 

<동화전마을 사랑방 개장식, 사진제공 : 곽빛나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동래할머니댁 마당에서 마주친 그것128번 숫자로만 존재하던 고압송전탑

식사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다가 할머니댁 마당에서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불과 한달전만해도 128번이라는 숫자로만 존재하던 그것은 이제 서서히 그 흉물스러운 상체를 일으키는 중이었다. 몇 년에 걸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수 지었다는 집, 어쩌면 생의 마지막 순간 평화롭게 눈감기 위해 더욱 정성들여 지었을 그 집은 상식을 뛰어넘는 위용을 거만하게 드러낸 고압전류의 철탑 앞에서 안식처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쓰라린 모멸감만 환기시키는 가시방석이 되어 있었다. 달리 시선을 피할 곳도 없는 탁 트인 앞마당에서 예기치 못하게 뒤통수를 맞은 나는 저게 정말 그게맞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연대자들 앞에서 한번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동래할머니의 낯빛이 바뀌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제야 아침저녁으로 내 집 앞마당에서 모멸감과 싸우고 있을 할머니에게 새삼스럽게 그 고통을 상기시킬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사이 위양농성장을 단장하기 위한 미술팀이 한창 작업 중이라는 말을 듣고 간식배달 심부름을 나갔다. 질척이는 논바닥에 검은 천을 깔고 알록달록 물감과 페인트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중에는 일본어와 중국어도 섞여있었다. 마침 대만과 일본 국적의 연대자도 와 있었던 것이다. 대만에 있는 동아시아역사자원교류협회의 교수와 학생들이라고 했다. 농성장 단장 작업에 참여했던 대만과 일본 연대자들과 함께 평밭마을에 새로 들어선 농성장에도 가보기로 했다. 마을 안에 129번 공사현장이 있는 평밭마을은 여전히 마을초입에 경찰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일상적인 마을 진입로를 지나는데도 잠시 차를 세우고 방문목적을 물었다. 아무리 공권력이라도 평범한 통행을 저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시간을 오래 끌지는 않았다. 그만큼 인가와 공사현장, 그러니까 미래의 송전탑이 붙어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마을 초입에서 경찰이 잠시나마 우리 일행을 멈춰 세웠다는 이야기에 평밭의 할머니들은 심히 노여워하셨다. 마을 안에 경찰과 한전 인부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는 것도 고역인데, 이들이 방문자 통제까지 한다는 것은 참기 힘든 모욕이었던 것이다. 결국 평밭의 세 할머니는 상동면의 고답마을 농성장 개장식에 참가하기 위해 마을을 나가는 길에 입구에 들러 경찰들과 한바탕 대거리를 하셨다. 큰 싸움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지만, 아직 곳곳이 크고 작은 전쟁터였다.

고답마을의 개장식은 학창시절 농활에서 경험했던 마을잔치를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연대사가 있고, 고사를 지내고, 흥겨운 풍악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다시 결의를 다지는 사회자의 멘트만 아니라면, 병풍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송전탑만 아니라면 막걸리를 몇잔 걸치고 취기를 핑계삼아 가무라도 보태고 싶은 그런 풍경이었다.

세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개장식임에도 고답마을 한 곳에만 어림잡아 15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이 마치 내 일처럼 자랑스러웠다. 어쩌면 아직 전선이 걸리지 않은 송전탑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조금씩 피어오르기도 했던 것 같다.

 

<동화전마을 사랑방 재개장. 사진제공 : 곽빛나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논리로 맞서지 못하니, 무력으로 공사 강행밀양앓이청도앓이

다시 상행선 기차, 밀양을 나서니 바로 청도였다. 밀양의 미래인 청도 삼평리. 거기서도 어느 집 앞마당에선 송전탑 공사현장이 보일 것이다. 마을을 드나들 때마다 경찰들과 얼굴을 붉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611. 하지만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밀양의 촛불집회는 지금도 토요일마다 불을 밝히고, 청도 삼평리는 전운이 감돌지만 아직 결론을 단정짓기엔 이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서 참혹한 갈등이 바로 인간이 유인원의 서식지에 있는 발전소에 집착하면서 시작된다는 점은 아무래도 예사롭게 보아지지가 않았다. 심한 기시감(旣視感, 한 번도 본 일이 없으면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의식-편집자 주)이 드는 이 영화의 스토리에서 무엇보다 나를 화나게 만들었던 건 그 어떤 인간도 갈등의 시발이 된 최초의 총격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답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 미지의 대상을 살상하는 것은 인간의 고질적인 악습이긴 하지만, 사실 그 뿌리에는 공포가 있음을 영화는 똑똑히 보여준다. 사실은 겁이 나서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면서, 그 폭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과 재난을 초래하고 있음을 뻔히 지켜보면서 끝끝내 진정어린 사과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것이 인간이라면, 차라리 평화라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폭력을 불사하는 유인원이고 싶다.

사실은 당당하게 논리로 맞설 재간이 없어서 설득이 아닌 무력으로 공사를 강행했으면서,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초토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인사치레로라도 안타까움을 표할 줄 모르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부고 경찰이라면, 차라리 밀양에, 청도에, 독립된 공화국을 만들고 싶다.

밀양앓이가 청도앓이로 번지고, 청도앓이가 또다른 투쟁에 대한 열정으로 번져나가다 보면 언젠가 유인원이 지구를 정복하듯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날도 오진 않을까. 아니면 이런 바람마저도 내가 그저 중증 밀양앓이 환자임을 증명하는 증세일 뿐일까. 아무래도 조만간 청도행 차표를 끊게 될 것 같다.

 

 


 

지난 611일 밀양 행정대집행 이후, 밀양 주민들은 밀양 송전탑 시즌2-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를 통해, 밀양 송전탑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는 것을 선언한 바 있다. 마을별 농성장 개장식,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출범(77)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75일의 고답마을 농성장 개장식에서 낭독한 고천문(告天文)이 최근의 밀양 주민들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그 전문을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유세차~

갑오년 75일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새롭게 꾸민 뒤에 심신을 정결케 하옵고 천지신명께 고합니다.

고답마을은 앞으로는 맑은 강이 흐르고, 뒤로는 과수원과 푸르른 산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력이라는 괴물이 우리 마을 바로 뒤에 114, 115번 철탑을 세우려 하면서 지금 우리는 이 고통 속에 내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욕심 없이 오직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만을 원하였느나 그 뜻을 이루는 일이 왜 이리도 어려운 것입니까? 우리는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

지난 611, 수천명의 경찰이 몰려와 마지막 4개 농성장에 있던 주민들을 짐승처럼 끌어냈습니다. 우리는 울부짖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지은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강도짓을 했습니까? 우리가 도둑놈입니까? 지금 이 나라에서 누가 도둑놈이고 누가 강도입니까?

우리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분한 마음 서글픈 마음 억누르고 다시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는 행정대집행도 당했고, 손해배상소송도 당했고, 공사방해금지가처분도 당했고, 업무방해로 고발도 당했고, 도로교통법 공무집행방해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 검찰 문턱을 넘나들었고, 판사님 앞에서 고개 조아리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의 과정에서 또한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 수많은 전국의 연대자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우리를 버렸지만,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 이웃들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가 틀리지 않음을 알았으며, 원전의 위험도 깨닫게 되었고, 진실과 정의는 언젠가는 만천하에 밝혀지고 말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리의 소망이 있다면, 우리의 분함과 억울함을 만분의 일이라도 푸는 것입니다. 이 사태가 정의의 궤도 위에서 진실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억울하게 입은 고통과 피해에 대해 정부와 한국 전력이 무릎 꿇고 사죄하고 정당한 조치를 해 주는 것입니다. 송전탑을 뽑아내고 원전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한전과 정부 때문에 멀어졌던 이웃들과 화해하고 다시 마을 공동체가 복원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 이곳 사랑방에 보금자리를 칩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이곳 사랑방에서 함께 손님을 맞으며 함께 기도하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며 따뜻한 시간을 일구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손잡고 이 어려운 시간을 지켜갈 것입니다.

부디 이 사랑방을 호시탐탐 노리는 공무원 귀신, 경찰 잡귀, 한전 아귀새끼들은 싹싹 밟아 변소깐에 쳐 넣어주시고, 우리들 넉넉하고 따뜻한 웃음살만 번져 가는 사랑방이 되도록 천지 신명께서 도우소서. 오늘 우리가 차린 이 음식 함께 흠향하옵소서.

상향.

 


 

발행일 : 2014.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