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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삼평리] 뜨거운 삼평리의 여름을 함께 했던 이들에게…

전국이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과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투쟁만큼 치열하게 경북 청도군 삼평리 345kV 송전탑 반대 투쟁이 전개되었지만, 결국 마지막 송전탑은 세워지고 말았다. 하지만, 삼평리 주민들과 연대활동가들은 정부와 한국전력의 민·형사소송에 온몸으로 맞서며 그 후속 투쟁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제일 먼저 지난 69일 최창진 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역시 업무방해 혐의로 1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윤일규 목사(대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서창호 씨(대구인권운동연대)는 노역형으로 대신하겠다며, 지난 625고난받는 삼평리 주민, 연대자들과 함께하는 거리기도회를 가진 직후 대구구치소에 수감됐다. 청도 삼평리 송전탑 투쟁 관련 기소자는 24(60여건)으로, 본지는 이들의 계속되는 투쟁을 환기시키고자 수감된 최창진 씨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당사자에게 양해를 받고 전문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우선, 걱정마시라고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생활을 잘하고 있고 밥도 잘 먹고 있고, 잠도 잘 자고 있고, 30분씩이지만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 며칠간은 긴장된 상태로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신 덕에 괜찮아졌습니다. 계속되는 면회와 많은 서신들이 힘이 됩니다. 그리고 넣어주신 책들을 읽으며,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69일 선고 재판에는 아주 편한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해 복잡한 법정 안이 여유로워지길 기다리다, 들어가서는 변홍철 집행위원장님(청도삼평리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 편집자 주)과 살짝 눈인사를 하고 순서를 기다렸습니다(제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바깥에서 더 잘 아실 테니 줄이겠습니다). 무죄 선고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고재판 며칠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좀 쉬었다 오겠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선고재판이 있던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출석했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보나·변홍철 동지와 민뎅·원호와 간단한 인사와 이야길 나누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결국 저는 징역 6월을 선고받았고 법정구속 되었습니다.

채증자료에 잠깐 등장한 저의 손가락은 부당한 삼평리 송전탑 공사를 돕던 대한민국 공권력의 엄중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무시무시한 손가락이 되었습니다. 무려 6개월이라는 시·공간의 힘을 가진 제 손가락. 이왕 이렇게 될 거였으면 이 손가락으로 송전탑이라도 두 동강을 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삼평리의 뜨거운 여름을 함께 했던 동지들. 고백하건데, 법정구속된 처음 며칠간 저는 여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길 들으며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면 집행유예를 받아 얼른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렇게 해버릴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여름에 우리가 인정할 죄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인정할 것이 있다면, 이 나라의 권력은 땅의 주인이자 주권자를 몰아낼 수 있고, 이 나라의 자본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공권력을 움직일 수 있으며, 이 법 또한 그렇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반성할 것이 있다면

삼평리의 송전탑을 막아내지 못한 것,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막아내지 못한 것,

그리고 이윤만을 중시하는 이 세상에 제동을 걸지 못한 것일 겁니다.

동지들,

저는 반성하며, 언제까지라도 저 하나가 아닌 삼평리 투쟁의 정당함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진행 중인 재판에서도 더 많은, 더 중요한 동지들이 구속될 것이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우리의 정당함을 굽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보자면 삼평리 시즌2의 과제인 법적대응도 잘 준비해서 진행해야겠지만, 우리 사회의 에너지 정책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유지와 자본의 이윤증식을 위한 것임을 더욱 알리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핵발전소 반대 투쟁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탈핵 한국 사회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저도 그 일에 힘을 쏟겠습니다.

글로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덧붙임 : 지난주 삼평리 할매들의 면회가 이틀간 있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할매들의 자책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매들!! 할매들은 자책할만한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할매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날의 표정들을 거두어 주시고, 당당하게 굳세게 삼평리 투쟁의 중심을 잡아주세요. 먼 길 오시게 해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2015621일 일요일. 대구구치소의 한 방에서. 최창진 올림.

2015년7월(제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