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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울지마요, 이계삼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 어디서 올 지 모른다. 내 경우에는 20113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가 큰 전환점이었다. 이 사회에 대해 불만이 많으면서도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던 나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뭐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에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게 됐다. 정당의 당원도 되어 보지 못했던 내가 정당의 창당에 앞장서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마도 이런 게 인생인가 보다.

 

경남 밀양의 이계삼이라는 교사에게는 2012116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 경남 밀양의 70대 농민이 765천볼트 송전탑 공사 때문에 분신을 해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만큼이나 큰 충격이었다. 그날 뉴스를 접하고는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며칠 후에 이계삼 선생이 전화를 했다. 집회를 하는데 내려와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집회는 눈물바다였다.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동안 당해 왔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젊은 용역들에게 당했던 모욕에 대해, 한전과 정부의 허위와 기만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목숨을 끊은 70대 농민의 삶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도 국민인데,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고 분노와 탄식을 털어놓았다.

 

그날 집회가 끝난 후에 밀양역 앞에 있는 찻집에서 이계삼 선생 부부와 차를 한잔 마셨다. 이계삼 선생은 아무래도 자기가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아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자기 외에 사람이 없어서 몇 달 만이라도 자신이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당시에 이계삼 선생은 학교를 그만두려고 하던 차였고, 밀양에서 농사와 인문학 공부를 병행하는 대안교육기관을 만들 꿈에 부풀어 있었다. 평소에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을 막 시작하려는 참에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게 되었으니, 마음이 가볍지는 않아 보였다. 당시에는 나도 몇 달만 고생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했었다.

 

그러고 나서 4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이계삼은 4년 동안 밀양 주민들과 함께하며 숱한 일들을 경험했다. 셀 수 없는 날들을 농성장에서 보냈고, 길바닥에서 노숙을 한 날도 많았다.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면서 또 한분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병원과 경찰서, 법원을 숱하게 다녀야 했다.

 

그러나 내가 이계삼을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국회를 갔을 때였다. 꼼꼼한 그는 자료를 챙겨 국회의원실을 숱하게 돌아다녔다. 보좌관이라도 만나서 설득을 하고 잠깐이라도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국회의원실을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은 참으로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 일이다. 제대로 듣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고,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지 회의도 밀려든다. 그래도 그는 밀양주민들을 생각해서 그렇게 국회의원실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회 앞에 와서 절을 하며 간절하게 호소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그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밀양 주민들의 편이 아니었다. 이계삼과 주민들은 수천명의 경찰병력과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송전탑은 들어섰다.

 

그러나 끝난 것은 아니다. 이계삼은 이제 정치를 하고 있다. 413일 치러지는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출마했다.

지난 331일은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이계삼과 밀양 주민들이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동상 앞에 섰다. 밀양 주민들이 녹색당 당원으로 집단가입을 했고 녹색당을 지지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이날 기자회견의 순서에 이계삼의 발언은 없었다. 본인이 사양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에 사회자가 이계삼의 발언을 청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몇 마디를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그는 단 한순간도 정치를 잊은 적이 없었다고 얘기했다. 국회의원실을 돌다가 나오는 순간에 느꼈을 참담함과 모멸감, 그리고 그간의 고통이 몰려왔던 것 같다. 그 혼자 느낀 것이 아니라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아왔던 농민들이 느낀 참담함과 모멸감과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정치를 바꾸려고 그 자리에 섰다. 어려운 결정이고, 또 다른 고통일 수 있다. 그런 그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세상에서 뭐라도 해야지않겠나. 나는 이계삼과 함께 한다.

 

탈핵신문 2016년 4월호

하승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