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권(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30년이다. 그 사이 인간들은 얼마나 철이 들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핵문제에 관한 한 전혀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그 끔찍한 일을 겪고도 후쿠시마사고가 또 일어나지 않았던가! 사고 후 일본정부의 하는 모습을 보면 구소련 정권과 다를 것이 없다. 오죽하면 러시아 핵과학자가 일본정부의 은폐기도를 비난할까. 2020년 동경올림픽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일본정부는 철저히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개인이 핵사고와 관련하여 마음대로 조사해서 발표하면 처벌받을 수 있는 법령까지 만들었다.
얼마 전 <후쿠시마의 미래>라는 다큐멘타리를 보았다. 체르노빌 핵발전소사고의 현장을 조목조목 보여주며 몇 십 년 후 후쿠시마의 미래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후쿠시마가 아니라 지구의 미래로 보였다. 정녕 인류는 이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길거리에 나가보면 무심한 시민들이 바쁜 걸음으로 어딘가를 왔다 갔다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전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알건 모르건 자신이 상황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아예 포기하며 사는 건지. 누구 말대로 모두가 꿈속에 부유하듯 살고 있다. 이렇게 세상모르게 살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으면 그때서야 정부는 그동안 뭐했냐며 울분을 터트린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건이 꼭 그랬다. 그러나 뒤늦게 정부를 탓해봐야 소용이 없다. 정부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아니 정부라는 것이 애초부터 핵을 가지고 국민들을 기만해왔는데 그 정부를 탓해야 무엇이 나오겠는가.
핵발전을 선택한 정부들이 국민을 향하여 늘 하는 약속이 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모두 잘 살게 해준다는 것이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면 기업을 많이 일으켜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과 시설을 대형화해야 하는데 만약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투입되는 에너지가 대용량이면서 값이 싼 쪽이 유리하다. 모든 비용을 다 따지면 사실 핵에너지가 가장 비싸지만 국가는 가장 싼 가격에 핵에너지를 공급한다. 왜냐하면 한 순간에 이렇게 큰 에너지를 발생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세금과 재앙의 형태로 국민과 자연이 갚아야 한다.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결국 일부 기업과 기득권 세력만 살아남는다. 이것이 강한 정부를 선택한 국민들이 맞는 운명이다.
정직한 정부라면 핵발전의 위험성과 국민 부담에 대해 솔직히 말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책결정자와 해당부서 관리들은 핵마피아의 아바타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한 때 로비의 대상이었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로비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비밀주의와 이권으로 똘똘 뭉친 핵마피아의 존재 자체가 사회의 암덩어리인데 이들에게 정직함을 요구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한번은 국회에서 이들과 한 자리에 어울려 토론을 벌이다가 내 입에서 핵마피아란 말이 나오자 전문가집단을 대표하는 자가 정색을 하며 “마피아는 이탈리아의 범죄 집단을 일컫는 말인데 국민을 위해 일하는 우리에게 그런 용어를 쓰다니”라며 엄청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주제토론이 엄중한 자리라 꾹 참았지만, “방사능으로 전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당신들의 행위를 생각하면 차라리 마피아 갱단이 애교로 보일 지경이오!”라고 쏴주고 싶었다.
핵산업은 위험한 만큼 고도의 안전규정이 요구된다. 따라서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어떤 때는 단순한 부품 하나를 갈아 끼우기 위해 해외까지 보내어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공정 하나하나의 단가가 대단히 높다. 이 과정에서 규정 하나를 완화하거나 생략하면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다. 2012년에 전 국민을 놀라게 했던 ‘짝퉁부품 사건’은 이런 배경 아래 벌어진 일이다. 규정대로 해도 불안한 것이 핵발전소인데 거기에 안전을 볼모로 돈까지 챙겨먹다니! 문제는 이런 일이 업계 내부에서 오랫동안 관행이 되다시피 했고 위로 올라갈수록 돈의 단위가 커진다는 것이다. 굳이 이런 사례를 들지 않아도 핵발전은 자연과 국민에 대한 ‘범죄’라고 말할 수 있다. 범죄라는 단어가 핵발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모욕적으로 들릴 것이다. 운동을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는 말은 되도록 하지말자는 것이 내 지론이지만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제하기 힘든 때가 종종 있다. 후쿠시마사고 직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겨우 “이런 무책임한…” 정도였다. 당시엔 핵사고의 위험에 대해 잘 모르던 때였다. 이후 끔찍한 재앙의 속살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욕설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다가 나중엔 아예 말을 잃고 말았다. 한 마디로 말해 당장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이 지구와 인류문명을 한 방에 끝장내자는 것이다. 단 한 방에 말이다. 일본수상 아베의 표현을 빌리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모든 것을 망가뜨리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핵산업종사자들은 그 ‘한 방’이 결코 우리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핵물질의 속성상 우리가 아니라 그 어떤 곳에서든 ‘한 방’ 터지면 그걸로 끝이다. 사실상 체르노빌에 이은 후쿠시마의 ‘한 방’으로 인해 인류문명은 이미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멜트다운(노심용융)된 세 개의 원자로가 지금도 태평양과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고, 환태평양지진대 위에 세워진 54개의 핵반응로(=원자로)가 언제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은 입만 아플 뿐이다. 지난 정권에서 뒤늦게 시작한 대안에너지 사업마저 내팽개쳐놓고 핵발전을 계속하지 않으면 망할 것 같이 선전을 해대는 정부의 명백한 거짓말 몇 가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명백한 거짓말 하나, 핵에너지가 가장 싸고 효율적이다? 발전과정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폐기물 처리까지 감안하면 인류가 발견한 가장 비싼 에너지이다.
명백한 거짓말 둘, 핵에너지는 친환경에너지이다? 화석에너지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방사능 덩어리를 친환경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명백한 거짓말 셋, 핵에너지는 미래성장 동력이다? 핵산업의 선두주자인 미국은 스리마일 사고 이후 신규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사양산업이라는 것은 산업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신성장산업은 핵에너지가 아니라 자연에너지이다.
명백한 거짓말 넷, 핵발전소는 몇 겹의 안전장치를 했기 때문에 안전하다? 후쿠시마 사고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큰소리쳤던 일본에서 일어났다. 대부분의 핵사고는 자연재해보다 인간의 부주의와 실수로 일어난다. 핵반응로가 안치된 돔은 비행기가 돌진해 부딪쳐도 끄떡없다고 뻥을 치는데 핵발전소를 폭파하기 위해 굳이 돔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급수장치나 전력공급장치만 파괴하면 핵반응로는 스스로 폭발한다. 다시 말해 핵발전소는 누구라도 공격하기로 맘만 먹으면 언제든 터트릴 수 있는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명백한 거짓말 다섯, 지금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핵발전은 꼭 필요하다? 우리와 비슷한 비율의 핵에너지를 가지고 있던 일본은 후쿠시마사고 이후 핵발전 없이 벌써 6년째 경제대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생각은 않고 핵마피아들의 지갑만 챙기려드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명백한 거짓말 여섯, 방사능은 기준치 이하라면 안전하다? 저선량 방사능의 피해는 적어도 십년 이상 지나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체르노빌 인근지역의 암환자 발생율은 명백한 증거이다. 아무리 작은 양의 방사능이라도 세포를 파괴하는 능력은 같다. 기준이라는 것은 행정의 편의상 만들어 낸 개념이지 적어도 방사능에 관한 한 안전한 기준치라는 것은 없다.
일곱번째 거짓말, 이것은 거짓말이라기보다 무책임한 주장이다. 향후 10만 동안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는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해 언젠가는 적절한 처리방법을 발견할 거라고 믿는단다. 그 언젠가를 믿고 핵폐기물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만년이고, 인간이 만든 인공재료의 수명이 몇 백 년 넘는 것이 없는데 이런 황당한 변명을 하면서 핵확산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명백한 거짓말이 버젓이 통용되고 있을까? 그것이 공권력의 힘이다. 어용학자들을 고용하여 거짓을 참인 양 호도하는 논문과 성명서를 발표케 하고, 매년 수백억씩 들여 마치 융단폭격하듯 대국민 홍보를 하니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핵발전소 주위에 높은 울타리를 쳐놓고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하니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도리가 없다. 핵발전소의 운영만 놓고 보아도 민주주의라는 건 말뿐임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민주국가라면 이러한 거짓말이 일반화될 수도 없고 일반화되어서도 안 된다. 어찌 보면 개별적인 탈핵운동보다도 일반적인 민주화운동이 더 절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권력과 자본, 홍보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에 대항해서 벌이는 개별 시민단체의 탈핵운동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다. 따라서 탈핵운동가들은 지역과 중앙에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일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탈핵신문 2016년 5월호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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