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현(경북대 행정학부)
필자는 행정학자로서 한국의 원자력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편에 속한다. 공식적으로는 후쿠시마사고가 발생하기 전이었던 2009년부터 지금까지 원자력과 관련한 8편의 논문과 서적을 발표해오고 있다. 이처럼 부단하게 원자력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뿐이다. 바로 국민들이 핵에너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반론을 펼칠 수 있었다.
행정학에서는 ‘정책(policy)’을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핵을 바람직한 에너지로 보느냐에 의해 원자력 정책은 좋은 정책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나쁜 정책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정부도 국민들이 원자력을 어떤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하고 있으며, 매년 정기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라는 산하기관을 통한 인식조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원자력문화재단의 바람직함은 논외로 하고, 정기적으로 여론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이 자료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인식은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조사되는 항목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국민들이 신규 핵발전소에 대해 찬성하는가 아니면 반대하는가이다. 이와 관련해서 핵발전소 추가 건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후쿠시마사고 이후 약해지고 있으며, 최근인 2015년 조사된 바에 따르면 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발전소만 잘 관리하고 더 짓지는 말자는 의견이 54%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사고 당시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바람을 무시한 채, 신규 핵발전소를 끊임없이 건설했었다.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가 원전 건설에 너무 욕심을 가졌었다’고 비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동일한 핵발전 확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즉, 국민들의 바람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한국 정부는 핵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핵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필자가 탈핵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느 순간에 국민들이 핵발전을 좋아하고 핵발전소 건설을 선호하게 된다면, 필자는 반대할 명분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탈핵 진영이 끊임없이 시민들과 핵발전의 문제점을 고민하고 인식을 확산시키는 작업을 해주어야지, 학자로서 소신을 가지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나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핵발전은 핵무기와 쌍둥이 같은 존재이다. 핵발전은 원래부터 핵폭탄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발전이란 에너지도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파괴적 핵무기로 돌변할지 모른다. 사실 일본의 핵발전 정책은 핵보유국이라는 목표 하에 진행되었으며, 한국의 월성핵발전소가 박정희 정권 당시부터 플루토늄 핵폭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의혹은 국제사회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사하지는 않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미국과 체결한 원자력 협정에 의해서 핵무기의 개발이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실시하는 공식적인 조사는 없고, 언론사에서 비공식적으로 진행했던 여론 조사 결과들이 종종 발표되고 있다.
언론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핵무장에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 즉, 남한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아니면 미국의 전략적 핵무기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성향이 상당히 강한 것이다. 이를 국제사회도 알고 있으며, 국내의 찬핵론자들은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하고 있을 정도이다.
탈핵 진영은 현재 반핵발전 운동을 기반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렇지만 반전반핵 운동의 영역은 오히려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핵발전과 핵무기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핵주권에 대한 주장이 강해질수록 반핵발전 운동도 위협에 처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바람을 실현하는 정부의 노력’을 정책이라고 정의할 경우, 필자와 한국사회는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핵발전이나 핵무기처럼 복잡한 사안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공론조사를 통해서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여론부터 우호적인 상황을 조성해야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탈핵 진영은 여러 가지 통로로 반핵발전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반핵발전 공약을 내걸었던 정당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환경단체들도 핵발전 확대정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이제 탈핵진영은 핵발전 반대뿐만 아니라 핵무장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으로도 외연을 확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지금의 시점에서 남한의 핵주권에 대한 대항 담론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한국의 탈핵운동은 언젠가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탈핵신문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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