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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구보타 씨에게 띄우는 편지 -‘후쿠시마에 산다’를 읽고…

안녕하세요, 구보타 씨. 저는 구보타 씨를 후쿠시마에 산다라는 책에서 만났습니다. 이 책은 신문 아카하타에서 연재하고 있는 인터뷰 기사를 엮은 것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20147월에 소개되었어요. 이 책에 이야기를 담은 90여 명 중에서 당신에게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당신이 저와 같이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는 당연한소망이 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 부터인가. 초등학생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매일 아침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마스크가 답답하다고 싫어하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날이면 문득 후쿠시마의 엄마들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어휴, 거기서는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숨을 안 쉬고 살 수도 없고, 물을 마시지 않고 살 수도 없고, 뛰어놀겠다는 아이를 막을 수도 없고하면서 말이죠. 생각하면 한숨만 나왔어요. 그러나 전전긍긍하던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당신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싸우고 계셨네요.

 

생업을 돌려줘, 지역을 돌려줘!’ 후쿠시마 원전소송(생업소송)에 참여하는 4천여 명의 사람들 역시 당신과 같이 희망을 담은 사람들이겠지요. 핵발전소가 없는 상태로 돌려달라는 원상복구 요구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탈핵의 요구는 당연히도 미래의 삶과 희망을 담고 있으니까요. 다시 고기를 잡을 날을 꿈꾸며 어구를 손질하는 오사무 씨, 핵발전소 제로를 위해 태양광을 심는 미츠코 씨, 주민들에게 용기를 전해주고 싶어 노래하는 아베 준 씨, 기록을 남기고 전하고자 애쓰는 마리 씨 등.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준 90여 명을 비롯해, 후쿠시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후쿠시마에 산다는 것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아픔을 인내하면서 회복을 꿈꾸고 미래를 희망하는 투쟁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지난 해 11, 한국의 영덕군에서는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정부 계획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영덕 주민들 91.7%가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지요. 이 결과는 그 동안 영덕의 수많은 구보타 씨가 땀 흘려 노력한 결실입니다. 한국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가 인재라는 것을, 핵발전은 더 이상 인간이 감당해낼 수가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안심하며 공기를 마시고 / 안심하며 음식을 먹고 / 안심하며 아이를 키우고 / 안심하며 잠들 수 있는 것 / 2011년에야 깨달았네 /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구보타 씨, 저는 아라오 슌스케 씨가 시에서 담은 행복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 치열해져야겠어요. 또한 당신이 핵발전소사고의 피해자이지만,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바꾸려 싸우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치열하지만 따뜻한 웃음으로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고맙습니다.

20163월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탈핵신문 2016년 4월호

이영경(에너지정의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