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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열광의 시간이 지나간 자리

강은주 생태지평 연구기획실장

 

 

탈핵, 감핵, 찬핵 등의 언어는 이제 과학이나 환경, 혹은 에너지 정책의 언어가 아닌 정치와 진영의 언어가 되었다. 정책을 둘러싼 정쟁은 새삼스럽거나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진영의 논리가 사람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지운다는 데 있다.

 

핵발전소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언어는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과학을, 탄소중립을, 때로는 국가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핵발전소를 소환한다. 각각의 외피를 둘렀지만 기실 모두가 정치다. 물론 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토론과 논쟁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복수의 수단으로 정책이 동원되는 일은 유권자로서 달갑지 않은 일이다. 탈핵은 이제 정치적 원한의 언어가 되었다.

 

탈원전, 친원전, 감원전 등의 언어가 다수의 정치인들을 통해 무수히 쏘아올려지면서 본질은 흩어졌다. 최근 몇 년간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의는 한국사회의 에너지 전환이나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토론과정을 상실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기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저 타자를 향한, 상대진영을 향한 분노와 반대, 원한과 복수로 점철되어 있다.

 

탈핵 뿐인가. 에너지, 기후위기, 환경문제는 물론 다른 정책의제 또한 다르지 않다. 정쟁의 언어 속에 사라진 것은 사람이다. 상대를 타자화하고, 악마화하고, 배제하는 정치 속에서 우리는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 사람에 대해 토론할 공간을 잃어버렸다. 쉽게 동원되는 혐오와 증오 사이에 사람이, 생명이 끼어들 틈은 없다. 다음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나 의지는 희미해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이런 말들은 유권자들 또한 서로를 향한 공격에 열중하게 할뿐이다. 정책이 아니라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뿐이다.

 

정책이 정치를 위한 수단과 방법이라면, 정치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칼날같은 원한의 말들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탈핵이나 환경의 문제는 과학의 언어도 복수의 언어도 아니어야 한다.

 

선거는 다양한 정치적 의제가 분출하는 거대한 토론의 장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한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넘어 더 많은 정책과 비전이 경쟁하고 논의되고, 성찰을 기반으로 하는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상대를 절명시켜 없앨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선거는 우리사회의 미래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무엇을 성찰하겠다고 하며, 또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하는가.

 

이 열광의 시간과, 이 시간이 지나간 뒤, 여전히 남은 핵발전소와 더 많은 핵폐기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내일이다. 그래서 이 시간이 지나간 뒤, 채우고 준비해야 하는 것은 내일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우리 모두일 수 밖에 없다.

 

탈핵신문 2022년 3얼(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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