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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탈모와 탈핵

∥칼럼 

 

탈모와 탈핵

 

 

 

김수진 정책학 박사

 

 

 

대선의 계절이다. 차돌보다 단단한 양당체제에서 유력후보들은 사활 건 승부를 벌이며 온갖 말을 쏟아낸다. 얼마 전 이른바 소확행을 주겠다며 집권당 후보가 탈모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을 공약했다. 다수의 탈모 유권자들이 환호했고 전통적 지지자들은 묘수라고 반겼으며, 일부 의원은 증거로 숨겨뒀던 자신의 머리를 까고공약의 효능감을 극찬했다. 반대당은 포퓰리즘이라며 반발했으나 표 계산을 하며 뒤늦은 소확행 공약으로 받아칠 기세다.

 

 

탈모가 경우에 따라 고민을 넘어 고통이 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제약된 재정에서 보험적용을 받기 위해 인고의 줄에 서서 기다리는 건강 취약계층이 존재함도 사실이다.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에라도 기대어 보장받고픈 건강하고 안전한 공동체의 미래다. 소확행들이 이 미래에 우선한다면 세대별, 지역별, 성별 등 온갖 맞춤형 소확행 서비스가 퀵 배달을 기다리며 주문될테고, 국민에게 잠시 열린 이 제한된 정치적 시공간은 신속배달 플랫폼 경제로 도배될 것이다.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은 절대절명의 미래란 그 어떤 것과도 교환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불과 6개월이 지나면 거대 혜성이 지구로 떨어지는 일촉즉발 상황을 앞두고 권력과 자본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위기를 이용한다. 하늘을 올려보고 늦었지만 우리의 미래를 각성하고 총력 대응하자는 룩업들에 대해서 과장과 거짓에 속지 말고 당장의 생활에나 신경쓰자는 돈룩업들이 대립하면서 사회는 쪼개지고 마침내 종말이 온다. 혜성의 자원 가치를 주장하면서 돌진하는, 혜성을 기술로 분해하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국민을 안심시키는 영화 속 자본가는 마치 소형원자로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낙관적 핵기술 대안을 주장하는 현실 속 어떤 갑부 과학자 겸 기업가와 오버랩된다. 영화에서 대통령은 몇 주 뒤의 중간선거를 위해 임박한 대충돌에 눈을 감아버리는데, 대선을 앞둔 지금의 우리 후보들은 기후재앙보다는 당장의 표를 긁어모으기에 급급하다.

 

한때 이런 위기에 대응해 전환을 외치던 우리 정치는 지금 과연 어디에 있나? 탈핵을 주창했던 현 집권당이 막강한 의회 권력까지 장악했으나 집권 내내 제대로 된 관련 입법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거꾸로였다. 수출신화, 경제 대국의 논리가 핵발전수출을 통해 부활하는가 하면, 신한울 3·4호기 계획인가 취소 결정은 다음 정권으로 슬쩍 밀려났다. 핵폐기물 문제는 전임 정권의 공론화 재탕으로 이어지다가 별 성과 없이 핵발전소 부지에 계속 보관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으로 발의되었다. 하지만 그 법엔 <부지 내 저장시설>의 운영 기간도, 지역주민의 선택권 보장도 없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였나? 여당 후보는 쏟아지는 핵폐기물의 처리를 위해 모라토리움 선언이라도 해야할 판인데 불과 5년 만에 탈원전감원전으로 유연하게(?) 전환해버렸다. 탈원전을 우려한 중도표확보의 미몽이 작용했으리니, 버나드 쇼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렇게 생겨난 빈자리에 돈룩업의 소확행이 서둘러 쑥쑥 들어설 기세다. 대선이라는 정치적 시공간에서 탈모가 탈핵을 밀어내는 순간 미래는 없다.

 

탈핵신문 2022년 1월(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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