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왜 상여을 끄는가 _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의 7년간의 분투⑧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
시간은 흘러간다, 야속하게도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를 쉽게 밝히기 어려운 답답한 와중에 황분희 씨는 또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북도의회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지역경제’, ‘원전 관련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경북도는 국내 가동 원전 23기 중 절반인 11기가 소재하고, 국내 원전 발전량의 47%를 생산하는 우리나라 최대 원전 집적지이자 생산지이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지역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경북도민들은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인 원전을 정치적 이념으로 몰아가고 있는 동안 탄탄했던 원전 관련 산업은 총체적 부실로 변해가고 기업들은 원전 전문인력 감축과 함께 성장동력을 상실하는 등 도산의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제305회 경상북도의회 회의록, 2018-11-29)
이에 황분희 씨는 2019년 2월 5일 <뉴스풀>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정말 그 얘기 듣고 이해가 안 갔어요. 말하자면, 원자력 계속 돌리라는 거 아닙니까? 아니 후쿠시마 사고 나고, 지진이 나고 삼중수소가 나오는 등 위험하단 걸 아는데도 왜 더 짓겠다고 하는지 전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이렇게 피해 보는 주민들을 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지, 원전 돌려서 나오는 세금이나 이익만 자꾸 생각하니까. 저희는 더 목소리 내야죠.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저러는 건지. 우리 상황을 잘 알려줘야죠”라며 피해자에 대한 대책보다 경제와 산업 등을 우선시하는 경상북도의회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뉴스풀, 2019-02-25).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좋은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2019년 4월 3일 제7회 임길진환경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임길진환경상 심사위원회 지영선 위원장은 “월성뿐 아니라 고리, 울진, 영광 등 다른 원전지역 주민의 이주 등 건강 보호와 아울러 탈핵을 앞당길 수 있도록 격려하고자 심사위원들의 일치된 결론으로 월성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를 올해의 임길진 환경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에 이주대책위 황분희 부위원장은 “5년이라는 세월을 천막을 치고 이주를 염원하면서 너무도 긴 세월 힘겹게 여기까지 왔다”라면서 “힘들 때마다 그만하고 싶었으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핵이라는 것, 핵발전소가 나쁘다는 것을 안 이상 이제는 내가 아니라 우리 후손들, 미래세대를 위해 핵발전소가 없어질 때까지 열심히 활동하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로이슈, 2019-04-03).
이처럼 대책위를 만들어 꿋꿋하게 상여시위를 비롯한 다양한 투쟁방식을 통하여 이주대책을 요구하던 그들이지만,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탈핵 정책을 공식화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갈수록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경주 5.8 지진 당시 대책위를 직접 방문하고 고리1호기, 월성1호기 폐쇄를 통해 ‘탈핵 정책’을 펼치고 있는 현 정부이기에 변하지 않는 상황이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민주당이 다시 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과 똑같다는 보장이 없어, 탈핵에 대한 관점이.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하고 관계가 있었고, 이주대책위도 방문해서 얘기도 들어줬잖아. 그런데,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싸워야 하는 거야. 국민의 힘으로 정권이 넘어가면, 원자력을 더 지으려고 할 거고. 이주는 생각도 안 할 거야. 날짜가 하루하루 가면서 마음만 더 타들어가지. (황분희, 2021년 5월 14일 인터뷰 중)
해결되는 것 없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유독 안타깝고 절실한 이주대책위.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더딘 속도로 하나씩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코로나로 다수의 사람이 행사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2021년 8월 27일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라는 이름의 천막농성 7주년 행사를 기획하였다. 이 짧은 문장이야말로, 7년간 대책위의 분투와 다양한 활동, 그 과정에서 느낀 희망과 절망을 함축한 말이 아닐까.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
2021년 8월 27일. 월성 핵발전소 인접마을 주민들이 대책위를 만들고 이주를 요청한 지 2576일이 되었다. 그들이 매주 끄는 관과 상여는 이미 해져 있고 농성장 앞 안내판에 적힌 글자들도 희미해졌다. 그러나 7년간의 노력과 활동들이 있었기에, 핵발전소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특히, 2020년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월성 핵발전소 근처에 사는 주민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역학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예산 16억 9천만 원이 2021년 환경부 본예산에 확정·편성되었다. 이번 예산반영으로 주민건강영향조사는 주민들이 겪고 있는 건강문제에 대한 정부차원의 조사 결과에 따라, 향후 주민들이 요구하는 문제 해결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조사는 이르면 2022년 상반기부터 월성원전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을 대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특히 주민들의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양이원영 의원은 그동안 환경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의 3개 부처와 지속적인 협의와 조율에 나서 예산편성과 사업추진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원전을 운영하며 국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국가가 져야 할 당연한 책임”이라며 강조하였고, “이번 예산편성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동안 고통받고 있는 주민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마련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에코저널, 2020-12-03). 또한, 이날 행사에 직접 참여했던 양이원영 의원은 전날인 8월 26일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하였다. 이주대책지원법안에 따르면, 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 중 이주를 희망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이주지원사업을 실시하고 그 비용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부담하도록 하였다.
비가 많이 올 것이라던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경주에는 뙤약볕이 내리쬐었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정도로 무더웠다. 그러나 이주대책위를 비롯한 주민들은 7년 전 처음 상여시위를 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여복’을 입고 상여와 관을 끌었다.
상여가 월성 핵발전소 정문을 지나자 제일 선두에서 상여를 끌던 주민 중 한 분이 갑자기 삼보일배를 하였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누군가의 심드렁한 표정과 삼보일배를 하는 주민을 동시에 봐야 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했다. 나중에 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선두에서 삼보일배를 했던 성혜중 씨에게 “힘들지 않았냐고, 잠깐이었지만, 왜 삼보일배를 하셨나”라고 물으니, 그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 우리가 얼마나 절실한 마음을 갖고 버티고 있는지, 오늘만큼은 우리 중 누구라도, 나라도 더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안 해 본 것 없고, 안 가본 곳 없고,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 없는 주민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무엇을 통해서 자신들의 절실함이 남들에게 전해질지 고민하고 있었다. 7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들의 싸움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20년 10월 중순부터 2021년 7월 초까지 8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월성에 머무르며 주민들의 직함이 적혀 있던 관을 직접 끌었다. 이주대책위원회의 투쟁은 결국, 사회의 관심 밖에 있던 ‘안전하게 운영 중’인 핵발전소에서 매일 방출되는 액체, 기체 상태의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을 문제 삼고, ‘탈핵의 이념과 가치’가 가동 중지를 넘어 폐로와 핵폐기물 처리 문제까지 가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 몸에서 검출된 위험물질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무엇으로도 거를 수도 없기에 정부와 한수원은 핵발전소 가동으로 건강 피해를 보고 있는 주민들에게 이주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주대책위의 처절했던 투쟁이 올해로 끝나,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이주’가 실현되어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외쳐본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
<마지막 회>
글쓴이: 김우창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에너지정책, 밀양송전탑 갈등, 핵발전소 인근 주민 피해 등에 관심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사업 합의의 의미와 맥락: 합의 주민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전의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갈등 관리전략으로 인한 이해관계자 변화와 공동체 붕괴」 등이 있다.
탈핵신문 2022년 1월(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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