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상여를 끄는가 _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의 7년간의 분투⑦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자는 없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선언한 첫 번째 정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촛불로 뒤덮였던 대한민국은 ‘탄핵(彈劾)’과 ‘탈핵(脫核)’으로 요약된다. 2016년 12월 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 의결서를 받는 동시에 헌법상 대통령 권한 행사가 정지되었다. 2017년 1월 21일 제13차 범국민행동 촛불 집회에 참여한 황분희 씨는 ‘방사능에 24시간 노출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문제를 외면하는 정부, 핵발전소를 계속해서 늘리려는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며 “핵발전소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정부”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월성원전이주대책위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중에 찍은 사진(사진=경주환경운동연합, 2018-12-07)
제19대 대선 당시 ‘탈핵 정책’은 유력 대선 후보 5인 가운데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고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 모두가 내세운 공약이었다. 이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와 2016년 지진 발생 이후 핵발전소의 안전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건설 중인 핵발전소의 건설 지속 여부나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해서는 후보마다 차이가 있었다.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탈원전 로드맵’을 마련하여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까지 확대, 심상정 후보는 2040년까지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여 핵에너지 의존으로부터 탈피, 유승민 후보는 기존 원전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 안철수 후보는 신규 원전 건설 금지와 안전한 에너지로의 대체를 내세웠다(에코저널, 2017.5.1.).
2017년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41.1%의 득표율(1342만 3800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핵발전소를 점차 줄여나가겠다고 선언하였고, 무엇보다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던 바로 다음 날 농성장에 직접 방문하여 주민들을 만나 ‘이주대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말한 문재인 후보의 당선 소식은 이주대책위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준 이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었어요. 괜찮냐고 묻는 데 정말 고마웠어요. 우리 이야기를 다 듣고 또 함께 풀어나가자고 하셨어요. 대통령 되면 탈핵하겠다고 했으니, 그리 해주시겠죠." _ (황분희 씨 인터뷰, 에코뷰 2018-12-07)
역사적인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황분희 씨의 바람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에너지전환’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 백지화,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 및 월성 1호기 폐쇄’ 등을 발표하였다. 이와 별개로 박근혜 정부 국가 에너지위원회는 2015년 6월 12일 “원전 산업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영구 정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라는 이유로 고리1호기의 가동중단을 결정하였고 이를 운영사인 한수원에 권고한 바 있다. 이에 한수원은 ‘계속 운전’(수명연장) 신청을 하지 않기로 의결하였고, 2016년 6월 한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하였다. 약 1년간 원자력안전기술원은 기술심사와 원안위의 사전검토가 이뤄졌고, 2017년 6월 9일 원안위는 ‘영구정지 운영변경 허가안’을 원안 그대로 의결하여 고리1호기의 영구정지를 최종 확정지었다(한겨레, 2017-06-18).
국내에 처음 도입하여 1971년 착공을 시작하고 1977년에 가동한 고리1호기는, 대한민국 최초의 핵발전소이자 처음으로 폐쇄된 핵발전소로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오늘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모아 나가기를 기대한다”라면서 “정부와 민간, 산업계와 과학기술계가 함께 해야 하고, 국민들의 에너지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전면 백지화하고, 오래된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라며,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9월에 발생했던 경주 지진도 언급하였는데, “대한민국은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며,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원전 안전성 확보를 나라의 존망이 걸린 국가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할 것”이라며 탈핵정책의 불가피성을 강조하였다. 행사에 청와대로부터 초청받아 실제 핵발전소가 멈춰지는 것을 현장에서 본 황분희 씨는 기대감과 함께 희망이 보였다고 말했다.
"정말 발전소를 세울 수 있구나, 라는 걸 느꼈지. 차츰차츰 세워나가면 월성도 세울 수 있겠구나. 그냥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지금까지는 위험하지도 않고, 계속 가동한다는 말만 들었으니까. 희망이 보였지." _ (황분희, 6/2 인터뷰 중)
그럼에도 끝나지 않는 싸움
도보 순례와 청와대 앞 1인 시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되었고 공식적으로 탈핵 정책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이주대책을 바라는 주민들의 요구는 요원해 보였다. 2017년 9월 7일 천막농성 3주년이 지나면서 이주대책위 주민들과 경주환경운동연합은 ‘이주 요구’를 현재처럼 농성장과 월성핵발전소 정문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경주 시내를 직접 돌며 거리 홍보를 펼치기로 하였다. 이들은 ‘시청 네거리, 경주세무서, 성동시장, 법원과 중앙시장, 시외버스터미널, 황남빵, 경주역을 거쳐 경주 시내 중심지’를 돌며 매주 도보 순례를 하였다.
황분희 씨는 문재인 정부 들어 구체화된 탈핵 정책을 통해 희망을 품었고, 무엇보다 핵발전소가 정지되는 것을 보며 이주대책도 곧 해결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다수호기의 월성 핵발전소 근처에서 사는 주민에게는 한 기의 핵발전소 가동을 멈추는 것만으로는 위험과 불안함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다. 2017년 9월 7일 시작한 그들의 ‘탈핵 도보 순례’는 2020년 4월 26일 100번째 도보 순례를 기록할 정도로 꾸준히 그러나 절실하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 나갔다.
2014년 8월부터 4년 넘게 이주대책을 요구해온 대책위 주민들은 “많은 시간이 흐르고 정부가 바뀌어 탈핵이 진행되어도 우리의 문제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도 이주 관련 법 개정안이 제출되었지만 감감무소식”이라면서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2018년 11월 19일부터 23일까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였다(환경운동연합, 2018-11-19).
황분희 씨는 “한수원에 가면 산업부 관할이라고 하고, 산업부에 가면 한수원 담당이라고만 하니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자는 없는 형국이다. 어디에 가서 피해를 호소해야 할지 몰라 청와대에 왔다”라며 1인 시위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그녀는 “일천 명 살아도 국민이고 백 명이 살아도 국민이고 열 명이 살아도 국민이다. 아무리 사는 사람이 적다고 해도 월성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며, “마을 사람들 소변에서 한 명도 빠짐없이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원자력발전소 돔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아이들을 안전한 곳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황분희 씨와 함께 1인 시위를 한 김진선 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천막농성장을 찾아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 약속을 잊지 말라”며 이주대책 마련을 거듭 당부했다.
일인 시위 마지막 날인 2018년 11월 23일 그들은 청와대 행정관을 만나 자신들의 뜻이 담긴 편지를 전달하였다. “문재인 대통령님, 우리도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살도록 해주십시오. 유별나게 좋은 곳에서 살고 싶은 게 아닙니다. 아침에 눈 떴을 때 핵발전소의 돔이 보이지 않으면 됩니다. 혹시 모를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에서 좀 더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면 됩니다. 우리 자녀들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나오지 않는 정도의 곳이면 됩니다. 갑자기 급전이 필요해서 밭 한 뙈기 내놓았을 때 팔아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됩니다. 더이상 주민에게 희생만을 요구하지 말아 주세요.”
주민들은 정부가 바뀌어도 그들의 요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끈질긴 이들의 농성과 요구는, 주민들의 싸움도 쉽게 부서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김우창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에너지정책, 밀양송전탑 갈등, 핵발전소 인근 주민 피해 등에 관심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사업 합의의 의미와 맥락: 합의 주민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전의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갈등 관리전략으로 인한 이해관계자 변화와 공동체 붕괴」 등이 있다.
탈핵신문 2021년 12월(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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