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핵신문 좌담회
고준위핵폐기물 문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고준위 특별법안 평가를 중심으로
김성환 의원이 국회의원 24명의 서명을 받아서 9월 15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고준위 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했고, 현재 이 법안은 해당 상임위에 회부된 상태다. 탈핵신문은 이 특별법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탈핵 활동가들과 11월 1일 온라인으로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는 남태제 녹색당 탈핵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정수희 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가 참석했다.
좌담회는 크게 특별법안 평가, 습식보다 건식이 안전하다는 주장과 지금보다 안전한 관리 규정을 만들어 영구처분장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부지 내 저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는 독립적으로 운영 가능할지, 고준위핵폐기물 대응 방안을 토론했다. 진행은 용석록 탈핵신문 편집위원장이 맡았다.
고준위 특별법안 어떻게 바라보나 |
용석록 탈핵신문 편집위원장: 김성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준위 특별법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우선 전반적인 평가를 먼저 해보자.
남태제 녹색당 탈핵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 고준위 특별법안 중 ‘독립적인’ 방폐물 관리위원회를 만들어서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다루겠다는 방향성은 긍정적이다. 지금까지 핵폐기물 관리 계획을 산업부가 주관했는데, 관리 내지는 폐기 결정 등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가 산업부가 주관하기 때문인 듯하다. 방폐물 관리위원회 신설은 ‘사용후핵연료’를 폐기물로 규정하거나 핵폐기물 문제의 근본적인 것을 공론화할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관리위가 그걸 제대로 할 수 있는 목적의식을 가져야 하고, 시스템도 갖춰야 하고, 관리위 구성이나 목적 등이 잘 설계되었는지 평가가 필요하다.
특별법안 중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부지 내 저장’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이 애매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합법화하는 법안이라고 본다. 이 법안은 부지 내 건식 저장을 계속 늘려나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한 법안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막아내는 게 필요하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 독립적인 행정기구를 만들어서 고준위핵폐기물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위원회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다만 지금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진전이 많이 없는 상태에서 이 법 자체로는 여러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아쉬운 부분은 이 법안 역시도 부지 내 임시저장 시설을 기정사실로 하여 보완 대책을 마련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부지 내 저장 시설’을 여전히 한국수력원자력이 관리하는 시스템이기에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안전성 문제나 수용성 확보를 위한 절차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규정조차 없었던 과거보다는 진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월성핵발전소 맥스터(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혹은 지역 공론화 과정에서 벌어졌던 여러 논란을 이 법이 다 해소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정수희 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 핵폐기물 관리를 전담할 위원회 구성이 의미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이것이 지금 어떤 의미가 있나. 결국에는 지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가 맥스터를 건설하기 위한 재검토위였다고 우리가 평가하듯이 고준위 특별법 역시 지역별로 건식저장시설을 짓기 위한 법안이고, 이것이 이 법안이 갖는 실질적인 의미라고 본다.
임시저장시설과 관련해 그간에는 법적인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경주 같은 경우 예전에는 한수원 마음대로 지었고, 작년에는 재검토 과정이라는 걸 통해 건설을 결정했다. 고준위 특별법안대로라면 향후에는 핵발전소 짓듯이 공청회만으로도 임시저장시설을 지을 수 있다. 이 법안은 발전소 부지마다 임시저장시설 건설을 허용해주는 법안이고, 이것이 이 법안이 가지는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저는 이번 법안에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를 전담하는 위원회를 신설한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내용이 들어간 것은 우리 운동의 성과다. 다만 이번 법안에서 제32조에 있는 부지 내 저장 시설과 관련한 여러 규정이 들어간 것은 법안을 발의함에 있어서 성급했다고 본다. 이 부분은 더 많은 공론이 필요한 영역이므로 삭제가 필요하다.
법안 전면폐기 입장도 있는데 여당이 입법 발의한 이상 그대로 통과되던가 일부 수정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법안논의 과정에 참여해 주민이나 탈핵진영에 유리한 법조문이 담기면 좋겠는데, 전면폐기를 주장하면 보이콧 운동밖에 안 된다. 보이콧보다는 법안에 개입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 같고, 독소조항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용석록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울산의 경우는 처음에는 독립적인 행정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논의했지만, 막상 법안이 나오고 나서 고민이 굉장히 깊어졌다. 법안이 통과되어 관리위원회가 운영되면 어떤 공론 과정을 거치더라도 핵발전을 중단하지 않는 한은 부지 내 저장 시설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관리위가 가동되면 울산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문제에 있어 탈핵진영 입장에서 의견을 모아낼 수 있을까. 더 많은 시민사회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대안 없으니 부지 내 저장하고 규제 강화? |
용석록: 두 번째 소주제로 넘어가 보자. 고준위핵폐기물 습식저장보다 건식저장이 안전하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더라. 대안이 없으니 영구처분장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부지 내에 지금보다 안전하게 관리 규정을 만들어서 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던데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남태제: 중간저장시설 논의를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모든 핵폐기물 처리를 위해서는 우선 일정 시점에 탈핵·탈원전을 한다고 명확하게 전제해야 한다. 탈핵을 한다는 전제가 없다면 끊임없이 핵폐기물이 나오고, 수조는 계속 가득 차고, 건식저장시설로 빼내야 할 핵폐기물은 계속 늘어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중간저장시설’에 대해 논의하는 것과 일정 기간 못 박고 논의하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첫 번째 주제에서 말씀을 덜 드렸었는데 김성환 특별법에서 32조는 무조건 빼야 한다고 본다. 32조의 ‘부지 내 저장’ 규정이 어떤 식으로든 들어가면 이 법안은 전면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또 32조를 뺀다고 해서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법안은 방폐물 관리위 역할에 핵폐기물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부분은 별로 목적으로 두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관리위는 결국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위원회가 될 수밖에 없다.
방폐물 관리위는 핵폐기물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편중된 부분부터 해결하는 공론화를 해야 한다. 핵폐기물과 핵발전이 지역 주민에게 부담을 짊어지게 하고, 그 전기 생산의 혜택은 수도권을 비롯한 산업계와 자본 쪽으로 가고 있다. 방폐물 관리위는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바로잡는 평등의 원칙과 안전성의 원칙 이런 것이 관철될 수 있는 핵폐기물 처리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주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김성환 의원의 법안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 대단히 부족하기에 이 법안이 부분적으로 수정되어 통과되는 방식보다는 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대체 법안이 만들어져서 평등의 원칙과 안전성의 원칙을 같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게 안 된다면 녹색당은 김성환 법안을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재훈: 습식저장이냐 건식저장이냐 이게 안전성 측면에서 면밀한 검토는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월성 핵발전소 맥스터의 경우 안전성을 고려했다기보다 당장의 포화에 달한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한쪽에서는 최종처분장 혹은 부지 바깥에 중간저장 시설을 당장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그런데 오히려 그 부분에 있어서 정부나 사업자가 필요한 일을 너무 안 하고 있다는 지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처럼 발전소 부지 인근 사람에게만 이 문제를 전가하는 것이 반복될 것이다. 월성 맥스터도 몇 년까지 보관한다는 규정이 안 되어 있다. 기한 없는 허가를 해줬다는 것도 정말 황당한 것이다.
주민들이 그동안 얘기했던 것처럼 부지 내 저장 시설이 영구처분장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중간저장과 최종처분장에 대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어떤 논의와 사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적극 의견을 낼 필요가 있다.
정수희: 탈핵 진영이나 환경운동 진영이 좀 심하게 도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생각이다. 탈핵이 법제화되지 않은 상황에 임시저장시설을 지금 법제화하겠다고 한다. 이 법안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하게 간파해야 한다. 핵폐기물 저장 시설 안전 이야기를 하는 것이 탈핵 혹은 환경운동 진영에 ‘도덕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장치라는 생각도 든다.
임시저장시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겠더라. 그 첫 번째가 안전성의 문제인데, 습식으로 보관하고 있는데 이게 안전상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건식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무도 확답할 수 없는 사안이다. 두 번째는 고리1호기처럼 발전소 해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최종처분장이 없는 상황에서 해체를 시작하면 임시저장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가 핵발전을 계속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해법 없음에 대해 왜 탈핵이나 환경운동 진영이 도덕성을 발휘하는지, 그걸 우리가 책임질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재훈: 건식과 습식 무엇이 안전하다는 비교보다는 지금 수조 안에 조밀하게 보관하고 있는 습식저장 방식이 위험하다는 것이고, 건식이 무조건 또는 습식이 무조건 안전하다는 측면은 아닌 것 같다. 다른 나라 중 중간저장시설을 습식으로 운영하는 나라들도 있다. 문제는 지금 우리나라는 수조 안에 너무 빽빽하게 핵폐기물을 저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태제: 지금 민주당 정부가 이런 법안을 내놓는 것은 2085년 탈원전을 전제로 하기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만들어온 로드맵에 입각한 법안에 대해서 찬성이냐 반대냐 이런 프레임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니까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탈핵 시점을 새롭게 받고 그것을 법제화하는 운동부터 먼저 하고 난 다음에 핵폐기물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하는 단계가 정상적인 수순이다.
녹색당은 탈핵 법제화를 위한 탈핵 기본법 제정을 고준위핵폐기물 문제와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지금 고준위 특별법안이 현안으로 논의되니까 이걸 어떻게 탈핵 법제화 쪽으로 밀고 나갈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이상홍: 기술적으로 검토가 더 필요하겠지만, 습식보다 건식이 더 안전하다는 주장에는 큰 틀에서 동의가 된다. 프랑스 등 습식저장 중심으로 중간저장 시설을 운영하는 나라는 안전성 문제보다는 재처리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와 연계해서 습식저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논의되는 건식저장시설 건설이 결국은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기 위한 것이기에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는 동의할 수 없다고 꾸준한 논의를 통해서 확인한 바가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 고준위 특별법안의 32조는 기본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32조 내용 중에 발전소 부지 내 저장시설에 저장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총량은 발전소 설계수명을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곱씹어 볼 필요는 있겠다.
저는 발전소 내의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소내 중간저장시설’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지난 공론화에 임할 때도 그랬다. 부지 내에 저장시설을 건설 안 하는 것이 우리 탈핵 진영의 원칙적인 입장으로 존중하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운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의 바람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발전소 부지 내에서 계속 건설되는 맥스터 같은 시설을 반대하는 투쟁을 계속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우리 역량은 지금 안 되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5년 후, 혹은 10년 후를 상상해보면 발전소 부지에 우리의 목표와 무관하게 맥스터 같은 시설들이 한두 개씩 늘어날 것 같다는 위기감이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설을 제대로 규제하고, 주민이나 운동 진영이 저항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규제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있다. 임시저장시설을 부지 내 중간저장시설로 규정하고 구체적으로 규제에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용석록: 울산 입장에서는 중간저장시설이 부지 안에 들어서게 되면 우리나라 고준위핵폐기물의 약 70%가 들어서면서 사실상 핵폐기장이 되는 것인데 이를 찬성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부지 내 임시서장시설’을 규제를 강화해 ‘부지 내 중간저장시설’로 안전성을 강화하더라도 이것이 법제화되는 순간 그 시설이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만약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부지 내 중간저장시설’에 동의한다면 과연 울산 시민 내지는 핵발전소 최인접 주민들은 이 시설을 인정할까.
이상홍: 사실 그런 의문이 들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지는 국면이 되었다.
특별법안을 마주하면서 원칙론과 현실론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면 울산의 입장은 원칙론적인 입장이고 제가 말씀드린 것은 현실론이다.
무한정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우리가 승리하면 원칙론에 가깝게 간다. 또한 전선을 어디에 칠 것인지 의견이 다른 것 같다. 울산의 경우에는 지금 김성환 의원이 내놓은 이 법안에 전선을 치는 것이다. 32조가 문제가 많으니까 여기에서부터 전선을 치고 김성환 의원과 여당에서 추진하려는 이 체제를 무너뜨리자는 것 아닌가.
그러나 지금 우리 역량에서는 무너뜨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유리한 내용으로 법안을 입안하고 이 법안이 실행되면 부지내 저장시설 건설을 둘러싸고 현장에서 갈등이 표출될 것인데 거기에 전선을 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용석록: 힘이 없다고 특별법에 대해서 대항입법안이나 수정안에 전선을 친다면, ‘전선’이 만들어질 수 있나. 이미 거기에 합의했는데 어떻게 막아내는 싸움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상홍: 건설 여부는 주민들이 결정한다고 명확히 해야 한다.
용석록: 이것은 탈핵진영만이 판단해야 할 몫은 아니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폭발적인 힘이 또 생길 수도 있다. 미리 예단하기는 좀 어려운 거 아닌가. 전선을 어디에 칠 것인가의 문제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방폐물 관리위 독립적 운영 가능할까 |
용석록: 세 번째 주제는 특별법안 주요 내용 중 하나인 고준위 방폐물 관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 가능할까. 이에 대해서 꼭 비판적이 아니라 대안적인 얘기도 괜찮고. 또 관리위원회가 운영된다면 탈핵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남태제: 지금 현재 법안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면 별로 독립적으로 운영이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리위는 가장 중요하게 핵폐기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목적으로 하는 내용을 담아야 하고, 그 목적을 실현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즉 안전성과 평등의 원칙에 따른 사회적 합의 과정을 관장하는 기구여야 한다.
두 번째로 구성은 위원들이 그때그때 와서 사무처의 보고를 받는 비상임 구조이니 위원 수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운영은 항상 시민들이 참여하는 열려 있는 운영 체계가 됐으면 좋겠다. 소수가 사무처의 보고를 받고 결정하는 닫친 구조는 정부의 방향에 쓸려갈 가능성이 크다. 시민사회를 향해서 항상 오픈된 구조에서 논의되고 항상 공적으로 보고가 되고 견제될 수 있는 그런 원칙으로 운영하는 관리위가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김성환 법안의 관리위원회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재판이기 때문에 그렇게 운영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안재훈: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상임위원을 둘 거면 상임위원들이 더 많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상임위원 중심으로 안 갈 거면 비상임위원회 인원을 좀 늘리는 것도 방법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지금 탄소중립위원회처럼 위원들이 너무 많으면 밀도 있는 논의를 못 하거나 오히려 공무원들이 낸 안 중심으로 거꾸로 가는 문제도 있어서 적정한 인원이 필요하다.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이 관리위 당연직으로 들어가지 않고 위원들을 모두 위촉하는 방식이 그나마 나은 방식이라고 본다. 정부 부처의 장관들이 당연직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정부 중심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크다. 또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잘 수렴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조직이면 좋겠다. 그리고 특별법안을 보면 위원회 아래에 공론화 기구를 별도로 구성하게 돼 있어 그런 측면도 검토가 필요하다.
정수희: 독립행정위원회(방폐물 관리위원회) 구성이 탈핵운동 진영의 요구였다고 몇 분이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 물론 핵폐기물과 관련해 여러 논의를 하면서 독립행정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여타 다른 것들을 다 잘라먹고 독립행정위원회를 최우선이라고 한 기억은 없다.
탈핵진영이 독립행정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은 핵폐기물 문제에 대해서만 온전히 이야기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기구 구성을 요구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상황은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때의 공론화위원회도 그랬고 문재인 정부의 재검토위원회도 그랬듯이 나름 독립성을 가지고 활동한 기구였음에도 제대로 안 되었다. 핵발전를 계속하려는 의도가 반영됐었고 그러한 영향력이 끊임없이 발휘되었었다.
이런 지형 속에서 새로운 관리위원회 신설이 탈핵진영에 주는 의미가 별로 없다고 본다. 방폐물 관리위원회 구성이 그간 탈핵진영의 과제가 하나 해결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상홍: 우리가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대응해 오면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 정책을 핵발전 진흥세력으로부터 떼어내야 한다는 게 오랜 요구였다. 이러한 요구가 국가정책에 반영될 때는 어떤 제도적인 형태로 반영된다. 독립행정위원회(방폐물 관리위원회)는 우리가 계속 요구해 온 핵폐기물 관리 정책을 핵진흥 정책에서 떼어내는 첫 출발이라고 본다.
문제는 독립행정위원회가 얼마큼 실효성이 있겠는가를 보면 다른 분들이 지적했듯이 별로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독립행정위원회가 자신의 목적에 맞는 지위와 체계를 만들어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 역할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역할이 거버넌스의 역할보다는 끊임없이 두드리고 때리는 역할들이지 않을까.
초창기에 가장 큰 벽은 새롭게 설립되는 독립행정위원회의 인적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철학의 부재일 것이다. 여전히 ‘원전 진흥’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고준위핵폐기물 대응 어떻게 할까 |
용석록: 네 번째 주제인 고준위핵폐기물 대응 앞으로 어떻게 할까의 논의를 해보자.
남태제: 핵폐기물 문제야말로 불평등 구조의 가장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핵폐기물의 문제가 핵발전소의 지역주민에만 국한되어 있는데 이것을 전국적인 관심사, 특히 수도권 시민들의 관심사로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기 전에 핵발전 문제나 핵폐기물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던 때가 안면도 사건과 부안 항쟁, 딱 두 번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 국민들이 핵발전과 핵폐기물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부안 항쟁 당시에는 2004년도 1월에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들과 서울대 교수 등 60명이 핵폐기물을 관악산에 유치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었다. 그런 정도로 국가적인 관심사였다.
핵폐기물 문제를 다시 전 국민의 문제로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가 관건인데 핵폐기장 부지가 전 국민적으로 논란의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저는 행정위원회가 만들어지든 안 만들어지든 핵폐기물 문제가 전 국민의 공론 대상으로, 논쟁의 대상으로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영구처분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간저장 시설의 입지 논란이 시작될 거로 생각한다. 최근 서울 강남에 핵발전소를 그려놓은 상상도가 경향신문에 실렸더라. 저는 그런 식의 관점에서 보도가 나오고 이런 문제 제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법적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분명히 탈핵 기본법을 제정하는 운동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 하위 과제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와 처분에 관한 법안을 만드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지면서 평등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올바른 고통 분담 차원에서 핵폐기장 입지 문제가 논의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재훈: 저도 고민하는 지점이 상당히 남태제 위원장과 비슷하다. 부안 핵폐기장 싸움과 경주 방폐장 문제 이후에 지금 국민들은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울산에서는 지역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항의하고 했지만 이에 대해 왜 사회적으로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할까. 핵폐기물 문제가 나와는 상관 없다고 여기니까 그럴 것이고, 지역이 점점 더 고립된다는 생각이다.
최종처분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고 핵산업계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부와 핵산업계에 이런 사안에 대해 제대로 해 나갈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잘 안 되고 있으면 왜 안 되고 있는지 그들 스스로 말해야 한다. 우리가 너무 부지 내 저장 문제만 고민하다 보면 거꾸로 ‘중간처분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화살로 돌아오면서 대안이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얼버무리는 상황이 될 것 같다. 도대체 어디에다 어떤 식으로 핵폐기물을 보관할 것인가. 우리 안에서도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정수희: 지난 경주 맥스터 건설 결정 과정에 핵발전소 문제와는 달리 핵폐기장 문제가 국민은 물론이거니와 시민사회 내에서도 확장이 힘든 이슈라는 생각을 했다. 시민사회조차 핵폐기물 문제에 관심도가 낮은 걸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슈 파이팅이 좀 필요하겠다.
내년 선거에서 핵폐기장을 유치하는 후보가 서울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최근에는 SMR(소형모듈원전)을 여의도에 혹은 서울시청에 유치하라는 방식으로 요구를 해간다면 이 의제가 그 지역 주민, 그 지역의 사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겁고 진지하게 접근하기보다는 반어적인 방식으로 시민들한테 이 문제를 알리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핵폐기물 문제는 부지가 직접 거론되지 않는 이상 이슈화가 좀 어려운 상황인 거 같다. 주민들이 고통받기 전에 탈핵진영과 환경운동 진영이 이 문제를 반어적인 방법으로라도 사회적인 책임,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리는 계획이 있으면 좋겠다.
이상홍: 저도 핵폐기물 처분장을 핵발전소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 건설하는 고통분담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일차적으로 서울에 하는 게 맞겠다. 이왕이면 아까 남태제 위원장 말씀처럼 과거에 서울대 핵공학과 교수들이 관악산에 묻으라고 했으니까 근거도 있고, 관악산을 주요 후보지로 하자는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탈핵을 하더라도 핵폐기물 문제는 남으니 충분히 고통 분담을 얘기할 수 있는 소재가 된다.
앞으로도 핵산업계나 정부는 핵발전소 지역에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계속 건설하려고 할 것이고, 그때마다 지역은 큰 문제가 되리라고 예상하는데, 그때 지역 운동이 고립되어서 안 된다. ‘핵폐기장을 서울로’와 같은 운동이 꾸준히 펼쳐지면 지역 주민들이 용기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큰 싸움들을 잘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시민사회가 핵폐기물 문제는 전 국민이 짊어져야 한다는 운동을 힘 있게 꾸준히 펼쳐 나갈 필요가 있다.
기록과 정리: 김현욱 탈핵신문 사무국장 / 용석록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11월(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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