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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의 7년간의 분투⑤ _ 삼중수소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불편한 진실

∥ 그들은 왜 상여를 끄는가 _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의 7년간의 분투⑤

 

삼중수소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불편한 진실

 

 

나는 우리 마을, 양남 나아리 우리 집이 정말 좋아요. 

봄이 오면 집안 가득 이쁜 꽃들이 피고,
여름 바닷가에 가면 시원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할머니가 삶아주신 옥수수를 먹으며 마당에서 물놀이도 하고,
가을이 되면
예쁜 색으로 익은 사과랑 감도 따고 고구마도 캐고,
겨울이 되면 옹기종기 모여 우리 밭에서 자란
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우리 집이 정말 좋아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우리 집이 정말 좋아요.
근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아빠 엄마와 우리만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고 늘 말씀하세요. 
하지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사는 우리 집이 좋아요.
- 영화 <월성> 중 -

 

 

 

다섯 살 아이 몸속에서 발견된 삼중수소

 

대책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리 주민 40명의 요시료(소변 샘플)를 모아 직접 검사를 의뢰하였다.

 

검사 결과 40명 모두에게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 대책위는 검사에 모두 참여하였고, 특히 삼대(三代)가 함께 사는 황분희 씨는 당시 다섯 살이었던 손자를 포함한 가족 모두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던 황분희 씨는 28.1Bq/L, 갑상샘항진증을 앓고 있는 남편은 24.8Bq/L, 당시 다섯 살 손자는 17.5Bq/L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특히 다섯 살 손자는 40명 평균(17.3 Bq/L)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성인 외에도 5(17.5), 8(12.2), 9(9.53), 10(8.54), 112(8.8411.4), 13(10.8), 14(18.0), 19(7.37) 9명의 아동과 청소년이 포함되었는데 최소 7.37에서 최대 18.0Bq/L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 이에 대하여 대책위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취지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하였다.

 

 

삼중수소는 장기적으로 노출될 때 백혈병이나 암을 유발하는 위험이 있다고 국제 논문 등에서 보고되고 있다. 방사선으로 인한 건강피해는 성인에 비해 어린아이로 갈수록 더 민감하다. 원자력발전소가 정상 가동 중이더라도, 삼중수소 등 방사성물질이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되었다. 특히, 이번 조사로 식수와 음식물 외에 호흡을 통한 방사능 오염이 추정되고 있어 광역상수도 대책이 될 수 없다. 원전주변에는 암환자 발생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와 원전사업자는 기준치 이하라고만 하면서 방사성물질에 의한 건강피해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없다. 원전가동으로 건강 피해를 입고 있는 주민들에 대해 이주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자회견문, 2016-1-21)

 

 

무엇보다 이들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검사했던 자료를 인용하여, 더 많은 핵발전소가 가동될수록 더 높은 수치의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주민들의 뇨시료에서 검출되는 삼중수소량은 핵발전소 가동률과 연관이 있었다.

 

대책위에 의하면 201532일은 월성1호기가 재가동을 시작하기 바로 전으로, 수명연장이 통과될 때까지 2년 반 동안 월성1호기를 제외한 세 개의 핵발전소만 가동되었다. 이후 대책위가 40명의 주민을 검사했던 201511월부터 12월은 네 기의 월성 핵발전소가 모두 가동되어, 8.369.93이었던 평균값이 17.3까지 올랐다. 또한, 201612월은 2016912일에 발생했던 지진으로 약 3개월간 가동하지 않았던 네 기가 모두 재가동을 시작한 날로 삼중수소 농도는 8.27로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이처럼 주민들 몸이나 평생 마셔왔던 지하수에서 느린 폭력을 드러내자, 이주대책을 마련하라는 대책위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여전히 삼중수소가 암을 비롯한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명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삼중수소 피폭에 의한 잠재적인 피해자가 됨으로써 자신들의 몸을 근거로 한수원과 정부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되는 과정 혹은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조사는 곧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가족들에게 이 위험한 곳에서 함께 살자고 설득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스스로를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든 것이다. 마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부모, 조부모들이 자식과 손주의 건강을 생각하여 구입한 살균제가 오히려 아이들의 건강을 빼앗은 것처럼.

 

 

집에 들어오면 울산까지 출퇴근하는 게 한 20~30분밖에 안 걸리거든. 그래서 딸 내외가 여기로 들어온 거야. 손자는 여기서 임신해서 놓은 거지. 내가 애를 봐준다고 하지 않았으면 위험한 곳에서 같이 살지 않았을 텐데. 후쿠시마 사고 날 때부터 불안한 게 딱 적중을 한 거야. 이것만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처음에는 진짜 머리가 돌로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내가 지금은 전보다 많이 무뎌진 거지. 처음같이 그러면 정말 못 살 거야. 그래도 늘 불안한 생각은 갖고 있지. 애들 놀다가 코피가 나도 왜 저렇게 코피가 나지, 자꾸 걱정이 되고. (황분희, 3/9 인터뷰 중)

 

 

절망을 넘어 적극적으로

생물학적 시민권요구하기

 

 

황분희 씨는 첫째 딸 내외에게 들어오라고, 애 키우는 것이 걱정이면 자신이 여기서 키워주겠다고,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30년 전 이 마을에서 딱 3년만 살고 나가려고 했지만, 산과 바다가 좋고 동네 인심도 좋아 고향인 안동보다 더 오래 살았다. 핵발전소가 있는지도 모르고 이 마을에 들어왔고, 그곳에서 손자가 태어나 살고 있다.

 

삼중수소라는 눈에 보이지 않던 위험물질을 밝혀내고 비판해왔던 과정은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과 함께 나 때문에 가족이 위험한 곳에서 살고 있다라는 절망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족을 위해 이주를 요구하며 싸워왔던 자신이 가족에게 함께 살자고 권유한 또 다른 가해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설적인 과정은 아드리아나 페트리나(2013)노출된 삶: 체르노빌 이후 생물학적 시민권(Life Exposed: Biological Citizens after Chernobyl)을 통해 강조한 생물학적 시민권’(Biological Citizenship)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페트리나(2013)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방사능 피폭과 질병 사이의 과학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피폭자들은 자신의 몸에 드러난 질병을 통해 피해자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생물학적 시민권은 국가와 전문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무엇이 질병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구조를 극복하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시민권을 쟁취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 대책위는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깨달은 뒤 소변검사를 통해 몸속 삼중수소를 확인하고, 이후 상여시위와 이주를 위한 법제화를 요청함으로써 건강하게 살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영화 <월성> 마지막 장면에서 황분희 씨의 손녀는 이제는 더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함께 행복하게 살자라는 뜻이 담긴 편지로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사는 우리 집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평범한 소망이 이곳에 있다. 또한, 소박해 보이지만 당사자에겐 간절한 소원을 위해 상여시위를 하는 누군가도 이곳, 월성에 있다<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김우창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에너지정책, 밀양송전탑 갈등, 핵발전소 인근 주민 피해 등에 관심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사업 합의의 의미와 맥락: 합의 주민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전의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갈등 관리전략으로 인한 이해관계자 변화와 공동체 붕괴」 등이 있다.

 


탈핵신문 2021년 10월(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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