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핵기술 개발의 역사⑤
일본 핵연료주기 정책, 그 실패의 역사와 미래
이번 호에서는 일본의 핵기술 중 핵연료주기 정책의 흐름과 현황을 짚어본다. 일본은 상업용 핵기술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핵연료주기 확립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특히 재처리를 통한 다량의 플루토늄을 축적하여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된 논쟁을 야기해왔다. 일본은 이러한 의혹을 피하면서 재처리를 지속하는 방법으로 여러 기술을 개발했지만, 그 궤적을 보면 그야말로 실패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핵무기 비보유국 중 유일한 재처리 국가
일본은 핵기술 개발 초기부터 핵연료주기를 확립하고자 했는데, 이는 일본만의 특징은 아니고, 핵기술 개발을 추진하던 국가들의 공통된 목표였다. 일본은 1956년 핵연료를 개발하기 위해 ‘원자연료공사’를 설립했다. 원자연료공사는 우라늄, 트리튬 자원개발과 핵연료물질 생산과 가공, 재처리와 수출입을 담당했다. 당시는 아직 일본이 자국 내에서 핵원료 자원을 채굴하여 생산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시기였다. 일본은 1962년에 재처리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영국에 예비설비를, 프랑스에 상세설계를 의뢰했다.
재처리는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 후 가공하여 재사용하는 과정인데,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기에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문제가 된다. 역사적으로 봐도 재처리는 2차 세계대전에서 핵무기 개발을 위해 시작한 군사기술이었다.
일본의 첫 재처리공장인 도카이재처리공장은 1971년 6월 착공하여 1977년 가동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1974년 5월 인도의 핵폭발실험을 계기로 미국은 핵비확산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일본에도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일본은 1977년 9월 플루토늄 전환시설 건설을 연기한다는 조건을 걸고 도카이재처리공장에서 2년간 99톤까지 플루토늄을 단체(單體)추출할 수 있다는 미국의 허가를 받았다. 우라늄과 혼합한 형태가 아닌, 플루토늄만을 단독으로 추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이 이와 같은 결정은 석유위기로 인해 침체된 세계 경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기존 핵보유국 이외 국가들의 핵 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던 미국이었지만, 경제적인 이익 관계에 따라 예외를 둔 것이었다. 이후에도 일본은 교섭을 반복한 끝에 1988년 7월 미국의 포괄 동의를 받아 30년 동안 자유롭게 재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핵무기 비보유국으로서는 유일하게 재처리를 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고, 그 결과 현재 46톤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협정은 2018년 7월 30년의 만기가 도래했으나, 종료신청을 하지 않는 이상 유효하여 자동연장된 상태이다.
실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핵연료주기 확립
일본의 핵연료주기 확립의 성공은 재처리기술과 고속로 개발 여부에 달려있다. 일본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고속로에서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속로는 감속시킨 중성자를 사용하는 경수로와 달리 속도가 빠른 고속중성자로 핵분열을 일으킨다. 일본의 최종적인 목표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의 혼합산화물인 MOX(Mixed oxide) 연료를 사용하는 고속로를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일부 경수로에서 MOX 연료를 사용하여 발전하는 플루서멀(Plu-thermal)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재처리로 인해 쌓여가는 플루토늄양을 감축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12기의 핵반응로에서 플루서멀을 진행할 목표를 세웠으나,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핵발전소가 거의 가동을 중지했기 때문에 현재 플루서멀 진행 핵반응로는 4기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경수로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부피가 4분의 1로 줄고, 관리 기간도 8000년으로 단축되며, 고속로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부피가 7분의 1로, 관리 기간은 300년으로 줄어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재처리가 핵연료의 ‘재활용’이라며 자원 활용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이른바 ‘자원 빈국’인 일본이기에 핵발전과 재처리를 지속해야 한다는 담론과 연결된다.
또한 일본은 재처리한 후에 남은 핵분열성 물질을 유리고화체로 만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일본 언론은 통상적으로 핵쓰레기라고 부른다)을 심지층 처분하는 것을 핵연료주기의 마지막 단계로 보고, 부지를 찾고 있다.
△ 일본 핵연료주기 모식도 (출처= 일본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 홈페이지)
하지만 일본 정부가 추진해 온 핵연료주기 확립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도카이재처리공장은 가동을 시작한 지 반년 만에 우라늄과 플루토늄 분리 공정 파이프에 구멍이 생기고, 저준위 방사성 폐액 아스팔트 고화 시설에서 화재와 폭발이 발생했다.
1994년 가동을 시작한 고속증식로 ‘몬쥬’도 1995년 나트륨 누출 사고를 일으킨 이후 가동하지 못한 채 2016년 폐로할 수밖에 없었던 초라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조 엔이 넘는 예산을 들였지만, 단 250일밖에 가동하지 못한 것이다. 몬쥬는 폐로 전부터 경제성 문제와 냉각재로 사용하는 나트륨의 위험성, 핵반응로의 폭주 가능성, 핵무기 제작으로 전용될 가능성 등과 관련된 논란이 있던 터였다. 몬쥬는 상용로를 개발하기 위해 기술성능과 경제성 등을 시험하기 위한 ‘원형로’였는데, 이러한 실험단계 기술부터 파탄이 난 것이다.
최근까지 일본은 프랑스와 고속증식로 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해 왔는데, 2019년 프랑스가 연구 개발 계획을 중단하게 되어 이 또한 사실상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고속로 개발은 지금까지 국립연구개발법인인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가 주도해 왔으나, 일본 정부는 앞으로는 민간도 연구개발에 참여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막대한 세금을 들인 국책이 파탄 나자 민간에도 전가하려는 것이다.
또한 약 3조 엔을 들인 아오모리현 롯카쇼재처리공장은 기술 문제 등으로 목표했던 2009년보다 완공 시기가 25차례나 연기되어 현재는 2022년 초로 가동을 예정한 상태다. 이 공장을 풀가동할 시 연간 800톤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다는 롯카쇼재처리공장 부지에는 우라늄 농축시설, 저준위 폐기물매설센터(최종처분장),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관리센터(해외에서 반환된 유리고화체의 중간저장시설), 재처리공장, MOX연료공장 등 다양한 핵연료주기 시설이 있다. 롯카쇼재처리공장의 가동이 장기간 연기되어 왔기 때문에 일본의 MOX 연료는 모두 프랑스에서 가공한 것으로, 일본이 직접 가공한 것은 없다. 가동도 시작하지 못한 롯카쇼재처리공장의 저장풀은 핵발전소에서 모인 사용후핵연료로 가득 차 있다. 일본의 탈핵 진영은 롯카쇼재처리공장 가동으로 인해 근처 주민들의 피폭 가능성이 높고, 재처리 과정의 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재처리 후 발생한 핵쓰레기를 처분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하려 하지만 이 역시 지역 사회와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인 슷츠쵸(寿都町)와 카모에나이무라(神恵内村)가 부지 적합성 조사를 위한 3단계의 조사(문헌조사, 개요조사, 정밀조사) 중 첫 단계인 문헌 조사를 신청했는데, 두 마을과 주변 마을에서 발생한 주민들의 반대 운동을 무시하고 응모한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 선정되지 않아도, 적합성 조사를 받으면 교부금을 주고 있다. 일단 문헌 조사만 받아도 최대 20억 엔을 받을 수 있다. 슷츠쵸의 정장(町長)인 카타오카 하루오도 응모의 주된 동기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지역 경제 악화와 교부금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이처럼 핵발전소 건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인구가 적으며,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시골 마을을 돈으로 매수해서 핵쓰레기장을 지으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플루토늄을 축적하며, 실현 가능성이 없음에도 막대한 세금을 쓰는 재처리정책 유지에 대해 일본 내에서 비판적인 여론도 있다. 지난 9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연임을 포기하면서 유력한 차기 후보로 떠올랐던 코노 타로는 핵연료주기 정책은 파탄이 났다며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코노 타로는 낙마했고, 핵연료주기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기시다 후미오가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었다. 핵발전소 재가동까지 주장하는 기시다 후미오가 총리가 되었으니, 일본의 핵연료주기와 핵발전 정책은 당분간 아베 신조 정권 이후 자민당에서 유지해 온 추진이라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핵연료주기와 핵발전 추진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일본 국민들은 이에 대해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 외부의 입장에서 보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참고자료
김기정, 박한규(2002), 「국제레짐의 강제집행력과 개별국가들과의 관계」, 『한국과 국제정치』, 제18권 4호, 21–33쪽
글쓴이: 최종민(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연수연구원)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를 목도한 것을 계기로 핵기술을 비판적인 측면에서 공부하고자 결심하여 귀국 후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2020년 8월 「일본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담론투쟁: -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력 안전신화’를 중심으로(1954-1980)」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탈핵신문 2021년 10월(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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