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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의 7년간의 분투 ④ _ 보이지도 냄새도 나지 않던 위험을 마주하다

그들은 왜 상여를 끄는가

월성핵발전소 최인접지역 주민들의 7년간의 분투 ④

 

보이지도 냄새도 나지 않던 위험을 마주하다

 

 

 

 

끊이지 않는 괴담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들

 

 

19897월 영광핵발전소에서 발생한 무뇌아 태아 유산 논란은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과학기술처는 서울대병원 역학조사팀이 19904월부터 1년 동안 실시한 <영광원전 주민에 대한 건강 실태 및 역학적 기초조사>를 통해 원전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주민들의 질병 증가 및 감소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결론 내렸고, 핵발전소 근처에서 일어났던 피해 혹은 사건들은 그저 괴담이나 주민들의 불안 정도로 치부되었다(연합뉴스, 1991.6.21). 이러한 현상은 월성 핵발전소 주변 지역에서도 벌어졌는데,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암소들의 불임이 잦거나, 머리나 생식기를 비롯하여 신체 일부가 없는 기형 가축이 태어났다(탈핵신문, 2013.2.3).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은 비단 동물들에게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신용화 사무국장과 나아리에서 암에 걸린 사람들에 대해 직접 조사하였다.

 

 

건강보험공단에 자료도 요청하고 우리가 조사를 해보자고 했거든. 나아리나 양남면에는 무슨 암에 걸린 사람 숫자가 나올 거 아니야. 근데 그 자료를 받을 수가 없더라고. 우리가 발로 뛰어서 나아리만이라도 누구 집에 몇 세 때 어떤 암으로 돌아가셨는지 정리해보자고 했지(황분희, 2021.5.14 인터뷰 중에서).

 

 

물론 그들의 조사는 녹록지 않았다. 대책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주민들은 자기들 이주하려고, 우리를 이용하려고 한다라며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분희 씨는 이십 년도 전에 중학생 열다섯 명 정도가 백혈병으로 죽었거든. 그때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심각하게 느껴지는 거야라고 말했다. 본인도 2012년에 갑상샘암을 진단받아 수술하였고 그녀의 남편도 갑상선 항진증을 앓고 있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 암이나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요 밑에 아저씨는 간암으로 돌아가셨어. 그 옆에 친정아버지가 사는데, 내려가면 세 집이 폐암으로 돌아가셨어. 그 밑에 할매는 유방암에 걸려서 돌아가시고, 친구 하나는, 나랑 동갑인데 무슨 암인지는 모르겠는데 암으로 죽었어. 가만히 보면 집집마다, 한두 집 걸러 암으로 죽고, 또 애들은 백혈병으로 죽고. 이게 계속 나오는 거야, 가족력도 없는데(황분희, 2021.5.14 인터뷰 중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근거 없는 괴담으로 치부하였지만, 이러한 현상 혹은 문제의 원인을 느린 폭력이라고 명명한 학자가 있다. 롭 닉슨은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라는 책을 통해서 방사능 피폭, 독성물질 오염, 기후변화 등 현대사회의 많은 환경 문제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폭력, 시공을 넘어 널리 확산하는 시간 지체적 파괴,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폭력을 느린 폭력(Slow Violence)이라고 정의하였다. 황분희 씨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연히 기자로부터 방사성 물질 중 하나인 삼중수소가 기체와 액체로 매일 배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책위는 보이지도, 냄새도 나지 않으며 회피할 수도 없는, ‘느린 폭력으로 불릴 수 있는 삼중수소의 실체를 언제, 어떻게 마주하게 되었을까?

 

 

주민들 몸속에 존재해온 삼중수소

 

 

201096경주시 월성원전 방폐장민간환경감시기구’(이하 감시기구)<월성원전 주변 삼중수소 방사능 측정 결과의 고찰>에서 월성핵발전소 주변 빗물과 지하수의 삼중수소 농도가 다른 핵발전소 지역보다 510배 높다고 발표하였다. 또 감시기구는 몇 달 후 <월성원전 주변 지역 주민의 체내 삼중수소 농도 분석>을 발표했는데, 나아, 읍천, 봉길리 등 월성핵발전소와 가까운 마을에 사는 주민일수록 삼중수소 농도가 더 높게 나왔다(탈핵신문, 2013.2.3). 특히 양남면 나아리 주민의 체내 삼중수소 평균 농도는 23.6Bq/L로 비교지역인 경주 시내권 주민(0.91Bq/L)보다 25.7배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경주핵안전연대 성명서 참고, 2011.3.17).

 

 

이처럼 핵발전소 인근 마을주민에게서 높은 수치의 삼중수소가 검출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자, 다음 해 105일 전 경주시장이자 감시기구 위원장이었던 최양식은 월성원전 주변지역 삼중수소에 대한 주민 의견수렴 결과를 기초로 인체에 미치는 영향평가 로드맵을 수립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이후 2012년 정부와 한수원은 <삼중수소 방사능 영향평가>를 실시하기로 했고, 21명의 삼중수소 영향평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감시기구가 진행한 <월성원자력본부 주변주민 삼중수소 영향평가> 결과는 2015820일에 발표하였다. 한수원의 지원을 받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산학협력단, 조선대학교 산학협력단, 한국원자력의학원이 20142월부터 15개월간 월성 핵발전소 인근 주민 246, 경주시내 주민 125, 울진 핵발전소 인근 주민 124명을 대상(495)으로 조사한 결과다. 그리고 체내 삼중수소 축적농도와 삼중수소 체내축적 여부와 상관없이 월성핵발전소 인근 주민과 경주시내 주민 50명을 선정해 혈액의 염색체이상 빈도를 분석하였다(환경운동연합 논평, 2015.8.20.). 감시기구가 발표한 조사 결과는 핵발전소에서 가까울수록 검출 평균치는 높았고, 핵발전소가 인접한 양남면은 2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경주 시내보다 2.6배 이상 높았다.

 

 

이 같은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이전인 2014년 말에 황분희 씨는 ‘KBS 추적 60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들은 원전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얼마나 암에 걸렸는지, 소변검사를 통해 인체 내 삼중수소가 검출되는지, 된다면 농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취재하는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하였다(피디저널, 2015.3.31). 2015321일 방영된 KBS 추적 60<원전과의 불편한 동거, 원전과 갑상선암>은 나아리(원전 반경 1km), 하서리(5km), 경주 시내(30km 이상)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주민 5명의 소변 속 삼중수소 농도와 그 지역의 식수를 비교했다. 추적 60분 팀의 검사 결과는 감시기구가 수행했던 세 차례의 연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림 1>과 같이 핵발전소로부터 가까이 사는 주민일수록 소변에서 더 많은 양의 삼중수소가 검출됐고, 식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도 냄새도 나지 않았던 삼중수소였지만, <추적 60>을 비롯하여 감시기구가 수행했던 연구를 통해 주민들은 자신의 몸과 지금까지 마시던 지하수 속에 있는 물질의 정체를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1] 거리에 따른 주민과 식수 내 삼중수소 농도

 

 

그럼에도 괜찮다는 사람들

 

 

대책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리 주민 40명의 요시료를 모아 직접 감시기구에 검사를 의뢰했다. <추적 60> 실험에 참여한 주민은 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주민을 설득하여 검사한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당장에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여전히 괜찮다라고 말하는 주민들이 더 많았다.

 

 

이래서 되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아 그냥 소변에 같이 나왔나보다 하고 넘겼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수원은 평생 “괜찮다, 검출돼도 기준치 이하라서 괜찮다”라는 말을 해왔으니까. 그리고 어른들은 “나는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살았는데, 뭐가 문제야?”라는 생각을 하더라고(황분희, 2021.6.30 인터뷰 중에서).

 

 

여전히 많은 주민은 안전신화혹은 기준치 이하라서 괜찮다라는 한수원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내가 아프지 않은데 뭐가 문제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느린 폭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던 경험은 이주대책을 마련하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 그들은 명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삼중수소 피폭에 의한 잠재적인 피해자가 됨으로써, 자신들의 몸을 근거로 한수원과 정부에 강력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되는 과정 혹은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과정은 곧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가족들에게 이 위험한 곳에서 함께 살자고 설득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본인 스스로를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든 것이다<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김우창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에너지정책, 밀양송전탑 갈등, 핵발전소 인근 주민 피해 등에 관심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사업 합의의 의미와 맥락: 합의 주민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전의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갈등 관리전략으로 인한 이해관계자 변화와 공동체 붕괴」 등이 있다.

 


탈핵신문 2021년 9월(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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