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지원 법안 국회통과를 촉구한다!”, 천막농성장에 모인 70여 명의 집회 참가자는 어느 때보다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서울, 대전, 부산, 울산, 경주에서 많은 연대자가 8월 27일 금요일 오후에 월성핵발전소 앞 양남면 나아리로 달려왔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가 천막농성 7주년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2014년 8월 25일 시작한 천막농성이 꼬박 7년 세월을 채웠다. 후쿠시마 핵사고를 보면서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게 됐고, 소변검사를 통해 모든 주민이 방사능에 피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면 되는 줄 알았으나, 이미 핵발전소 주변의 집과 논밭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휴짓조각이 되어 있었다. 정부에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행사 제목인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가 쉽지 않은 지난 7년의 투쟁을 웅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방역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랜 아픔과 투쟁에 연대하는 발길이 많았다.
7주년 행사를 하루 앞둔 8월 26일 국회에서는 핵발전소 주민의 이주 지원대책을 담은 「발전소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양이원영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이학영, 우원식, 정청래 의원 등 총 14명의 국회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시절부터 주민들과 인연을 맺어온 양이원영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고 7주년 행사에 참석하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관련 법안은 20대 국회 때도 2건이나 발의됐으나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이른 시일 내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법안에 이름을 올린 이학영 의원은 국회 산자위 위원장인 만큼 법안 통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지원 대상을 제한구역 인접 마을로 구체화
전국 5개 핵발전소지역 6천여 명이 지원 대상
이번 법안은 지원 대상을 핵발전소 제한구역(EAB) 인접 마을로 구체화했다. 월성핵발전소의 경우 나아리, 나산리, 봉길리가 제한구역 인접 마을에 포함된다. 전국 5개 핵발전소 인접 지역 총 12개 마을 6000여 명의 주민이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이번 법안은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지원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의 3.7%가 전력산업기반기금이다. 이 돈이 핵발전소 피해 주민의 이주에 쓰인다면 도시민들의 죄책감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싶다.
7주년 행사 참가자들은 오후 5시 반에 행진에 돌입했다. 이주대책위 주민들은 하얀 상복으로 갈아입고 풍물패를 앞세워 상여와 관을 끌고 선두에서 행진했다. 그 뒤를 핵폐기물 드럼통 행렬, 방송차, 현수막, 피켓, 만장이 길게 늘어섰다. 200미터가 넘는 긴 행렬이 향한 곳은 월성핵발전소 정문이다.
짧은 20분에 천막농성 7년의 한 녹여
퇴근시간대 정문 봉쇄와 차량 정체
행진 선두인 상여가 발전소 정문에 도착한 시각이 정확히 오후 6시였다. 발전소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다. 상여를 끌던 성혜중 주민이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행진 속도는 더욱 늦어졌다. 퇴근 차량이 정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꼬리를 물면서 발전소 안이 마비됐다. 경비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퇴근 차량을 후문 쪽으로 안내했다.
7주년 행진으로 월성핵발전소 정문이 봉쇄된 시간은 20여 분 남짓이다. 갑자기 퇴근길이 막힌 발전소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차를 돌렸을까? 매년 토요일 개최하던 행사를 평일인 금요일 오후에 개최한 이유가 연대의 힘으로 퇴근길 정문을 한번 막아보고 싶어서라고 이주대책위 주민들은 말한다. 주민들은 짧은 20분에 천막농성 7년의 한을 녹여냈다.
퇴근길이 막혀 차를 돌려야 했던 노동자들이 가해자는 아니다. 주민과 노동자 모두 잘못된 에너지 정책의 피해자일 뿐이다. 7주년 행사 참가자들은 ‘간절히 바라옵건대, 이주’를 외치면서 8주년 행사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주민이주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잔치를 하자고 한목소리를 모았다.
이상홍 통신원(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탈핵신문 2021년 9월(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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