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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연구시설, 핵재처리 등)

파이로프로세싱 이해와 문제점

 

지난 2011년부터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추진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 ‘파이로프로세싱’의 연구결과 공동보고서가 올 상반기에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2020년까지 지원하고, 지난 정부가 3단계로 예정했던 ‘SFR 실증로 건설과 운영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연구비 지원은 중단했다. 최근 SMR과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파이로프로세싱의 한계와 문제점에 관한 글을 싣는다. - 편집자 주 -

 

 

 

∥파이로프로세싱 이해와 문제점

 

파이로프로세싱,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해악만 끼친다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지난 20여 년에 걸쳐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은 건식재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기술을 활용하면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의 양을 1/20, 처분장 면적은 1/100, 방사성 독성은 1/1000로 줄일 수 있는 꿈의 신기술이라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KAERI의 주장은 과장 또는 거짓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에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습식재처리 기술인 PUREX 방법은 사용후핵연료를 잘게 잘라서 질산에 용해시킨 후, 유기용매를 첨가하여 순수 플루토늄을 분리한다. 이에 비해 건식재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 방법은 사용후핵연료를 잘게 잘라서 금속체로 전환시킨 뒤, 고온의 용융염으로 만들어 전기화학적 방법으로 플루토늄을 포함하는 초우라늄 원소를 함께 분리한다.

 

KAERI 연구진이 참여한 2015년 미국 국립연구소 보고서에 의하면, 파이로프로세싱은 방사능 오염된 핵연료집합체와 피복재로부터 공정에서 발생하는 염폐기물과 금속폐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양은 사용후핵연료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으로 고준위 핵폐기물 양을 1/20로 줄인다는 KAERI의 주장은 거짓이다.

 

처분장 면적 관련 KAERI의 주장은 사용후핵연료의 주요 열원인 세슘-137과 스트론튬-90을 분리하여 따로 지상에서 200~300년간 저장 후 지하 처분함으로써 처분장 면적을 줄인다는 것이다. 세슘-137과 스트론튬-90은 그 기간 동안 사용후핵연료 내 가장 위험한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며, 이들을 분리 보관하는 과정에서 이들 독물질 이외에도 기타 고독성 기체·고체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하며, 이들 2차 방사성 물질들이 주변 환경으로 누설될 위험을 증가시킨다.

 

한편, 월성의 4기 중수로에서 발생하는 약 12,000톤의 사용후핵연료는 파이로프로세싱 처리하지 않고 직접 처분한다. 국내 경수로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총량이 약 27,000톤임을 감안하면,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사용후핵연료의 처분장 면적을 1/100로 줄인다는 KAERI의 주장은 과장이다.

 

 

해외 결론, 안전성과 비용 실익 없다

 

 

KAERI는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사용후핵연료의 독성을 1/1000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1996년 미국 국립아카데미 연구는 “(파이로+고속로 등 도입에 따른) 방사선 피폭 감소는 그 어떠한 시스템의 도입으로도 소요 비용과 핵종변환 시스템 운영에 따른 추가 위험을 보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2013년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초우라늄원소 핵종변환은 주로 핵분열생성물에 좌우되는 심층지하처분의 초장기 방사성 영향을 줄이는데 주요 역할을 못 한다고 결론 내렸다. , 미국과 프랑스의 과거 주요 연구들은 사용후핵연료로부터 초우라늄 원소를 제거하는 것이 방사성폐기물의 위험을 크게 감소시키지 않는다고 이미 결론 내렸다.

 

이론상 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성 독성을 1/1000로 줄이려면, 경수로 2기당 같은 발전 용량의 고속로가 1기 이상 필요하며, 국내 운영 총 경수로를 가정하면, 100kW급 고속로가 12기 이상 도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60여 년간 세계적으로 110조 원 이상 투자했음에도 고비용과 액체 소듐 냉각재 화재 등 안전 문제로 인해 이 분야의 선진국인 프랑스와 일본조차 소듐냉각고속로의 상용화 시기를 205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그러니 파이로프로세싱으로 분리한 초우라늄 물질을 대량으로 태우겠다는 고속로가 그때까지 이용 가능하지도 않다.

 

더군다나, 초우라늄 물질을 태워 방사성 독성을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이려면, 고속로에서 초우라늄 물질을 수백 년간 태워야 한다. 핵연료 장전 시 고속로 핵연료에 섞어 넣을 수 있는 초우라늄 물질량은 수 퍼센트(%)밖에 되지 않으며, 고속로에서 연소되는 동안, 핵연료 내 우라늄에서 초우라늄 물질이 다시 생성되기 때문이다. 고속로 수명은 40~50년이니 고속로 수명이 종료되면 다음 고속로를 계속해서 건설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나 재처리하지 않으나 심지층 처분장에 처분 10만 년 후 사용후핵연료의 실질적 인체섭취 독성에 차이가 없다는 학술 연구결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순수 플루토늄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이로프로세싱은 핵확산 저항성이 높다고 즉, 핵무기로의 전용가능성이 낮다고 KAERI는 주장해 왔다. 그러나 20096개 미 국립연구소들은 파이로프로세싱은 습식재처리에 비해 약간의 핵확산 저항성을 지니며, 그것도 테러그룹 등에만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유는 추출한 초우라늄 혼합물은 방출 방사선이 미약해서, 탈취/전용 가능성 크고, 이로부터 플루토늄 분리는 작은 실험실 규모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파이로프로세싱을 재처리로 간주하고 있다. , 파이로프로세싱은 핵확산 및 핵테러 위험을 초래하는 재처리 기술인 것이다.

 

상기와 같이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에 관한 KAERI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거나 과장임에도 지난 정부는, 이들 연구를 실증할 시설들로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30톤을 처리하는 파이로프로세싱 시설과 고속로를 2028년까지 건설할 계획을 수립, 관련 예산으로 36천억 원을 상정하였다. 이 예산에는 고속로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파이로프로세싱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폐기물 비용은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 더군다나 이 비용은 실제 건설에 들어가면 2~3배는 더 상승하겠지만, 일단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파이로프로세싱 처리하고 고속로에서 태우기 위해서는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1톤 당 약 33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파이로프로세싱 비용이 직접처분 비용보다 약 20~30배 이상 비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고리 5·6호기 도입까지 고려한 국내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발생 총량은 약 27000톤이니, 전부 파이로프로세싱 처리하고 고속로에서 태운다면 그 비용은 천문학적 수치가 될 것이다.

 

비근한 실례로,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는 폐로된 실험용 고속로의 사용후연료의 폐기 방안으로서 파이로프로세싱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UCS의 에드 라이만 박사에 의하면, “미 에너지부는 처음에 2007년까지 전체 재고가 처리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2016 회계연도 말 기준으로 대략 26톤의 사용후핵연료 중 약 15%만이 파이로프로세싱 처리되었다. 처리된 핵연료 1kg당 평균 약 5만 달러 비용으로 21천만 달러 이상이 소비되었다. 이런 속도로는 전체 26톤의 사용후핵연료 재고를 파이로프로세싱으로 완료하는데 10억 달러 이상의 추가 비용으로 세기말까지 걸릴 것이다라고 한다.

 

이에 비해,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 후 심지층 처분비용은 1톤 당 약 10~20억 원으로 추정된다. 국내 원전에서 방출되는 모든 사용후핵연료(경수로 약 27,000, 중수로 약 12,000)는 지하 500m 이하의 약 4 암반층에 전량 처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용후핵연료의 심층 지하처분에 따른 지표면에서의 주민에 미칠 먼 미래의 위해도는 우라늄광산의 위해도와 비슷할 것이라는 연구분석이 있다.

 

 

사용후핵연료 쟁점에 대한 진지한 논의 필요한 시기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의 기술성, 경제성, 핵비확산성 측면 타당성 검증을 목적으로 지난 10년간 진행된 한미 핵주기 공동연구(2011~2020) 결과가 다음 달 중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 실증시설 구축 등 연구 로드맵은 공동연구 결과에 좌우된다. 즉 공동연구 결과가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성, 경제성, 특히 핵비확산성을 증명하여야 후속 연구가 가능한 것이다. 상기 본인의 분석에 근거할 때, 공동연구 결과가 원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KAERI의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는 전면 중지되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인 방법은 원자로에서 방출된 사용후핵연료는 5년간 수조 저장(비밀집저장) 후엔 40~50년간 건식저장시설에서 저장 후, 처분용기 속에 넣어서 공학적으로 잘 설계된 깊은 지하처분장에 묻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분석의 결과에 대해 반핵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용후핵연료가 지상에서 관리될 때의 위험도와 심층 지하처분장에 처분되었을 때의 위험도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사용후핵연료의 안전 관리와 처분 관련 쟁점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탈핵신문 2021년 6월(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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