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를 위해 재검토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재검토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는 가운데, 재검토위 전문가검토그룹에 참여했던 11명의 전문가가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전문가검토그룹에 참여했던 석광훈 위원이 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포함해 한국의 핵연료 관리정책 전반에 대해 짚어본다. - 편집자 주
∥ 한국 핵폐기물 관리정책의 문제점
구조개혁 없으면 ‘공론화 말 잔치’만 반복될 뿐이다
전문가검토그룹 참여와 탈퇴과정
필자는 개인 사정으로 지난 2008년 이후 국내 사용후핵연료(SNF) 문제에 관여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측으로부터 전문가검토위원회(이하 전문가검토위)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으나, 그간의 진행 경과를 알 수 없어 참여를 유보했다. 이후 재검토위로부터 몇 차례 더 연락이 왔고, 국내 관리현황의 문제점과 적극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변 전문가들의 권유를 들은 후 그간의 진행 경과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조건부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간의 진행 경과에 대한 명확한 설명, 특히 시민사회나 지역주민단체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다만 재검토위는 자신들이 “원자력 분야 비전문가”이니, “전문가검토위가 무엇을 공론화해야 할지 지정해주길 바란다”는 주문을 하였다. 참여한 전문가들 상당수는 아연실색하는 반응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공론화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공론화를 추진한다는 것이 모순이기 때문이다.
△ 성윤모 산업부장관이 2019년 5월 29일 <사용후핵련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하고, 정정화 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
△ 재검토위 출범식날 영광, 경주, 울산, 부산 등 전국의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과 활동가는 산업부의 재검토위원회 출범을 규탄하며, 산업부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산업부는 언론사만 출입을 허용한 뒤 밀실 속에서 출범식을 강행했다. ⓒ탈핵신문
실제 진행 과정 역시 허탈했다. 원자력계 10여 명을 포함한 30여 명의 전문가들은 각 부문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인사들이었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자력계 인사들조차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체로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전문가 검토회의는 정책분과와 기술분과로 나뉘어져 3개월 동안 각각 5~6회 정도씩 제한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나마도 대부분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와 확인과정에 할애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하려는 의도였다면 재검토에 충실했어야 했지만, 재검토위의 관심 사안은 오로지 공론화를 위한 명분 찾기로 보였다. 재검토를 위해서는 그만큼 적절한 전문가들이 충분한 시간과 지원 인프라가 제공된 상황에서 진행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3개월의 짧은 기간에 몇 번의 간담회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재검토가 진행될 리 없었다. 필자는 이런 부실한 전문가검토그룹 운영문제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재검토위원회에 여러 차례 서한 발신과 위원장 면담 등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검토위의 지상과제는 공론화의 추진이지 세부 내용은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결국 필자는 동일한 문제 제기를 해온 다른 전문가 10인과 함께 지난 1월 10일 재검토위원회의 부실하고 조잡한 전문가검토그룹 운영을 중단하고, 이를 근거로 올해 추진될 공론화 계획도 폐기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재검토위는 필자를 포함한 위원 11인이 “공식적인 사퇴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각종 공식회의자료에 동 11인의 이름을 그대로 도용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공론화가 아니라 구조개혁이다
국내 방폐물 관련 공론화의 외형적 모델은 영국 방폐물관리위원회의 공론화사례(2004~’06)이지만, 정작 영국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공론화 이전의 SNF 관련 정부조직의 구조개혁에 있다. 과거 영국은 환경부 방폐물관리 자문기구(1978~’03)와 통상산업부 산하 방폐물관리 집행기구(1982~’05)를 통해 일방적인 방폐장부지선정 시도와 실패를 반복해왔다. 특히 이들은 지난 1987~’97년 기간 동안 중준위 방폐물 처분부지로 기존 핵시설인 셀라필드 재처리공장 인근을 선정하였으나 지역반발로 철회되었다. 이후 영국 왕립위원회와 상원은 기존의 폐쇄적, 일방적 방폐물관리정책 의사결정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며 독립적 의사결정기구설립 등 개혁을 권고한다.
이에 따라 영국 환경농림부는 지난 2003년 독립적인 방폐물관리위원회를 설립하였다. 방폐물관리위원회의 의사결정 결과를 집행할 원자력해체기구(NDA)를 설립(2006)하였으며, 기존 정부기구였던 방폐물관리 자문기구는 해체되었고, 방폐물관리 집행기구는 NDA에 통합되었다. 방폐물관리위원회는 이번 재검토위처럼 한국의 온갖 임시자문기구와 공론화 기구들과 달리 2003년 이후 현재까지도 영국의 장기 방폐물관리정책을 전담하고 있다. 영국의 공론화는 기존 부처별, 기관별 폐쇄적이고 방만한 방폐물 정책 의사결정체계를 일소하고 방폐물 관리위원회로 통일시켜 국민 신뢰를 회복한 이후에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례다.
미국 역시 지난 1980년대부터 에너지부 주도로 네바다주 유카마운틴을 SNF 처분장 부지로 추진해오다가 의회의 반발로 폐기한 경험이 있다. 이에 의회 상원은 지난 2012년 블루리본위원회를 통해 기존 에너지부 조직으로 SNF 관리정책을 추진하기엔 부처의 이해관계로 인해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평가를 하였다. 블루리본위원회의 권고는 SNF 관리정책을 전담할 에너지부로부터 독립적인 관리조직의 구성을 권고했고, 이후 미국은 독립전담조직의 구성방안을 두고 논의과정에 있다.
방만하고 부실한 국내 사용후핵연료 관리체계
국내의 경우 국가 차원의 독립적인 SNF 관리조직이 부재한 가운데, 산자부는 원전운영의 민원해소 차원에서, 과기부는 굴업도사태와 부안사태 이후 방폐물 부지선정 업무에서 배제되었지만 건식재처리 R&D사업 차원에서 동 사안을 다루면서 사업의 부실화, 방만화는 지속되어 왔다. 이들의 SNF 연구개발은 크게 전력산업기금(산자부담당)과 원자력연구개발기금(과기부담당)으로 양분화되어있지만, 어떤 경우는 사실상 동일한 사업이 중복 집행되거나, 반대로 정작 연구가 필요한 분야는 양쪽 모두로부터 방치되기도 한다. 이는 국가적으로 막대한 예산 낭비일 뿐만 아니라 정작 SNF의 장기관리에 필요한 연구를 방해하는 심각한 부조리에 해당한다.
부안사태 이후 영국의 방폐물관리위원회(CoRWM)가 진행한 방폐물 공론화 결과가 국내에도 소개되었으나, 방만한 국내 관리체계는 그대로 둔 채 공론화 절차만 모방해보려는 정치인과 공무원만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영국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공론화 이전에 이들이 과거 핵발전소 운영 및 원자력 연구개발의 하위사업이었던 SNF 관리체계를 독립적이고 전문화된 관리체계로 개혁했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구조개혁과는 상관없이 최종결과의 겉모양만 흉내 내 그럴듯하게 꾸미려는 태도는 아무런 성과도 교훈도 남길 수 없다. 실제 노무현 정부에서도 박근혜 정부에서도 SNF 관련 공론화가 시도되었으나 영국의 공론화 결과, 그것도 공학적 선택(재처리폐기와 심지층처분)만 모방했을 뿐 제도적, 내용적 진전은 없었다.
재검토위는 권한 없는 임시자문기구
결국, 현재 진행되는 재검토위는 국가 차원의 SNF 관리를 책임질 수 있는 조직이 아니라 산자부라는 특정 부처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급조된 아무런 권한도 책임도 없는 임시자문기구일 뿐이다. 급조되었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이런 임시조직 구조에서 부실한 검토가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산자부의 현안인 월성의 맥스터 건식저장설비 확장문제는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차분한 토론을 통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다. 만약 해외사례처럼 독립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는 국가 차원의 방폐물관리조직이 있었다면 논란을 없애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진행 과정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구조개혁 없이 제대로 된
사용후핵연료 정책 기대 어렵다
지난 2018년 <건식재처리-소듐고속로> R&D사업 재검토 역시 과기정통부의 ‘셀프 재검토’에 맡겨졌는데, 당시 과기정통부 영향력 아래 있는 산하기관들과 대학교수들 위주로 임명된 평가단의 노골적인 편파성에 반발한 민간 측 패널이 퇴장한 바 있다. SNF의 장기관리문제는 단순히 찬핵·반핵을 넘어서는 문제로 사회적으로 기술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원자력계가 호언장담하던 SNF의 최종 처분장은 한국보다 인구밀도가 1/30 수준인 핀란드, 스웨덴에서만 부지를 확보했을 뿐 그 외 어느 나라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산자부나 과기정통부나 선진국의 원자력기술을 빨리 모방 추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잔재로 SNF 장기관리 정책을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직들이다. 현 정부가 개혁과제를 각 부처들에게 ‘셀프 검증’과 ‘셀프 개혁에 맡기는 태도 역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SNF 정책의 개혁은 다음 정부에서나 기대할 수밖에 없고, 이 역시 정부의 구성단계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저절로 개혁되지 않을 것이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탈핵신문 2020년 3월(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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