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수소 방사능 주민 건강영향평가’ 실시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
정현걸(소설가, 삼중수소영향 평가위원, 경주환경운동연합 원전·방폐장특위 위원장)
삼중수소와 월성원전 주변 괴상한 일들
십여 년 전, 월성원전 주변지역 3개 읍면에는 괴상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암소들의 불임이 잦았고, 유난스레 기형가축들이 많이 태어났다. 머리가 없거나 눈이 먼 송아지, 생식기가 없는 송아지, 눈이 없는 강아지, 심지어는 뼈만 있고 살은 없는 가축들도 태어났다. 강아지들의 사산도 속출했다. 또 기형 물고기들도 많이 잡혔고, 해산물 수확도 크게 감소했다. 게다가 각종 농작물의 수확도 확 줄어들었다. 특히 감 수확량이 급감했다. 그러다 보니 이 모든 게 월성원전에서 방출하는 삼중수소 때문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우연이었을까. 그 즈음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월성원전에 ‘삼중수소 저감장치’의 설치를 권고했다.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해지자 월성원전 측은, 역학(疫學) 조사 결과 방사능 오염이 아닌 괴질이나 소 아카바네병(모기가 매개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주로 임신한 소에서 유산, 조산, 사산 또는 기형 송아지 분만 등의 번식장애를 일으킴)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환경단체에서는, 그동안 축적된 방사능 때문이라며 최초로 민간 차원의 원전 피해 실태 조사를 한다며 자원봉사자들까지 동원하여 한동안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듬해 가을부터 희한하게도 그런 괴현상들이 점차로 숙지근해지더니, 알게 모르게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이 지역은 계속 시끌시끌했다. 이 일대가 활성단층 지진대냐, 아니냐를 놓고 학자들 간에 지루한 논쟁을 벌였고, 기형 가축 출산을 두고 방사능 때문이냐, 괴질이냐, 소 아카바네병이냐를 놓고 수의학자들과 환경단체들 간에 논란을 벌였다. 그때부터 줄곧 경주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지역 주민들은 월성원전 1․2․3․4호기에서 내뿜는 삼중수소방사능의 유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부와 (주)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삼중수소방사능의 방출량이 미량이어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는 주장을 계속 펴왔다.
<그래프설명 : 경주시민들의 소변을 분석한 결과 핵발전소가 있는 나아리 주민들의 체내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고가 최대 리터당 31.4 베크렐 검출됐다. 또한 핵발전소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삼중수소에 많이 피폭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경주시월성원전,방폐장민간환경감시기구>
월성원전 인근 지하수와 주민들의 몸속 삼중수소 농도, 타 원전지역보다 5~10배 높아
그러다가 2012년 3월, 마침내 정부와 한수원은 경주시월성원전·방폐장민간환경감시기구(이하 감시기구)와 공동으로 ‘삼중수소방사능 영향평가’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0년 9월 6일 ‘경주시월성원전․방폐장민간환경감시센터’(이하 감시센터)는 ‘월성원전 주변 삼중수소방사능 측정 결과의 고찰’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표했다. 월성원전 주변의 빗물과 지하수의 시료 분석 결과, 삼중수소방사능 농도가 타 원전지역보다 5~10배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감시센터는 식수의 삼중수소 허용한계치 검토 필요, 원전 인근 지역주민의 체내 삼중수소 농도 평가 필요성 검토, TRF 즉 ‘삼중수소저감장치’의 저감성능 평가가 필요하다는 향후 계획을 밝혔다.
감시센터는 다시 몇 달 후 ‘월성원전 주변지역 주민의 체내 삼중수소 농도 분석’에 대한 자료를 발표했다. 감시센터의 분석 결과를 보면, 월성원전 주변지역주민들의 체내 삼중수소 농도도 빗물과 지하수와 마찬가지로 타 원전지역보다 5~10배 높게 측정되었다. 더 심각한 점은 나아, 읍천, 봉길 등 월성원전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일수록 삼중수소방사능 농도가 더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비교지역인 경주 시내권 주민의 경우는 미검출에 해당하는 수치를 보였다.
월성원전 주변 삼중수소 농도 서울의 430배
필자의 분석으로는 그 원인이 자명하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월성원전에만 있는 캐나다가 개발한 캔두형중수로 1․2․3․4호기가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그것도 다량으로 삼중수소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에도 월성원전의 연간 삼중수소 방출량이 울진원전의 70배에 이른다는 한수원의 보고가 있었는데, 그 당시 ‘삼중수소 저감장치’가 운영되지 못함으로써 주민들의 피폭선량이 65% 늘어났다고 했다. 몇 년 전의 국정감사에서도 월성원전 지역의 삼중수소방사능 농도가 서울과 춘천에 비해 최고 430배나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월성원전 주변의 해수, 빗물과 지하수는 물론이고, 동식물과 주민들의 몸속에 다량의 삼중수소방사능이 축적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감시센터의 발표가 있은 후, 필자가 속한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은 한수원과 감시기구에 ‘삼중수소 저감장치’의 무용론과 ‘삼중수소 영향평가’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결국 정부와 한수원은 우리의 주장을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감시위원회가 ‘삼중수소 건강 영향평가’를 주도하되 영향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환경단체 감시위원의 영향평가위원회 참여를 필수로 하고, 지역 주민대표 6명도 추가로 참여시키기로 의결하여 총 21명의 ‘삼중수소영향평가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수억 원에 이르는 예산은 원인 제공자인 (주)한수원이 부담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현재까지 4차에 걸친 영향평가위원회 회의를 통해 영향평가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합의안 도출, 주민들의 체내 삼중수소방사능의 영향평가 기관인 평가단과 자문단 선정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4차 회의에서는, 평가 기관 선정 대상자 중의 하나인 ‘한국원자력의학원’의 강창모 교수로부터 삼중수소영향평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주민들 삼중수소 방사능에 일상적으로 노출, 피폭돼
이제 삼중수소방사능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삼중수소는 헬륨으로 붕괴되면서 베타(ß)선을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이다. 중수(重水) 중의 중수소(H-2)가 중성자를 포획하여 삼중수소(H-3, Tritium)가 생성된다. 중수를 사용하는 원자로인 캔두형은 방사능 누출 위험도가 경수로에 비해 30~40배 높다. 또한 삼중수소수는 위장과 폐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며 저에너지의 베타선을 지속적으로 방출한다. 삼중수소가 음식물에 결합됐을 때 더 유해하고, 오염된 음식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삼중수소의 10%가 신체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유기물에 결합 시 인체가 2~10배 오래 삼중수소에 노출된다는 연구 논문도 발표된 바 있다.
삼중수소의 반감기는 12.4년이며, 인체에 흡수되었을 때 소멸되는 생물학적 유효반감기는 10일~450일이고 절반이 소변이나 땀으로 배출된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삼중수소수 방사능으로 인한 피폭이 일회성이 아니고 월성원전에서 끊임없이 다량으로 삼중수소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방사능에 만성적으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소량의 병균이나 바이러스라 할지라도 환자, 임산부, 유아에게는 치명적이고, 노약자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 아닌가. 그냥 병균도 그러한데, 하물며 방사능이 몸속에 축적된다면 그것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아주 클 것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이번에 한수원이 마지못해 받아들이긴 했지만 건강영향평가 실시를 결정한 데 대해서는 일단 환영해야 할 것이다.
일회적인 1년 조사가 아닌, 지속적인 모니터링 필요
마지막으로 영향평가의 의의와 향후 과제에 대해 살펴봐야 하겠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저선량 방사선, 특히 저선량 환경방사선의 만성 노출로 인한 영향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번의 영향평가 실시는 국내에서 최초로 이루어지는 삼중수소방사능 생체 영향평가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앞으로 삼중수소방사능에 노출된 샘플 및 대조군(1~2백 명)에 대한 정확한 농도 측정이 필요하고, 그중에서 선별된 샘플(약 50명)에 대해 연구동의서 확보 및 채혈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IAEA에 권고하고 있는 ‘안정형 염색체 분석 방법’에 의한 염색체 변이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의 조사가 저선량 방사능에 의한 영향평가의 기틀을 마련했으면 한다.
그리고 약 1년으로 예정된 이번의 조사가 일회성에 그칠 게 아니라, 저선량 환경 방사선으로 인한 인체 영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과학적 근거 자료의 축적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끝으로 조사 결과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조사위원회 구성의 공정성과 조사 전 과정의 투명성, 객관성이 필수적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발행일 : 20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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