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환경연대는 후쿠시마 참사 이듬해부터 월요일이면 영광군청에서 핵발전소까지 22km를 걷기 시작했다. 한빛핵발전소 안전성 확보와 하루라도 빠른 폐쇄를 촉구하는 순례길에 그간 3천여명이 참가했다. 262회 걸음을 짚어보니 5천7백km가 넘는다. 어느덧 생명평화탈핵순례 5주년인 11월 27일(월)에는 집담회 시간을 벌고자 두 팀으로 나눠 걸었다.
이 날은 한수원한빛본부장에게 편지를 전달키로 하고 알렸다. 아무도 나오지 않아 직접 들어가려 하니 정문을 잠그고 경찰을 출동시켰다. 5년을 지속한 탈핵순례단의 편지를 거부하며 경찰을 부르는 과민반응에 순례단은 정문 앞에 주저앉아 편지조차 거절하는 한수원 한빛본부를 성토하며 편지 수령을 촉구했다. 지진이 활발해진 시기에 더 무서운 핵발전소 문제며 순례의 의의와 정당성 등을 역설했다. 한 시간 반이나 지나 지역주민 대응팀장이 나왔다. 늦게 나온 변명이 어이없었지만 더 늦출 수 없는 집담회 때문에 편지를 건네고 돌아왔다.
생명평화 기도를 올리고 탈핵을 촉구하며 5년을 걸었다. 지구 오염과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핵발전소 사고를 막는 빠른 길은 가동 중단이다. 특히 영광한빛핵발전소는 어이없고 간담을 서늘케 하는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가압수형 아킬레스건인 증기발생기가 망치를 품고 있어도, 방사능 누출도 잘 가둬준다던 격납건물에 구멍이 나도 몰랐으며, 잘 지었다는 핵발전소 콘크리트 벽조차 떨어져 나가느냐고 추궁했다. 못미더운 내진 설계를 들먹이고 암반 위에 지었다고 강조하지만 땅 갈라지고 꺼지는 큰 지진 앞에 내진설계는 무색해지고 암반 자체가 깨지면서 땅이 흔들리는 게 지진임을 강조했다. 핵반응로(=원자로) 건물과 배관으로 연결된 터빈건물은 지진에 더 취약하고 답도 없이 쌓여만 가는 폐핵연료 문제를 어쩔 것인가. 안전할 때 멈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니 은혜 속에 사는 모든 생명의 이름으로 핵발전소 폐쇄를 촉구한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2주간 진행한 원불교영광탈핵학교에서는 순례 5주년을 맞아 원불교 탈핵운동을 돌아보고 방향을 모색하는 3인 토크와 주민이 참여하는 집담회도 가졌다. 탈핵토크 3인은 원불교환경연대의 전신이라 할 천지보은회 사무국장 출신의 강해윤 교무, 청와대 앞 최초의 1인 시위자로 불리는 김성근 교무와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대표(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였다. 강 교무는 영광핵폐기장 반대 원불교선발대를 지휘했고 원불교환경연대 결성의 주역이자 순례 제안자이다. 김 교무는 반핵국민행동(‘핵발전 추방 핵폐기장 백지화 반핵국민행동’으로 2천년대 초 구성된 전국단위의 연대조직, 편집자 주)의 공동대표 시절 37일간 청와대 앞에서 단식했었다. 황대권 대표는 핵발전소가 영광에 있는 줄 모르고 정착했지만 영광탈핵운동의 주요인물 중 한 분이다. 핵폐기장 반대투쟁 중의 일화며 탈핵을 둘러싼 얘기들은 몇 시간이라도 모자랄 사연들을 품고 있다. 압축해서 듣기엔 아쉬움이 컸다.
원불교 환경운동의 선구자 김현 교무님은 핵무기에 못지않은 핵발전소 폐해를 간파하시고 “북한 핵도 남한 핵도 안 된다. 세계 어디에도 핵은 안 된다”고 갈파하셨다고 한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가 발생했지만 군사독재 시절이라 뉴스가 제한되는 엄혹한 시절 반핵을 역설하신 김 교무님은 일찌감치 예언자적 성찰로 원불교 반핵운동의 길을 펼치셨음을 새삼 되새기는 집담회이기도 했다.
순례길이 너무 삭막하고 위험해서 일반인이 함께 하기 어려우니 풀코스에 연연하지 말고 탈핵운동을 효율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리 선전전을 펼치자는 주문과, 코스를 건너뛰는 대신 세 읍에서 길거리 강연이든 전단을 나눠주든 주민과 접촉을 늘리자는 얘기도 나왔다. 어떤 날씨에도 반드시 걸었던 22킬로였지만 이제는 일정기간 여러 실험적 시도를 통해 좋은 방안을 찾아 정착시켜보겠다고 순례당사자가 답하기도 했다.
이선조 영광교구장은 “어떤 방법이든 환경과 평화와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구도인·원만인·개벽인·조화인이다. 이 안에 생명과 평화도 있다. 5년간의 공덕이 사라지지 않도록 순례는 이어져야 한다”는 마무리 말씀으로 집담회를 마쳤다.
변화가 필요하고 방식을 달리하자는 여러 제안에 부응해, 원불교생명평화탈핵 순례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6년째 탈핵순례가 결정해줄 것이다.
탈핵신문 2017년 12월호 (제59호)
김복녀 통신원(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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