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막아내도 핵쓰레기는 10만 년 동안 남아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현재 사용후핵연료가 고준위 핵폐기물의 전부를 차지한다. 인체에 치명적인 사용후핵연료의 독성은 최소한 10만년이상은 지나야 자연상태에 가까워진다. 10만년은 우리나라 5천년 역사의 20배에 달하는 시간이다. 인간이 사용후핵연료를 10만년 동안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 25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지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시설은 없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사용후핵연료를 핵발전소에 임시 저장하고 있으나 임시저장소는 2019년(경주), 2024(고리, 영광), 2037년(울진)이면 포화상태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지역이 고준위핵폐기물도 함께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이영희 교수(가톨릭대 사회학과)가 1월 20일 열린 제2회 탈핵활동가대회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의 민주적 관리’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용석록
1월 20일(금)과 21일(토)에 걸쳐 경주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수련원에서 진행된 제2회 전국탈핵활동가대회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의 민주적 관리’라는 주제로 강연과 토론회가 열렸다. ‘고준위 핵폐기물과 핵재처리’ 강연은 이영희 교수(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가, 토론자로 이헌석 대표(에너지정의행동), 박현주 집행위원(대전유성핵안전시민대책본부)이 참여했고, 이상홍 사무국장(경주환경운동연합)이 토론을 진행했다.
이상홍 사무국장(경주환경운동연합, 맨 왼쪽) 진행으로 제2회 탈핵활동가대회에서 ‘고준위핵폐기물의 민주적 관리’
강연 뒤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자는 왼쪽부터 박현주 집행위원(대전유성핵안전시민대책본부), 이헌석 대표(에너지정의행동).
이영희 교수. ©용석록
이영희 교수는 영국과 스웨덴, 핀란드의 방사성폐기물 부지 선정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방사성폐기물 부지 선정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영희 교수가 소개한 영국과 스웨덴, 핀란드 사례를 나라별로 정리했다.
제2회 탈핵활동가대회에 참석한 이들이 이영희 교수의 ‘고준위핵폐기물의 민주적 관리’라는 주제 강연을 듣고 있다. ©용석록
영국, 전문가만이 아니라 대중과 이해관계자 참여 중시
영국은 현재 핵발전소가 17기 가동 중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정부와 전문가가 독점하는 기술관료 중심의 핵폐기물 관리체계를 수립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는 전문가만이 아니라 대중과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중시해, 해외에서도 공론화를 가장 잘 수행한 사례로 들고 있다. 10년에 걸친 모범적인 공론화 과정은 있었지만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의 의견 차이로 한계도 보이는 사례다.
1982년 영국 정부는 핵폐기물 관리 전담기구(Nirex)를 설립했다. 1991년 이미 핵발전소가 들어서 많은 양의 핵폐기물이 저장돼 있던 셀라필드를 핵처분장 대상 지역으로 확정해 지질조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강력한 저항으로 1994년 그 지역 의회는 지질조사 계획을 거부했다. 1997년 영국 환경부 장관은 기존 핵폐기물 처분장 관련 정책을 전면 백지화하고, 향후 사회적 수용성을 중시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2003년 11월에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이하, 방폐물관리위)가 설립됐다.
방폐물관리위는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은 받지만, 공개 모집 과정을 거쳐 선발된 12명의 위원들(기술적 전문가, 사회과학자, 환경단체 인사 등)이 운영하는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는 기구다. 방폐물관리위는 인간과 환경을 보호하면서 영국 내 핵폐기물을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사회적 공론화 절차를 거쳐 마련해 2006년 7월 이를 정부에 권고했다. 권고안을 준비하는 과정에 핵폐기물에 대한 장기적 관리(처분 포함)를 위한 대안목록(15개)을 고려한 다음, 15개의 폐기물 처분 대안목록에 대해 대중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사회적 공론화 절차를 단계별로 진행했다.
권고안 핵심 내용은 장기적으로 방사성폐기물은 땅 속 깊이 처분하는 지층처분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며, 그러나 적절한 최종처분시설 건설까지는 수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감안해 견고한 중간저장 프로그램이 방사성폐기물 장기관리 전략의 핵심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시설 유치 지역 부지 선정 실행과정을 감독할 독립기관을 즉각 설립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방폐물관리위의 권고안에 대해 영국 정부와 의회는 수용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2013년 컴브리아(West Cumbria) 지역에서 부지타당성조사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지역의회가 투표를 부결(면 단위는 찬성, 주의회가 부결시킴)시키자 지역간 갈등이 생겼다. 결국 영국 정부는 2015년 4월 총선 직전 기습적으로 법안을 개정했다. 그 내용은 “핵폐기장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간시설 프로젝트여서 지방 정부 동의 없어도 중앙정부가 강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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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환경영향평가법·환경법정 제도로 투명성과 민주성 보장
스웨덴과 핀란드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으로 ‘심지층처분(Deep Giological Disposal)’을 개발, 추진 중이다. 두 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 부지 선정 과정에 투명성과 민주성이 보장됐다고 인정받았는데, 이를 ‘발틱 모형’이라고 한다.
스웨덴은 현재 9기의 핵발전소가 있으며, 1976년 총선 때 핵발전소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고, 1977년 원자력발전규정법을 제정해 핵발전 사업자에게 사용후핵연료의 ‘절대적인 안전성’에 입각한 최종처분방식 제시를 요구했다.
SKB(Swedish Nuclear Fuel and Waste Management Co.)는 스웨덴 내 4개의 핵발전회사가 1972년에 설립한 스웨덴 핵연료 및 폐기물 회사다. SKB사는 오르카르샴에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짓고 1985년부터 운영했다.
SKB사는 1991년부터는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과정에 주민수용성을 원칙으로 유치지역 대상 타당성 조사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 결과 2000년도에 8개 지역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종료하고, 지질학적 부적합지와 주민 거부 지역을 제외시킨 뒤 외스탐마르와 오스카르샴 두 지역이 최종 처분장 후보지가 됐다. 두 지역은 모두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지역이다.
스웨덴의 환경영향평가법은 주민참여의 핵심 요소인 공개성, 조기참여와 대안검토 등을 보장한다. 지역 환경영향평가포럼은 다수의 실행그룹이 부지 조사 과정을 모니터하고, 이들은 필요할 경우 외부 컨설팅과 전문가 자문을 자유롭게 받는다. 오스카르샴의 경우 6개의 실행그룹들은 각각 2인의 시의원, 1인의 공무원, 2인의 지역주민, 1인의 외부전문가로 구성되었고 모든 회의록은 공개한다. 지역에서 주민 참여가 활성화 될 수 있었던 것은 1999년에 통과된 스웨덴 환경법 덕분이다. 환경법은 부지 선정 조사 과정에 향후 건설될 핵폐기물 처분장 시설의 환경, 보건, 사회적 영향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환경법정에 보내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SKB사는 2009년 초 지역 지원프로그램을 확정했다. 두 지역 지원사업의 총 가치는 약 3000억원(직접 현금 지원은 없음), 그 가운데 75%는 유치 실패 지역에, 25%는 유치한 지역에 돌아간다. 2009년 6월 주민 여론조사 결과는 84% 대 79%로 오스카르샴 지역주민의 찬성률이 좀 더 높았지만, 최종 처분장 부지로 외스탐마르가 선정됐다. 지역 시의회는 중앙정부가 최종 승인을 하기 직전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
핀란드, 규제기관과 환경영향평가가 부지 선정에 주요 역할
핀란드는 현재 총 5기의 원전이 전체 전력의 30%를 담당하고 있다. 원전은 2개의 기업(Fortum, TVO)이 소유, 운영 중이다.
핀란드는 1994년 핵에너지법 개정안에 따라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핵폐기물은 핀란드 내에서만 처분해야 한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두 지역 중간저장시설에 저장 중이다. 최종처분장 최종 승인은 고용경제부에 있지만 보건복지부 산하 핵규제위원회(STUK)의 기술적 평가 의견을 받아야 한다.
핀란드는 최종처분장 부지선정을 위해 1997~1999년까지 4개 후보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고 2000년 최종처분장으로 올킬루오토(Olkiluoto)를 선정했다. 올킬루오토에는 이미 상당량의 사용후핵연료가 쌓여있다. 2004년에는 최종처분장 연구시설인 온칼로(Onkalo)를 건설, 2015년 최종처분장 건설 승인이 떨어졌다.
이 과정에 지질학적 요인뿐만 아니라 주민수용성이 반영됐다. 당초 지역의회의 반대가 있었지만 세금 등 경제적 혜택과 주민 참여 보장 약속으로 의회를 설득했다. 또 환경영향평가와 함께 주민설명회, 공청회가 여러 번 열렸고,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 의견 수렴도 이뤄졌다.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는 모두 고준위 핵폐기물 최종처분장 부지선정까지 약 20여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 규제기관과 환경영향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환경영향평가법이 주민참여를 보장하는 수단이 됐다. 또 해당 지역의회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
한국, “규제기관 역할 없고,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구체성 결여”
이영희 교수는 영국과 스웨덴, 핀란드 사례를 소개한 뒤 우리나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절차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부지 선정 과정에 규제기관(원자력안전위원회, 이하 원안위)의 역할이 없다”고 지적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환경영향평가 과정에 규제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환경영향평가서 자체도 규제기관이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부지선정 결과만 원안위에 보고한다.
이 교수는 “스웨덴과 핀란드는 정부와 규제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신뢰에도 20년 소요됐다”며, 우리나라의 부지선정 소요기간(정부계획 12년)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는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관련 주민의견수렴 조항이 있으나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고 했다. 이어 유치지역 지원과 관련하여 ‘도덕적 해이’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스웨덴과 핀란드는 모두 지역 지원금 액수는 미미한 편”이라며, “유치지역 지원은 필요하지만 자칫 과도한 경제적 유인책으로 부지선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강연 후 토론자로 나선 이헌석 대표(에너지정의행동)는 “핵발전소 다 막아내도 고준위핵폐기물은 남는다”며, “부지 선정 과정에 지역간 갈등이 상당히 심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상홍 사무국장(경주환경운동연합)은 “2017년 탈핵운동은 사용후핵연료를 모르면 활동하기 어렵다”며 “학습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박현주 집행위원(대전유성핵안전시민대책본부)은 “대전 지역에 사용후핵연료가 30년 동안 들어와 있었어도 주민들은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는 핵연료 쪼개는 실험(재처리 실험)을 하겠다고 하는데 주민감시기구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대전 지역은 1699봉(3.86t)의 사용후핵연료가 30년 동안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반입돼 보관 중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민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추진하는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위한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과 고속로 연구사업’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고준위 절차 및 지원법)을 의결했으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법안 심사가 중단된 상태다. 고준위 절차 및 지원법안에는 주민투표 등 지역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누락돼 반발이 일고 있다. 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선정 절차 외에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 내용이 담겨 민감한 사안인 부지선정을 소통이 아닌 재정지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도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월 임시국회에서 이 안을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야당의 반대 등에 부딪치고 있다.
용석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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