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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기사, 핵폐기물

고준위방폐물 관리절차법, 국회 제출, 2017년 예산, 법안 통과 전에 이미 추진 중

 

황교안 국무총리의 마지막 임무

 

112()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법(이하 고준위 절차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정부 발의 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 결제를 받아야 한다. 고준위 절차법은 바로 전날인 111()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통과됐고, 대통령 결재를 통해 국회에 제출된 것이다. 통상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격주로 번갈아가면서 진행한다. 그러나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이 계속되면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3주째 국무회의를 진행했고, 사후에 대통령이 결재하는 방식으로 법안은 국회에 제출됐다.

 

공교롭게도 112일 황교안 국무총리 후임으로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새 총리로 내정되면서 111일 열린 국무회의는 사실상 황교안 국무총리의 마지막 임무가 되어 버렸다. 전국이 최순실 사태로 시끄러운 지금, 논란이 많은 법고준위 절차법은 이렇게 국회에 제출됐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고준위 절차법은 입법 예고(기간, 811~920)된 기존 법안의 틀을 그대로 갖고 있다. 이 법안은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의 부지를 선정하는 부지선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고, 부지선정을 위해 기초조사-심층조사-예정부지 선정을 거쳐 최종 부지를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빠르면 2053년부터 고준위 핵폐기장을 운영하겠다는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입법예고 당시 논란이 되었던 산업부가 직권으로 부지를 선정하는 조항이 빠지긴 했다. 하지만 핵발전소 지역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임시저장문제에 대해서는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조항만 있을 뿐 기존 고준위 절차법안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법도 통과되기 전, 예산부터 통과시키려는 정부와 여당

 

국회에 법안이 제출되면 상임위(산업위) 전체회의 상정법안소위 회부상임위 의결법사위 검토본회의 검토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번 고준위 절차법은 이제 막 국회에 제출됐기 때문에 113() 열린 국회 산업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지는 않았다. 즉 아직 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법안을 기초로 하여 내년에 고준위 핵폐기장을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내년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조사와 부지선정위원회 예산으로 196700만원을 내년 예산안으로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 예산의 상세내역을 보면 부지선정위원회 운영비 48600만원 부지선정을 위한 지원단 운영비 33800만원 홈페이지 구축비 4300만원 지질조사를 위한 문헌조사 및 현장 조사비용 11억원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법안이 통과되지도 않았고, 지금도 법안에 대한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정부는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전제로 내년 예산부터 편성한 것이다. 이런 편성에 대해 국회 산업위 전문위원이 작성한 예비심사보고서에서 내년 집행이 어려운 예산이니, 신중한 검토가 요망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의 경우, 정부와 여당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196700만원 중 지질조사 비용 11억원만 국회 산업위를 통과했다. 아직 국회 예결위 통과가 남아 있으나, 현 추세대로라면 큰 변화 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기국회 마칠 때까지 논쟁은 계속될 듯

고준위 방폐물 관리계획을 둘러싼 핵발전소 지역의 반대 여론은 여전히 뜨겁다.

 

정부는 9월 고준위 절차법 입법예고 이후 경주, 울주(울산), 영광 등지에서 법안에 대한 설명회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모두 지역주민의 반대로 무산됐다. 최근 최순실 사태로 정국 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고준위 절차법과 예산은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연일 급락하고 대통령 하야를 둘러싼 국민들의 요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정부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고준위 핵폐기장 선정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그간 핵발전소 지역주민들이 신뢰에 기반한 소통을 외쳐왔으나, 정부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소통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추진돼야 할 것은 짜여진 각본에 따른 무리한 계획 추진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신뢰 확보가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를 혼란스러운 정국에 슬쩍 넘어간다한들 문제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굴업도, 안면도, 부안 등 핵폐기장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은 사회적 갈등과 불신만 낳을 뿐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올해 연말까지 계속되는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탈핵신문 2016년 11월 (제47호)

이헌석 편집위원(에너지정의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