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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 관련)

월성1호기 수명연장 취소판결과 그 의미


2012년 수명완료 월성1호기, 20152월 수명연장 원안위 승인

 

지금부터 8년 전인 2009년 봄, 한수원은 월성1호기 압력관을 교체하겠다고 발표한다. 3년 후인 2012년에 수명이 완료되는 월성1호기의 원자로에 해당하는 설비를 무려 6,000억원 이상의 돈을 사용하여 교체한다는 것이었다. 시민사회는 이 압력관 교체는 수명연장을 위한 수순이라고 의심하였으나 한수원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과는 상관없는 일이며, 원전을 더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돈을 투자한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압력관 교체 이후 1년 정도를 더 운영하기 위해서 원전 건설비의 1/3 정도에 해당하는 6,000억을 들인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압력관 교체가 만료되자 한수원은 곧바로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 수명연장 신청 서류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원안위는 2015227일 새벽 1시 경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승인하였다.

그 전 과정에 경주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는 그야말로 백번 이상의 집회와 기자회견을 가졌었고, 수명연장 심사 당시에도 원안위원들이 수많은 기술적, 법적 문제들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무시되고 수명연장이 결정되었다.

 

20172월 서울행정법원 수명연장 결정 취소 판결50년 역사, 유래 없는 판결!

 

그런데, 2017년 기적 같은 판결이 서울행정법원에서 내려졌다. 원안위의 월성1호기 수명연장 결정을 취소하라는 판결이었다. 이 판결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거의 유래가 없는 판결이다. 그동안 행정부가 결정한 일을 법원이 위법하다고 판결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원자력계가 하는 일을 사법부가 제재한 경우도 50년의 원자력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 재판을 주도한 변호사들, 탈핵 활동가들, 그리고 기꺼이 어려운 증언을 해준 원자력 전문가들의 노력이 역사적인 판결로 귀결된 것이다.

 

재판부 5가지 위법 판시원안위 일상적 관행모두 불법으로 선언!

 

재판부는 원안위가 수명연장 결정과정에서 다음 5가지의 위법을 행했다고 판시하였다.

 

첫째, 수명연장을 위한 설비교체 과정은 모두 위원회의 의결이 있어야하는 사항임에도 사무처에서 과장전결로 처리한 것은 위원회의 권한을 잠탈한 것으로 위법하다

 

둘째, 수명연장 심사과정에서 설비교체를 위한 허가사항의 변동내역이 기술된 비교표 등의 서류가 제출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


셋째, 계속운전 허가 이전에 계속운전을 위한 설비교체 등이 이루어진 것은 위법할 뿐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넷째, 위원장 이○○과 위원 조○○은 위원으로서 결격사유가 있는데도 결정에 참여하여 위법하다.


다섯째, R-7 등 최신기술기준을 월성1호기 안전성 평가에서 적용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


판결문 내용을 살펴보면 이번 판결은 적어도 현재까지 원안위가 일상적으로 해오던 소위 관행이 모두 불법이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원안위는 현재까지 사무처 전결사항을 너무나 넓게 인정함으로써 위원회 회의를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재판부는 이것이 불법이라고 결정하였다. 또한 원안위 허가를 받기 이전에 수천억을 들여서 설비를 개선하는 것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 역시 전임 한수원 사장이 말했던 소위 원자력계의 일하는 방식이 불법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결격사유가 있는 위원들이 참여하여 위법하다는 점, 특히 원안위 위원장이 이러한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은 그동안 원안위가 원자력계 인물들로 주로 구성되었고, 그동안 관행화되어 있었던 회전문 인사가 불법임을 확인한 것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짐작된다.


마지막 위법사항인 최신기술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수없이 제기해왔던 문제이며, 월성1호기의 안전성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문제이다. 월성2,3,4호기에 있는 수백 개의 안전설비가 월성1호기에는 없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지만, 오직 원안위만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번 판결, 원안위 조직 해체 버금가는 근본적인 변화 요구원안위, 얼마나 이해할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할지 공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를 할 것인지 아니면 판결을 수용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항소를 한다고 해도 원안위가 승소할 가능성은 적다고 짐작된다. 이번 판결이 나오게 된 증거들이 너무나도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사실 원안위의 관행은 우리 국민의 판단수준에서 보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명백하게 법률을 위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항소를 하건 안하건 간에 원안위는 이 판결을 대부분 수용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원안위를 원자력계의 감시자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 국민과 한수원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원안위는 항상 한수원 편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원자력 규제를 살펴보면 한수원이 용이하게 사업을 추진하도록 형식적으로 되어있고, 규제를 담당하는 위원들도 사업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안위가 이 판결을 수용하려면 그동안 원자력계에 만연했던 수많은 관행들을 뜯어고쳐야할 것으로 보인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관행들을 바꾸려면 사고방식부터 바뀌어야 할 것인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원자력계 인사들은 일반 국민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 사고방식에 변화를 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번 판결은 원안위에게 조직 해체에 버금가는 근본적인 변화, , 사고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사실을 이 사건의 피고인 원안위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김익중(전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 동국대 교수)

탈핵신문 2017년 3월호 (제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