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와 핵마피아
황대권(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국민들은 이 어이없는 사건을 보며 대한민국의 후진성이 이 정도였는가 싶어 자괴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씨를 찍은 사람들조차 자기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후회를 하고 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언론들은, 뒤질세라 대통령과 그 주변사람들을 물어뜯고 있다. 하이에나가 귀여워 보일 정도다.
사실 사건의 구조와 맥락을 따져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역대 모든 정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한 바탕 비리척결 광풍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다만 이번 사건이 특별히 충격을 주었던 것은 비교적 청렴할 것 같은 여성대통령에게 가족도 아닌 제3자가 개입하여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건의 8가지 특징, 비선실세의 존재…공적 논의기구 ‘무용지물’
최순실 사건의 특징을 따져보면 이 나라 부패구조와 부패관리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먼저 비선실세의 존재이다. 비선실세는 공적 지위를 갖지 않은 민간인이 최고 권력자를 등에 업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주로 대통령의 직계가족이나 친·인척들이 이런 행위를 일삼았다.
비선실세의 문제는 중요한 결정이 누구도 알 수 없는 밀실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부의 공적인 논의기구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후진국일수록 밀실정치가 판치는 법인데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사는 밀실정치로 얼룩져 있다. 밀실정치는 온갖 루머와 괴담의 원천이기도 하다. 군사독재 시절엔 총칼로 이러한 소문들마저도 꽁꽁 막아버렸다.
끼리끼리 나눠먹기, 편법과 특혜, 거짓말
두 번째로, 끼리끼리 나눠먹기이다. 비선실세들이 재벌의 팔을 비틀어 옭아낸 돈으로 재단을 만들었지만 재벌들이 그저 빼앗기기만 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재벌이 낸 돈은 사실 뇌물이나 다름없다. 뇌물을 바친 대가로 각종 사업상 이익을 챙긴다. 대한민국 법조계를 삼성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이번 사건에서도 여지없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삼성은 최순실의 어린 딸을 수백억을 들여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로, 비선실세들은 편법과 특혜를 좋아한다. 편법을 쓰면 단기간에 많은 이익을 남기기 때문에 떼어먹을 게 더 많다. 설사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해도 자기네 이익만 보장되면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밀어붙인다. 국방비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네 번째로, 이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거짓을 진실로 믿고 대중을 설득하려 든다. 실체 없는 창조경제를 구호로 내걸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편성하여 각종 사업을 벌였지만 실제로 늘어난 것은 관련자들의 곳간이고 나라 경제는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무책임, 모르는 척, 비겁하고 무모하고 뻔뻔하다!
다섯 번째로, 이들은 무책임하다. 비선실세들은 공적인 지위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질 일이 없다. 일의 과정에서 이득만 챙기면 그만이다. 함께 일을 추진했던 공무원들은 잘못될 경우 상부의 지시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새어나간 국민세금으로 나라를 하나 세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섯 번째로, 주변에 있는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비선실세의 실체를 알면서도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날까봐 모른 척한다. 한 마디로 비겁하다. 최순실 사건 보도 이후 나온 인터뷰들을 보면 한결같이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인 줄 몰랐다”며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역겨울 뿐이다. 사회정의보다 기득권 유지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부패는 필연적이다.
일곱 번째로, 이들은 무모하다. 주어진 기간 안에 업적을 내기 위해 충분한 검토와 논의도 없이 무모하게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원래의 공무원 조직체계에 의하면 수년이 걸릴 일도 최고 권력의 의지라며 모든 절차를 생략한 채 단기간에 해치운다.
여덟 번째로, 이들은 뻔뻔하다. 특혜와 월권으로 일을 진행하면서 정상적인 절차와 제도가 유린되는 것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최순실 딸의 특혜입학 과정을 본 학생들이 대규모로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이를 반증한다.
최순실도 울고 갈, 한국 핵산업계의 비선실세 ‘핵마피아’
여기에서 ‘이들’은 비선실세는 물론 그들의 수족노릇을 했던 공무원들을 일컫는다. 이런 말 하면 터무니없다고 펄쩍 뛸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의 핵마피아는 이번 사건의 비선실세들이 보인 여덟 가지 특징을 모조리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이들을 ‘한국 핵산업계의 비선실세’라고 말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핵마피아는 핵산업을 주름잡고 있는 실세들의 ‘상부상조 패밀리 시스템’이다. 오랜 세월 핵산업을 운영하면서 같은 직장,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만들어진 ‘한 식구’다. 이들은 핵발전의 규제와 진흥, 기획과 실행을 모두 관장하는,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끄떡없는 ‘인너써클(inner circle핵심세력, 편집자 주)’이다. 핵발전 비리가 터질 때마다 꼬리를 자르고 살아남는 불사조 조직이다.
최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이들 앞에서는 함부로 큰소리를 낼 수 없다. 비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 해도 대한민국의 웬만한 전문가들은 거의가 핵마피아의 ‘관리’ 아래 있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행여 비판적인 전문가들이 남아있으면 이들은 핵마피아에 의해 철저히 왕따 당한다. 패밀리의 층이 두터워 비판에는 비판으로 이론에는 이론으로 맞받아친다. 비싼 돈 주고 공부하여 경력을 쌓았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나 사람은 없는 셈이다. 있다면 깨어있는 시민의 결집된 힘인데, 안타깝게도 시민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값싼 전기’의 포로가 되어 있어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이들의 ‘거짓말’과 ‘뻔뻔함’과 ‘무책임’은 최순실도 울고 갈 지경이다. ‘규제’ 쪽에서 일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진흥’ 쪽으로 인사발령이 나는가 하면 심지어 양쪽에 발을 걸쳐놓기도 한다. 수많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온갖 자료를 들이대며 핵발전소의 경제성이 없다고 그렇게 지적해도 오불관언(吾不關焉, 상관하지 않고 모르는 척 함, 편집자 주)이다. 후쿠시마사고로 인해 일본정부가 지금까지 쓴 돈이 140조가 넘고 앞으로 30년 동안 매년 수조원씩 들이부어야 한다는데도 무조건 발전단가가 가장 싸다고 우긴다.
예컨대 전기가 생산되는 전 과정이 원료채취에서 폐기물 처리까지 10단계라면 이들은 생산과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몇 단계만을 가지고 핵발전소가 가장 싸다고 주장한다. 워낙에 막강한 자금을 가지고 홍보를 해대니 국민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뻔뻔하게 밀어붙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만약의 경우 사고가 나거나 큰 적자가 생기면 정부가 뒷돈을 다 대주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동의한 바 없는데도 국민세금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핵마피아의 범죄·비행 타파 없이, 안전·정의사회 구현 없다!
국회의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부당한 법률을 폐기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하지만 핵마피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로비스트들을 고용하고 있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현행 법률로 커버하기 힘든 사항들은 슬쩍 행정조례나 내부규약 같은 것으로 돌려놓아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고준위핵폐기물 단기저장소 설치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는 마땅히 신규 핵시설에 해당됨에도 관련자들의 반대를 무산시키기 위해 회사내부시설로 규정해 놓았다.
위에 적은 여덟 가지 특징에 해당하는 핵마피아의 범죄사실과 비행을 일일이 적자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이들은 최순실의 비선실세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행위를 애국심으로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봉급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며 갖은 특혜 아래 명목이 불분명한 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쓴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국정원 다음으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비공식 조직이지 싶다.
단언컨대, 핵마피아를 타파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정의사회 구현은 기대할 수 없다.
탈핵신문 2016년11월호 (제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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