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변호사,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가끔 탈핵 관련 얘기를 하다보면, 받는 질문이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를 겪고서도 어떻게 핵발전소를 재가동할 수 있느냐? 일본 시민들은 그렇게 의식이 없느냐?” 같은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 시민들 중에 다수는 여전히 핵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가고시마현의 센다이핵발전소 1호기가 재가동을 시작할 무렵, 일본여론조사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재가동에 반대하는 의견이 58%로 찬성(37%)을 훨씬 웃돌았다. 올해 3월에 마이니치신문이 한 여론조사에서도 핵발전소 재가동에 반대하는 의견이 53%였고, 찬성은 30%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이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핵발전소 재가동을 밀어 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시민들이 투표를 잘못해서 아베 같은 사람이 집권할 수 있도록 해줘서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베’라는 핵발전소 재가동파가 이끄는 연립여당(자민당-공명당)이 일본 국회를 장악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결국 일본의 유권자들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인지도 한번 살펴봐야 한다. 일본의 국회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과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은 한국처럼 지역구에서 다수의 국회의원을 뽑고, 일부 비례대표가 덧붙여지는 형식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중의원의 경우에는 전체 475석 중에서 지역구에서 295석을 뽑고, 비례대표로 180석을 뽑는다.
그런데 2014년에 있었던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연립여당이 얻은 정당득표율은 46.82%였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득표를 한 것이다. 그런데 연립여당은 지역구 선거를 휩쓸었다. 지역구 의석 295석 중에 232석을 휩쓴 것이다. 그 결과 연립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서 475석 중에서 326석을 차지했다. 의석비율로 보면, 68.63%를 차지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의 유권자 중에 연립여당을 지지한 유권자는 46.82%에 불과했는데, 연립여당은 3분의2가 넘는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것은 정당이 얻은 득표율과 국회의석이 따로 놀 수 있도록 한 일본의 선거제도가 낳은 결과물이다. 그래서 일본의 유권자들을 탓할 일이 아니라, 일본의 선거제도를 탓해야 한다.
이런 식의 선거제도 덕분에 아베 총리는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서 자기 마음대로 일본이라는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핵발전소 재가동도 밀어붙이고, 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도 계속하고 있다.
올해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과 공명당의 정당득표율을 합치면 49.4%(자민당 35.9%, 공명당 13.5%)였다. 그런데 현재 일본 참의원에서 연립여당은 242석 중 146석(자민당 121석, 공명당 25석)을 차지하고 있다. 의석점유율은 60.3%에 달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처럼 잘못된 선거제도는 민심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일본과 비교할만한 대상은 독일이다. 흔히 “독일은 어떻게 탈핵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답은 독일의 선거제도이다.
독일이 탈핵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인 계기는 1998년 국회의원선거였다. 당시에 야당이었던 독일 사민당은 40.9%의 정당득표율로 44.5%의 의석을 차지한다. 단독으로는 집권을 할 수 없는 의석이어서 연립정부를 구성할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 선거에서 탈핵을 주장해오던 독일 녹색당은 6.7%의 정당득표율로 7.0%의 의석을 차지했다.
독일은 일본과는 달리 정당이 얻은 득표율을 기준으로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선거가 치러지고, 대체로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없기 때문에 연립정권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1998년 당시에 독일 녹색당은 탈핵을 조건으로 내걸고 사민당과 연립정권 구성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후 2000년 독일 정부는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전력회사들과도 합의하고, 재생가능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본격적으로 탈핵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만약 일본이 독일과 같은 선거제도를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처럼 아베가 일방적으로 핵발전소 재가동을 밀어붙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독일식 선거제도를 일본이 도입하고 있었다면, 일본의 연립여당이 얻은 득표율로는 과반수에 못 미치거나 겨우 과반에 턱걸이하는 국회의석을 얻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 정도의 의석으로는 국민들 과반수 이상이 반대하는 핵발전소 재가동같은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탈핵과 선거제도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최근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나면서 대한민국에서도 탈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국민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더라도 핵발전소 때문에 불안하다는 의견이 크다. 최근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지진이 날 경우 국내 핵발전소가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정작 국회를 보면 탈핵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정치세력을 찾아볼 수 없다. 여론에 편승해 문제만 제기할 뿐,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위한 법률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대한민국의 국회도 잘못된 선거제도의 결과물이다. 300명중에 253명을 지역구에서 뽑는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는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치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탈핵, 에너지전환 같은 중요한 문제도 현재의 정치구조에서는 제대로 토론조차 되지 않는다. 독일처럼,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만 탈핵도 쉬워진다. 탈핵을 위해서도 선거제도의 전면개혁이 필요하다.
탈핵신문 2016년 10월호 (제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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