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못 만들게 하는 사람들 - 이와이시마에서 미래로』 야마아키 신, 바오로딸, 2015
밀양 송전탑 싸움이 한창이던 2013년 11월 초에 도곡저수지 위쪽 농성장으로 찾아온 일본인들이 있었다. 카미노세키 핵발전소 건설을 저지하기 위해 30년 가까이를 싸워왔던 이와이시마의 활동가들이었다. 몇 해 전 히로시마에서 열린 반핵아시아포럼에 참가하여 이와이시마의 투쟁을 보며 이분들의 이야기를 한국에 꼭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으니, 이와이시마와 밀양의 상봉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겠다 싶다.
이와이시마(일본어로 축복의 섬, 祝島)는 지금은 500여명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섬이지만, 철따라 톳과 비파, 도미와 갑오징어가 풍성히 나는 아름다운 마을로 주민들의 공동체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1982년에 추고쿠전력이 이와이시마 4km 앞의 가미노세키 해안에 핵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들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1회 집회가 이어졌고, 육지로의 원정투쟁, 바다에서의 목숨을 건 봉쇄투쟁, 각종 소송투쟁이 한 세대가 넘도록 진행되었다. 우연치 않게도 먼저 핵발전소 계획이 중단된 일본 스즈 지역의 이야기를 듣고, 유학시절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 사례를 견학한 뒤, 이제 이와이시마의 경험까지를 갖게 된 저자가 전하는 스토리는 영화만큼이나 생생하다.
이 책의 장면들은 곳곳이 밀양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우선은 구분되지 않는 일상과 전쟁이다. 주민들은 조를 짜서 도시락을 싸들고 핵발전소 예정부지의 농성천막을 지키고 집회를 준비하면서도 제철에 잡아야할 고기를 잡지 못하고 밭을 돌보지 못하여 늘 걱정이다. 밀양의 농성장을 지키느라 감을 따지 못하는 농민들의 심정이 그랬을 것이다.
두 번째는 여성들의 힘이다. 이와이시마에서도 투쟁의 주역은 여성들이었다. 부인회의 여성들은 밤에도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도록 바지를 입고 생활하며, 투쟁의 고비마다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물론 밀양의 할매들도 그랬다.
세 번째는 이른바 내부인과 외부인의 하나됨이다. 가미노세키의 핵발전소 유치 세력들은 외부인은 끼어들지 말라고 현수막을 걸었지만 자발적인 연대의 움직임은 커져갔고 미디어를 다룰 줄 아는 젊은 활동가들의 지원은 특히 큰 힘이 되었다. 손으로 노를 저으며 해상 공사를 몸으로 막아낸 ‘무지개 카약대’는 투쟁을 거듭하면서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게 되었다. 모두가 이와이시마가 되었고 그렇게 모두가 밀양이 되었다.
네 번째는 추진파와 반대파의 대립과 이를 활용하고 자극하는 보상책과 분리 수법의 고약함이다. 어업권과 보상금 수령을 둘러싸고 이와이시마는 고립되었고, 가깝던 가족친지들이 추진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장례식에도 가지 못할 정도로 골이 파였다. 투쟁은 일단락되었지만 이와이시마와 밀양 모두 상처는 여전히 깊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예상 밖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지만, 가미노세키 핵발전소의 매립공사 연장 허가가 불허된 것은 이와이시마 주민들의 굽힐줄 모르는 투쟁이 배경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핵발전소를 못 만들게 하고자 한다면 이와이시마에서 배울지어다.
탈핵신문 2016년 9월호 (제45호)
김현우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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