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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방사능 공포의 일상 속 페이소스

겐유 소큐 지음, 박승애 옮김, 빛의 산, 펜타그램, 201510

 

지은이는 후쿠시마 현 출신이자 동일본대지진 당시 그곳 절의 주지스님이기도 했던 소설가다. 젊은 시절에는 쓰레기소각장, 나이트클럽 매니저, 영어교재 판매원 등 직업을 경험했고,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에는 재난의 아픔을 글로 전하는 한편 지역 주민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그의 글이 담고 있는 위트와 페이소스가 잘 이해된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섯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쓰나미에 희생된 가족의 기억, 가설주택 피난 생활의 곤란, 망가진 일상을 그래도 계속해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면면들을 전한다.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두드러진 모티브는 방사능인데, 주부들의 먹거리 걱정부터 도쿄전력의 핵발전소사고 수습 작업에 투입되는 아들에 대한 염려까지 방사능은 공포이자 숙명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과 고통스러운 처지는 추상적으로 강변되지 않고 매우 소소한 에피소드의 장면들 속에서 문득문득 드러난다. ‘기도하는 사마귀편의 주인공 야마구치는 아내를 쓰나미로 잃고 가설주택에 살며 매일같이 후쿠시마 현장의 제염 작업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원래는 웨딩플래너와 파티 기획자로 열정적으로 살던 사람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건물의 지붕과 마루를 하루 종일 닦아내는 보람없어 보이는 일에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선뜻 나선 것은, 달리 할 일이 없어서기도 하지만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사정도 깔려있다. 그러던 중 한 지인이 가설주택 단지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그 기획과 진행을 그에게 맡기자 그는 삶의 새 동기라도 찾은 듯이 활력을 되찾는다. 결혼식은 지역 주민들의 치유와 희망을, 야마구치가 보살피던 사마귀는 그의 아내와 어쩌면 자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

 

마지막에 실린 빛의 산은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다. 후쿠시마사고 후 한참이 흐른 뒤, 많은 사람들이 작은 방사능 산으로 관광을 온다. 이 산의 정체는 각종 방사능 잔해를 쌓아 만든 무덤이고 관광 안내인은 이 산을 만든 노인의 아들이다. 사고 이후 여러 집에서 나오는 방사능 잔해와 나뭇가지들을 노인은 마다하지 않고 자기 땅에 모아두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몰래 버린, 또는 가져다준 폐기물들이 수십 미터의 산이 될 때까지 쌓여갔다.

 

노인은 방사능 흙과 풀나무들로 산을 단단히 다졌고, 자기 부인과 기르던 개의 무덤을 산 위에 만들었으며 급기야 자신의 시신을 그곳에서 화장해달라고 유언을 남긴다. 폐기물이 축적되면서 방사능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고, 노인의 아들은 소스라쳐 놀라 고향과 부모를 떠나지만 노인의 장례를 위해 다시 산을 찾는다. 이 산은 이제 스스로 정체모를 빛을 발하고, 노인을 화장한 불길은 며칠이 지나도 꺼질 줄을 모른다. 그리하여 투명하고 기품있고 게다가 표독스러운 매력도지닌 푸른 빛의 이 산은 약사여래의 강림이나 동방정토일지도 모른다. 산에 올라가 80밀리시버트(mSv) 코스의 방사능을 쏘이기 위해 관광객들은 노인 앞에 줄을 선다. 지금 후쿠시마의 들판 곳곳에 방사능 제염작업으로 후레콘백(제염한 방사성 물질을 담아둔 검음 마대, 편집자 주)들이 3~4층으로 쌓여 산을 이루고 있는 장면을 작가는 진작에 예견했던 것만 같다. 작가가 스님답게 던지는 역설의 화두 앞에서 큰 깨달음은 얻지 못하더라도, 사바세계의 탈핵은 앞당겨야 하겠다.

 

탈핵신문 2016년 6월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