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줄거리는 상당히 당황스럽다.
‘한수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용감한 핵물리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서서 고리 및 신고리 핵발전소의 관리와 건설에 필요한 기술을 지원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을 위한 비밀 활동에 종사하다가 의문의 사고로 실종된 후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내력을 가졌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당시의 사고 관련 기록을 조사하다가 이것이 프랑스, 미국, 소련, 한국 정부 등이 얽힌 중대한 사건이었음을 알게 된다.
1978년에 프랑스 파리를 떠나 앵커리지로 향하던 대항항공 여객기가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 영공으로 들어서고 이를 소련 전투기가 피격하여 무르만스크의 얼어붙은 호수에 불시착한 실제 사건이 있었다. 작가는 이를 모티브로 하여 한수원의 아버지가 이 비행기를 통해 프랑스의 재처리된 플루토늄과 핵무기 설계도를 싣고 한국으로 가려다가 CIA에 포착되었고, 박정희 정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보잉기의 설계 기술을 습득하려는 소련의 공모 속에 항로를 잃게 되고 사고를 위장한 납치를 당하게 되었다고 설정한다. 김형욱이 박정희를 배신한 것과 프랑스에서 죽은 것도 모두 핵개발을 위한 위장이었다고 묘사된다.
그런데 무서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어서, ‘아나톨리’라는 이름의 국제 테러 조직이 고리핵발전소를 폭파하기 위해 잠수부를 들여보내다 죽는 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급기야 폭탄을 실은 경비행기가 신고리 1호기의 돔을 들이받는 장면까지 펼쳐진다. 큰 폭발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의 돔은 건재하고 방사능 누출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핵발전소 건설과 운용 기술이 세계 최고임을 보여준다는 자랑이 곁들여진다. 그리고 이 모든 사고와 테러는 한국의 세계 핵발전소 시장 진출을 견제하려는 다른 핵수출국들과 관련된 음모로 설명되며, 한수원을 비롯한 그녀의 지인들이 영웅적으로 한국의 핵발전소와 핵발전산업을 지켜내는 장면들이 헐리우드 영화처럼 펼쳐진다.
그 와중에 북한은 미사일 몇 발을 발사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감시의 눈초리를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강경파 장관과 군 인사들은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겉보기엔 신중론자인 대통령이 ‘신의 불꽃’ 프로젝트의 진척을 묻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나는데, 이는 은밀히 핵무기 개발이 추진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은 결국 허구이지만 몇 가지 진실을 알려준다. 핵발전이 핵무기와 한 몸일 수밖에 없다는 것, 주요 대기업들의 이해관계와 핵발전 증설이 구체적으로 얽혀있다는 것, 아무리 많은 방어와 보안 체계를 갖춘다 하더라도 핵발전 시설은 테러의 쉬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우수한 핵발전 기술 개발과 수출이 더욱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겠고, 반대로 핵발전 기술 자체가 갖는 항상적 위험성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도 전자의 사람들 중 한 명이겠지만, 후자에 속하는 나는 그래서 이 책을 탈핵소설로 읽었다. 다른 것들을 떠나서라도, 그 모든 난동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핵발전이라면 절대 찬성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한국수력원자력이 커피빈과 제휴하여 만든 서울 종로2가 ‘에너지팜’에서 습득했다. 작가가 2009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출간했던 것을 2016년 1월말 개작하여 재출간한 것인데, 재출간되자 갑자기 인터넷서점 한국소설 베스트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소설의 내용만큼이나 여러모로 의문이 꼬리를 문다.
탈핵신문 2016년 8월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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