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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기사, 핵폐기물

일방통행의 악순환 -6월 17일, 정부의 ‘고준위핵폐기물 공청회’ 유감

지난 617()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고준위핵폐기물 공청회는 지금까지 정부가 핵발전소 건설을 하면서 주민을 상대로 벌였던 기만적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먼저 정부의 한 부서에서 관료와 전문가 몇이 머리를 맞대고 건설안을 만든다. 내부 승인과정을 거쳐 이를 관보에 싣는다. 규정에 따라 공청회를 아무 날 아무 시에 연다고 역시 관보에 싣는다(이들은 관보에 실으면 전 국민이 다 아는 것으로 간주한다). 공청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었으며, 미진한 부분은 보강하겠다는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돌린다. 그리고는 용역을 발주하고 일방적으로 공사를 진행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공청회617() 서울 The-K호텔 3층에서 있었다. 이날 공청회는 논란 끝에 시작과 동시에 정회를 했고, 1시간 지난 후 일방적으로 다시 개회했고, 박동일 과장(산업통상자원부 원전환경과)이 무선마이크를 들고 단상이 아닌 객석으로 이동해 겹겹이 세운 진행요원들을 장벽 삼아, 1~2분 만에 공청회 개최 취지 설명 후 의견 있냐고 물은 뒤 공청회 종료를 선언했다. 1~2분 동안 지역주민들은 박동일 과장의 일방적인 행사 종료 선언을 저지하기 위해 사방에서 달려들었고, 가로막는 진행요원들과 충돌하면서 객석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의견제시나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공청회 파행산업통상자원부·언론, ‘법대로 치렀다고 보도

 

이런 일을 지긋지긋하게 겪은 핵발전소 인근지역 주민들은 절차고 뭐고 간에 정부가 제시하는 안이나 일정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심리가 형성되었다. 속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거의 매번 당하다 보면 누구라도 악만 남을 것이다. 지난 공청회는 한 마디로 파행 그 자체였다. 아무런 의견제시나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산자부는 언론에 “2016. 6. 17()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기본계획() 공청회는 회의진행 방해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안건발표 등 소정의 절차 및 의견개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계획대로 완료되었음. 향후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역설명회 등을 통해 더욱 소통에 노력하겠음이라는 보도자료를 돌렸다. 현장을 보지 않은 언론사들은 보도자료를 인용해 공청회가 절차대로 완료되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린다. 좀 더 적극적인 매체들, 예컨대 평소 정부 측 인사들과 술자리를 자주하는 언론사는 공청회를 방해하는 주민들을 폭도로 묘사하면서 그럼에도 법대로 공청회는 무사히 치러졌다고 보도한다. 언론수단이 없는 주민들은 어디 하소연도 못한 채 속으로 적개심만 키운다.

 

영광군수·군의장 면담 후 당일 새벽 5, 영광주민 180명 관광버스 5대로 서울 출발

 

617일 새벽 5시 영광주민 180여 명은 관광버스 5대에 나눠 타고 오전 10시에 열리는 공청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전날 영광핵발전소범군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공동의장단은 영광군수와 영광군의회 의장을 만나 상경투쟁의 의미를 설명하며 군민들의 의지를 전했다. 범대위에는 영광군에 있는 153개 사회단체가 망라되어 있으므로 100%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군민들의 반대의사만 표시하고 오자는 이도 있고, 아예 공청회를 무산시키자는 이도 있었다.

 

회의 시작 30분 전에 현장에 가보니 경찰이 건물 주위에 진을 치고 들어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었다. 공청회 장소부터 문제였다. 주차비를 내야지만 입장할 수 있는 외진 호텔에서, 그것도 3층에 회의실을 잡아놓고 모든 계단은 막아놓은 채 오로지 엘리베이터로만 올라갈 수 있게 해놓았다. 사람들이 되도록 오지 말았으면 하는 주최 측의 의도가 빤히 보인다. 아니나다를까 주민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니까 진행요원들이 막으며 인원수를 제한하겠단다. 현장에는 영광주민 외에 전국에서 온 활동가와 시민 합쳐 약 200여 명이 서성대고 있었다.

 

한수원·산자부 동원한 사람들로 행사 2시간 전 좌석은 차고, 영광주민들 절반도 입장 못해

 

이미 10시가 넘었지만 주최 측은 들여보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경찰과 산자부 직원, 주민대표 등이 옥신각신하다가 80명만 입장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올라가 보니 넓은 회의장은 이미 한수원과 산자부가 동원한 사람들로 좌석이 거의 차 있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이들은 이미 2시간 전에 착석 완료하였고, 이 가운데 7~80명은 전날 호텔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참석했다고 한다. 그 많은 호텔 비용과 차비를 누가 댔을까? 주민들은 제 호주머니 털어 예까지 왔거늘. 시민단체가 시청 앞에서 집회신고를 할라치면 정체불명의 관변단체들이 미리 신고해서 골탕 먹이는 수법을 공청회에서도 써먹다니!

 

주민들 일부는 빈자리에 앉았지만 많은 수는 자리가 없어 단상주변에 서있는 수밖에 없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회의 시작을 알리자 주민들이 격앙하여 이런 공청회는 인정할 수 없다며 단상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약 1시간 가량 단상을 점거한 주민들과 주최 측과의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갑자기 산자부 직원이 와서는 산자부 차관이 주민대표들을 만나고자 하니 밖으로 나오란다. 일부 대표들은 못 만날 것 없다는 의견이었으나 일부는 지가 와서 얘기할 것이지 왜 우리더러 오라 가라 하냐며 거부하였다.

 

1시간 정회 후 일방적인 개회 선언, 객석에서 무선마이크로 불과 1분 만에 공청회 종료 선언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우연히 화장실을 다녀온 영광범대위 의장단이 회의장 입구에 한데 모이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했으니까 차관을 만나 이런 공청회는 인정할 수 없으니 우리의 요구만 전하고 나오자고 얘기가 되었다. 회의실 건너편 방에 대기하고 있던 차관을 만나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다시 회의실로 가니까, 갑자기 사회자가 객석 중간에서 진행요원에게 둘러싸인 채 무선마이크를 들고 회의 재개하겠습니다. 의견제안 없습니까? 나머지는 서면으로 의견 받겠습니다. 이것으로 공청회를 마칩니다라며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정부와 한수원 측에서 동원한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공청회는 어이없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공청회를 무산시켰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날치기 당했다고 말한다. 산자부는 후안무치하게도 절차대로 완수했다고 말한다. 모두들 자기 희망대로 말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청회에서 참석자들 사이에 의미있는 대화는 한 마디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공청회를 강행하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의 실랑이만 있었을 뿐이다. 이건 공청회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다. 정부 쪽에서 보면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헛된 몸부림이었고, 주민 쪽에서 보면 핵발전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아 정부가 타협적 태도로 나오는 건 이슈와 함께 정부의 잘못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있을 때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언론통제에 목을 매고, 자신들의 잘못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정부가 상황을 만들어놓고, 주민들을 폭도로 모는 악순환정부의 태도가 변해야!

 

이런 식의 일이 반복되다 보니 주민들로서는 정부가 주관하는 모든 일정에 대해 원천 봉쇄또는 일체 거부만이 최선의 대응책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어떠한 타협이나 대화도 역이용하여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하고 마니까. 산자부 차관이 주민대표들을 만나자고 사정하여 일부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나주니까, 그것을 빌미로 날치기를 강행하는 사람들이 다음번에 또 나타나서 주민설명회를 하면 그에 응할 주민이 있을까. 정부 스스로 강경파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주민을 폭도로 모는 악순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답답하기만 하다.

 

힘을 가지고 있는 정부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이 땅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박동일 과장은 날치기 공청회 종료 선언직후 진행요원들과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행사장 문밖으로 도망쳐버렸고, 한 순간에 일어난 일에 영광·경주·고창·부산·영덕 등의 주민들은 분노와 허탈함을 안고 단상에 선 채 날치기 공청회 무효다’, ‘정부의 일방적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계획,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6년 7월호 (제43호)

황대권(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