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장 주민투표 10년
2005년 11월 2일.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에서 정부 주도의 핵폐기장 유치 주민투표가 이뤄진 날이다. 2003년 부안군수의 독단적인 핵폐기장 유치 신청으로 시작된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2004년 2월 부안군민들의 자발적인 주민투표로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이후 정부는 이미 유치 신청을 한 부안을 포함해 다른 지역의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받았으나, 신청 요건에 부합한 지자체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지역간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주민투표 방식으로 계획을 변경, 2005년 11월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핵폐기장 선정 방식을 주민투표방식으로 바꾸면서 정부는 중·저준위 핵폐기장과 고준위 핵폐기장을 구분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지역지원금을 법률로 약속했다. 산업부 장관이 위도 주민들에게 준비없이 3천억원 지원을 공약했다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것을 보완한 것이다. 또한 한수원 본사 이전, 양성자가속기 건설 약속 이외에도 약 8조원에 이르는 큰 지역지원을 약속했다.
핵폐기장 주민투표 기간 내내 정부는 홍보비와 공무원 투입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주민투표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지역주민들에게 금품과 관광 등 향응을 제공했고, 지자체 공무원들은 ‘홍보요원’으로 투입되어 마을을 돌며 ‘핵폐기장 유치 필요성’을 알렸다. 통장, 이장, 반장은 물론 기초수급 대상자를 관리하는 지자체 행정직원들까지 총 동원되어 홍보물을 돌리고, 부재자 투표를 유도했다. 경주와 군산이 1,2위를 다투는 국면에선 고질적인 지역감정 자극 발언까지 나오며 주민투표는 혼란 속에 진행되었다.
지원약속도, 특별법도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주민투표는 경주 주민 89.5%의 찬성으로 끝났다. 주민투표 기간 동안 삭발단식 농성까지 하면서 주민투표를 진두지휘하던 경주시장은 주민투표가 끝난 다음날 카퍼레이드까지 하며, 주민투표 승리를 벅차게 맞이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방폐장은 무려 4차례나 공사기간을 연장하였고, 주민투표 이후 부실지반문제가 알려지면서 방사성 물질 누출 및 활성단층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특별법으로 약속했던 지원금 3천억원은 도로 건설 등 일반회계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업비로 다쓰고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 외에 약속했던 8조원 지원금은 이후 논의 과정에서 5조원으로 액수가 줄고, 그나마도 10년째 절반밖에 지원되지 않아 지난 8월말 열린 핵폐기장 준공식에 경주시의회 시의원들이 불참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는 주민투표 이후 위치 선정문제로 또다시 내홍을 겪다가 이제 겨우 부지를 확정짓고 아직도 공사 중이다. 절대 건설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용후핵연료 관련시설도 2011년 월성핵발전소 건식저장시설이 건설되면서 사실상 없던 일로 되어버렸다.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닐 것이다’라는 주민투표 당시 허황된 꿈이 사실로 밝혀지는데 채 10년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핵폐기장 갈등
2005년 핵폐기장 주민투표 직후 정부는 ‘19년 묵은 숙제’가 풀렸다며, 핵폐기장 주민투표의 성과를 평가했다. 특히 당시 노무현 정부는 주민 참여로 갈등을 해소한 대표적인 사례로 2005년 핵폐기장 주민투표를 꼽았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2005년 핵폐기장 주민투표를 성공사례로 설명하지 않는다. 수천억원의 돈으로 주민들을 현혹시켰고, 지자체간 경쟁을 부추긴 주민투표였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지역감정 타파’를 내건 노무현 정부가 오히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쟁과 지역감정을 부추긴 사실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무엇보다 2005년 핵폐기장 주민투표의 실패는 가장 최악의 부지인 경주에 핵폐기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수백년이상 지속될 핵폐기장을 부실한 지반에 만들었다는 사실은 후세에게 새롭게 어려운 숙제를 넘겨둔 셈이다. 또한 법까지 만들어가면서 정부 스스로가 한 약속을 정부가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핵폐기장 주민투표가 얼마나 부실한 것이었는지 후손들에게 알려주는 또하나의 징표가 될 것이다.
탈핵신문 2015년11월호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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