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산재(産災) 우메다재판이란?
2016년 4월 15일, 일본 후쿠오카지방재판소는 핵발전노동 시 방사선피폭으로 인해 심근경색을 앓았다며 산재 인정을 요구한 후쿠오카시 거주 우메다 류스케 씨(81)의 고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메다 씨는 1979년, 시마네핵발전소 1호기와 쓰루가핵발전소 1호기의 정기검사에 배관공으로 종사했다. 정기검사가 끝나자 원인불명의 코피와 구역질, 현기증, 전신권태감 등이 나서 의료기관을 전전하다, 나가사키대학에서 받은 정밀검사에서 코발트와 망간, 세슘 등에 의한 내부피폭을 확인했다. 산재신청을 하려는 그에게 발주기업이 압력을 가해 그는 얼마 되지 않는 위로금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대신 건강한 몸과 배관공이라는 직업을 잃었다.
이후에도 핵폭탄피폭자들에게 종종 나타나는 전신권태감에 시달렸으며, 2000년엔 심근경색을 앓았다. “심근경색 발병은 (여러 가지 원인들과 함께) 1979년 당시의 피폭이 관련돼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나가사키대학병원 의사의 협조를 받아, 산재를 신청한 우메다 씨에게 정부는 피폭선량이 사업자가 제출한 기록상에는 8.6mSv(밀리시버트, 일반인의 연간 피폭허용치는 1mSv이며, 한국의 경우 방사선 관련 직업 노동자의 연간 피폭허용치는 50mSv, 5년간 100mSv이며,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연간 20mSv로 규정하고 있다, 편집자 주)에 지나지 않는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2년 2월, 우메다 씨는 산재급부 부지급 처분 취소를 요구해 후쿠오카지방재판소에 제소했다.
드러난 핵발전노동의 어둠
원고 측 증인으로 증언대에 서게 된 과거 핵발전노동자였던 두 사람(사이토 세지 증인, 마스모토 히로시 증인)은 모두 악성종양이나 눈병, 갑상선질환, 순환기질환 등 피폭의 영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목숨을 건 증언을 했다.
1980년에 쓰루가핵발전소에서 일한 적도 있는 사이토 세지 증인은 핵반응로(=원자로) 내 작업에 방사선관리자는 함께 하지 않았고, 방호마스크를 살짝 들거나 계측기에 부정행위를 저질러도 아무도 주의하지 않았으며, 자신도 방사선관리자로부터 관리구역 출입카드에 선량계 수치보다 낮은 수치를 적도록 지시를 받았고, 게다가 그렇게 연필로 적은 수치마저도 나중에 고쳐져 있었다는 등, 당시의 허술한 피폭관리의 실태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증언했다.
사업자가 제출한 우메다 씨의 선량기록에 대해서도, 피폭노동에 종사했을 1979년 2월 중의 선량이 기재되지 않았고, 당시 연필로 적은 높은 선량 수치를 누군가가 모두 지우고 30, 50, 10밀리렘(mrem, 생물학적 영향을 고려한 전리방사선 흡수선량의 단위로 최근에는 렘(rem) 대신 시버트(Sv)를 사용하고 있다. 1rem=1000mrem이고 1mrem=10μSv, 편집자 주) 등 잘라 말하기 쉬운 숫자의 나열로 고쳐 써 놓았다는 등을 우메다 씨 스스로가 증언했다.
다카기 가즈미 교수(기후대학)가 모은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증언 중엔 노동자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피폭선량을 낮게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언들이 많이 있다. 우메다 씨 또한 같은 숙소에 머물던 ‘아저씨’가 동료들의 선량계를 그룹마다 작은 박스에 담아 맡아줬다고 증언했다.
우메다 씨의 피폭량에 대한 과학적 검증
사업자가 제출한 당시의 작업지시서 등의 자료엔 우메다 씨가 작업에 종사한 곳의 선량이 기재돼 있다. 이 선량을 실마리로 삼아 우메다 씨의 피폭선량을 추정했다. 그 결과 시마네핵발전소에선 낮아도 2.9mSv, 최대 127.4mSv, 쓰루가핵발전소에선 최소 19.1mSv, 최대 206.3mSv였다. 더군다나 이 수치마저도 배관 개방 등으로 작업환경의 오염도가 높아진 상태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등, 과소평가일 수 있다고 한다.
1979년 당시 우메다 씨의 전신방사선측정기 측정결과도 다시 해석했다. 그 결과 당시 우메다 씨의 몸속에서 반감기가 짧은 요오드131 등의 핵분열생성물 스펙트럼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으며, 정부가 주장하는 피폭선량이 내부피폭에 대해서도 매우 과소평가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판명됐다.
또한 마쓰이 에스케 의사(기후환경의학연구소 소장)이 당시의 의료기록을 재검토하여 당시 우메다 씨에게 나타난 증상들이 급성방사선장애였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방사선피폭과 심근경색의 관련성을 둘러싼 공방
핵폭탄피폭자들을 대상으로 한 방사선영향연구소의 역학조사에서, 암 이외의 질환 위험성 증가가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이후의 일이며, 최근에 와서 연구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해명되지 않은 부분도 많다.
정부는 방사선영향연구소의 역학조사에서 “현재까지 얻은 0.5그레이(Gy, 단위 질량당 흡수되는 에너지량으로 표현하는 전리방사선량, 1Gy=1J/kg, 편집자 주) 미만의 결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 등을 근거로 인과관계를 부정하려 했다. 이에 대해 미요시 에사쿠 명예교수(규슈대학) 등의 그룹은 이 역학조사를 통계학적으로 해석하여 위험성 증가가 94%라는 매우 높은 확률로 나타났음을 밝히면서 “유의하지 않다”는 한마디로 이 위험성을 잘라버리려는 정부의 자세를 비판했다. 또한 미요시 에사쿠 명예교수 등의 노력으로 저선량 영역에서 허혈성 심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했음을 나타내는 최신 역학조사 결과들이 수집됐고, 마쓰이 에스케 의사의 협조로 방사선피폭이 심근경색 발병 위험성을 높이는 의학적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부당판결
그러나 후쿠오카지방재판소는 기계적으로 판독되는 “외부피폭선량 기록 수치를 고쳐 쓰는 것은 어렵다”는 형식론을 늘어놓았으며, “방사선관리원 등 감시의 눈도 있는 원자력발전소 관리구역 내에서 그러한 일을 쉽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등 계측기를 남에게 맡겼다는 사실도 부정했다. 우메다 씨에게 당시 나타난 급성방사선장애의 여러 증상엔 완전히 눈감고, 피폭선량을 기록상의 8.6mSv로 인정하면서 이 피폭선량이 “CT촬영 1.5번하는 수치에도 못 미칠 정도의 저선량”이라며 심근경색 발병과의 인과관계도 부정했다.
이 판결은 핵발전노동의 살아 있는 증인이 증언한 핵발전노동의 실태를 외면하고, 방사선피폭의 실태와 인과관계 증명을 말단의 한 노동자에게 지나치게 혹독한 증명책임을 요구하는 몹시 부당한 판결이다.
싸움의 무대는 항소심으로
“지금도 후쿠시마에서 생기고 있는 피폭노동자들을 위해 죽을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 이러한 우메다 씨의 결의를 받아, 싸움의 무대는 후쿠오카고등재판소로 옮겨졌다.
방사선종사자중앙등록센터엔 핵시설에서 일하는 방사선업무종사자로 약 59만 명(2015년 3월 기준)이 등록돼 있지만, 그 때까지 방사선피폭을 이유로 산재가 인정된 것은 13건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핵발전의 경제합리성은 우메다 씨 같은 핵발전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아무런 보장도 없이 착취함으로써 성립돼 있다.
모든 핵발전소 폐쇄를 바라는 시민들의 더 높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4월 15일 후쿠오카지방재판소 고소 기각 판결 후, 당일 보고집회에서 인사하는 원고 무메다 류스케 씨 모습.
사진제공 = 보고집회 참가자
이케나가 오사무(변호사, 핵산재우메다재판변호단 사무국)
원자력자료정보실통신 504호(2016년 6월 1일호)에서 전재
번역·요약 고노다이스케 편집위원
탈핵신문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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