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세계사회포럼, ‘피폭노동 문제’ 정면으로 다뤄
2016년 반핵아시아포럼과 결합해서 열린 반핵세계사회포럼에는 여러 나라의 반핵 활동가들뿐 아니라 전·현직 핵발전소 노동자들도 참가해서 그 의미를 더했다. 특히 3월 27일 도쿄의 한국YMCA 호텔에서 열린 반핵세계사회포럼 연속 워크샵은 네 번째 주제로 핵발전산업 종사자들의 피폭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피폭노동의 문제는 핵발전을 하는 모든 나라에서 사회적으로 어둠 속에 감춰져 있고, 핵발전에 필수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라는 점이 망각되곤 한다. 이 워크샵은 각 나라의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공통의 문제들을 토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핵발전소 하청노동, 노동자들의 피폭을 하청하고 분산!
처음 발언자로 나선 필립 비야르는 프랑스의 핵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했고, 지금은 하청노동자 연합 기구의 대표를 맡고 있다. 프랑스 핵발전소 전체에서 1만 5천명 정도의 원청 정규직 노동자가 있다면 하청 노동자는 2만 5천명 이상이다. 그는 핵발전소에서 하청노동을 쓰는 것은 관련 질병의 책임을 회피하고 피폭 프로세스(경과·과정, 편집자 주)를 눈에 잘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비판했다.
물론 하청 구조는 노동조합 활동을 어렵게 하고 건강검진이나 급여도 불리하게 만든다. 하청노동자는 계속 교체되면서 결국 노동자 일인당 누적 선량을 낮게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데, 말하자면 피폭을 하청하고 분산하는 꼴이다.
체르노빌 사고 경험 노동자, 사고 시 “현장으로 돌아가지 마라!”
우크라이나에서는 두 명의 노동자가 왔는데,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직접 경험한 이들이다. 미콜라 보즈니크 씨는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체르노빌의 노동자 모두는 고도로 훈련받았고 핵발전소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폭발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사고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직접 피폭을 당하고 많은 것을 잃었지만 방사능에 대해 정부가 알려주는 것은 별로 없었고, 이후 나타나는 질병들은 방사능 공포증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미콜라 보즈니크 씨는 다시 그런 사고가 일어난다면 노동자들에게 현장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할 것이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후쿠시마 사고 수습과 제염, 7~10차에 걸친 하청 구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수습과 제염 작업에 투입되었던 이케다 미노루 씨가 일본의 상황을 전했다. 일본 핵발전 노동이 7차에서 10차에 걸친 악명 높은 하청 구조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이 하청 구조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입과 안전 관리를 모두 미흡하게 만들고, 노동자들의 이익 대변도 어렵게 한다. 예를 들어 제염 작업은 일당 1만 7천엔에 더해 위험수당 1만엔을 받는데, 오히려 더 위험한 수습 작업은 1만 4천엔에 4천엔을 더 받는 정도라고 한다. 이유는 제염 작업은 중앙정부가 직접 담당하는 반면에 사고 수습은 도쿄전력을 원청으로 하는 여러 단계의 하청 회사들이 작업을 나누어 맡아 진행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 후쿠시마제1핵발전소의 노동자에게 최초로 산업재해가 인정되었는데, 그러나 그것이 방사능 피폭과 질병 사이의 인과 관계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여전히 방사능 피폭 위험의 공식 인정까지는 좁은 문이다.
한국 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30~40% 이상
한국에서는 한울(=울진)핵발전소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결성한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발표되었다. 한국의 핵발전소 1개(2기 기준)을 운영하는데 대략 7백 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한데,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은 평균 320명이고 자회사인 한전KPS는 200명, 그리고 그 나머지인 30% 정도가 간접고용인 비정규직 노동자다. 신규 핵발전소는 그 비율이 40%를 넘는다.
몇 년 마다 고용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처우에서 차별을 받을 뿐 아니라, 노동경험 축적이 어렵고 업무가 과다하며 정보 습득도 제한되어 있어서 핵발전소 사고나 가동 차질 때 적절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 정작 핵발전소 가동과 관리의 일선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면서도 간접 고용으로 묶여있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핵발전소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 핵발전소에서 일하지 않을 권리
여러 나라의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듯, 핵발전 종사 노동자들의 안전과 핵발전 자체의 안전 모두를 위협하는 것은 결국 산업자본의 논리이며, 사회적 압력이나 규제가 없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피폭 노동을 담당하는 이들은 방사능 덩어리나 가해자로 간주되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한 처지에서 핵발전소 가동과 사고 수습 모두를 담당해야 하는 이들과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워크샵의 말미에 민감한 질문이 던져졌다. 핵발전소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결국 핵발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핵발전소가 아닌 다른 데서 일하는 가능성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시간 부족을 이유로 다음날 더 토론하기로 하고 워크샵은 끝을 맺었다. 핵발전소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핵발전소에서 일하지 않을 권리,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고 우리의 답은 무엇이어야 할까?
체르노빌 사고를 경험했던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의 발표
탈핵신문 2016년 4월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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