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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한국 가톨릭교회 탈핵방문단 일본기행③…후쿠시마 순례(2)

피난길에 오른 21천여명의 나미에마치 주민들

2015924()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무렵, 그렇게 동일본대지진 그 참혹한 쓰나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나미에마치 바닷가의 한 초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일대의 모든 건물이 사라진 가운데 홀로 앙상한 폐허로 버티고 서 있는 이 학교, 핵발전소 교부금으로 변두리 지역치고는 훌륭한 시설을 자랑했던 그곳. 그나마 한 선생님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코앞에 바다를 두고도 한 명의 학생도 피해 없이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그것은 그저 잠깐의 값싼 위로였습니다.

핵발전소 주변지역과 달리 10km가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경고도 버스대피령도 내리지 않았고, 그저 알음알음 소문으로 피난길에 오른 나미에마치 21,000여 명의 주민. 그것도 잘못된 곳으로 피난을 갔다가 어이없이 추가 피폭사고까지 당한 사람들. 지나던 길가 잔디에서 측정된 수치는 국제 기준치인 시간당 0.114마이크로시버트(μSv, 연간 피폭허용 기준치는 1밀리시버트mSv)50배가 넘는 6마이크로시버트를 웃돌았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도시구역을 만든다고 길을 넓히고 도시를 확장하는 공사를 하는 와중에 후쿠시마 사고에 노출된 도시는 폐허가 되어 버려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일, 어느 곳에서나 그러했지만 길고 무거운 침묵보다는 안타까운 탄식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전날 묵었던 이와키시 숙소로 돌아오며 내버려진 고향, 그곳 집마당에 가지런히 세워진 조그만 자전거가 계속 아른거렸습니다.

핵이 인류에게 가져오는 가장 가공할 피해는 어떤 아픔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깡그리 사라지고 마는 진공의 체험, 모든 것이 허무하게 스러지고 어떤 의미비록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일지라도도 남기지 않고 모든 존재의 의미를 공허하게 흩어버리는 막막한 지경이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곧 핵은 그저 인류가 긴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문명에 타격을 가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우리를 생명의 진화 이전 단계로 거슬러 올라 상상 이상의 악몽의 지평을 열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핵발전이 불러온 지역사회 문제와 열악한 노동조건

925(), 한국 가톨릭교회 탈핵방문단의 일본에서의 마지막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날 늦은 밤까지 각자의 탈핵운동과 일본의 상황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며, 향후 우리의 길을 모색하는 나눔의 시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각자에겐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고, 지금껏 살아온 길이 달랐지만 분명 후쿠시마를 간접적이나마 같이 체험한 동질감은 이후 어느 곳에 있든지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를 이끄는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은 숙소에서 일정을 총정리하는 의미로 핵발전소 상황과 원전 노동자-지역 노동조합 / 협동조합원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의 시의원과 또 한 분의 노동조합 상담원의 도움으로 핵발전이 불러온 지역사회 문제와 열악한 노동조건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12만 명이 피난을 온 이와키시는 갑자기 불어난 인구로 인한 제반 사회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물가상승이며, 쓰레기 문제 그리고 치안 문제 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히 핵발전소 사고로 피난온 주민의 경우 매달 한 사람당 10만 엔의 정신적 피해보상금이 주어지지만, 그 피난민을 기꺼이 받아들인 지역주민들은 그런 보상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낯선 두 그룹을 감싸주던 연약한 휴머니즘의 덮개는 간단히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돈 문제로 건설된 핵발전소는 그 사고가 수습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본의 논리로 그 폭력성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발전의 야만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영역을 들자면 노동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남의 자리에 배석한 시의원은 어느 핵발전소 노동자가 70세 할머니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발생한 데에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도 한몫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편의시설도 오락시설도 없는 외곽 노동자 합숙소. 다중하청구조에 연루되어 기본적으로 3~4만 엔으로 책정된 일당이 노동자의 손에 이르러서는 그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5천 엔으로 줄어든 왜곡된 임금. 5년간 누적 방사능 피폭 총량 100밀리시버트를 250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하여 고위험 지역에 무리하게 투입하여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구조. 결국 핵발전은 노동의 신성한 가치는 고사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고려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띠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곧 처음 핵발전소를 들여오면서 과학적인 안전성을 근거로 사고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평범한 시민의 의견을 비과학적인 호들갑이라고 일축하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과학의 논리가 인간 존엄성을 포함한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가치를 삼켜버리면서 핵발전소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 것이든 조금씩, 혹은 빠른 속도로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본에서처럼 수습 불가능한 지경에서 완벽한 수습을 자신하는 정치인의 허언(虛言)속에서 노동자의 목숨은 쉽게 폐기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20151월과 4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두 차례의 산재 사망사고가 일어났고, 8월에도 발전소 건물 안에서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도 그건 통상적인 필요불가결한 비용으로 계상될 뿐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매일 투입되는 7천 명의 노동자는 소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주 금요일, 쉼 없이 개최되는 총리관저 앞 탈핵집회

우리 일행은 그렇게 3일간의 후쿠시마 순례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왔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총리관저 앞 탈핵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물량 공세를 퍼붓듯 거대한 시위 대열이 아니라, 관저를 에워싸고 띄엄띄엄 모여 집회를 하는 모습은 한편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매주 금요일 쉼 없이 개최된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거대한 자본과 핵무기를 품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에 대항해 이렇게 끊임없이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약한 모습이지만 또한 지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을 오래도록 기억해야겠습니다.

 

2016년 3월호

김준한(신부,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