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5주년, 체르노빌 30주년…후쿠시마 현지에서 진행된, 반핵아시아포럼
한국의 탈핵활동가들과 함께 일본에서 진행된 제17차 반핵아시아포럼에 다녀왔다. 기장 주민투표를 지원하는 밤샘을 하고 곧바로 날아와 피곤한 얼굴이면서도 언제나 씩씩한, 탈핵의 의지가 충만한 탈핵활동가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매우 배움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올해의 반핵아시아포럼은 후쿠시마 핵사고 5주기, 그리고 체르노빌 핵사고 30주기를 맞아 지난 3월 22일부터 27일까지 후쿠시마와 도쿄 두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핵사고 이후 30년이 지나고 그 사이 핵사고를 또 한 번 겪으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포럼은 2011년 이후 어떤 국면을 마주하고 있을까? 뭔가 다른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을까?
반핵아시아포럼 화두…‘아베정부의 귀환 정책 비판, 인도·터키 핵발전소 수출 반대’
반핵아시아포럼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아베정부의 귀환정책에 대한 우려와 비판, 그리고 터키와 인도 등지로의 핵발전소수출에 대한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터키와 인도의 탈핵활동가들은 신규 핵발전소 부지 자체가 안전성 문제 등에서 타당하지도 않다는 것, 발전소 신설 이슈에서 종종 발견되는 지역차별은 이들 국가에서는 종교와 인종 차별문제로까지 번지면서, 핵발전소반대는 터키의 경우 대통령에 대한 제소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후쿠시마 문제도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일본은 핵발전 수출의 자격이 없다며 상당한 비난을 사고 있다는 점이 집중적으로 보고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국과 함께 핵발전 수출에 열을 올리는 아베정부는 동시에 후쿠시마 피난민들의 귀환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귀환곤란지역’의 제염작업을 서두르면서 거주제한지역으로 전환한 뒤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귀환을 촉구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후쿠시마현 이와키시만 해도 2만4천여명의 피난민들이 임시거주시설에서 지내고 있지만, 내년 3월부터는 이 지원을 중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업피해배상은 이미 올해 2월에 중지되었고, 정신적 피해보상도 2018년 3월부터는 중지하겠다는, 피해를 준 주체가 이런 결정들을 차례로 발표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대다수 정부들, 자국 시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찬핵정책…중국과 대만의 대조적인 현실
아시아 대다수의 정부들이 자국시민들의 맹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더 적극적인 찬핵정책을 채택하고 신규핵발전소를 도입하는 추세라는 점은 매우 실망스러운 상황이지만,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후쿠시마의 현실을 자신들의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경우는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인데, 중국정부는 아주 적극적으로 핵발전소 운행과 건설을 강행중이고 설비규모의 확대도 급속하게 진행 중이지만 너무나 폐쇄적인 사회규제정책으로 인해 중국의 시민운동이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반핵아시아포럼과 같은 연대는 더더욱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졌듯이 대만의 경우는 2014년, 98%의 공정률에도 불구하고 신규핵발전소 가동중단을 결정해냈고, 이는 대만시민사회의 결정이었다는 점이 특징적이고, 올해 당선된 차이총통까지도 2025년까지 탈핵사회로 가겠다는 발표를 한 상황이다. 중국정부와의 어려운 관계 속에서 대만사회가 이 선언을 잘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반핵세계사회포럼과 요요기공원 대규모 집회…이와키시민들의 ‘자기결정’ 노력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주로 진행된 반핵아시아포럼(22일~26일)은 도미오카 지역의 답사(현재 귀환곤란지역)를 마지막으로, 덧붙여 마지막 일정을 반핵세계사회포럼(25일~28일)의 세션과 겹쳐서 진행한 후 26일 도쿄의 요요기공원에서 개최된 대규모집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날 반핵세계사회포럼으로 세션이 이어졌기 때문에 반핵, 탈핵 문제는 좀 더 글로벌한 이슈와 연대로 확장될 여지를 남기게 된 셈이다. 특히 반핵세계사회포럼에 초대된 체르노빌의 핵발전 노동자들의 경험을 비롯,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는 핵발전 및 제염노동자들의 권리와 인권문제, 전 세계가 에너지전환을 하는 가운데 피폭노동을 지속해야 하는 핵발전 노동자들의 상황은 아마도 지속적으로 중요한 주제가 될 것 같다.
이와키시는 도쿄보다 안전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후쿠시마현내에 있으면서도 풍향의 계곡지형 덕분에 비교적 선량이 낮은 지역이다. 포럼 기간 중 만난 이와키시의 주민들은 일상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자급력을 키워가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포럼 기간 중 방문했던 시민방사능측정실은 정부보다 더 신속하고 전문적인 전문가와 장비를 들여와 이와키시민들이 ‘자기결정’의 역량을 잘 키워가는 것으로 보였다. 방사능과 관련된 문제에서 인간이 얼마나 ‘자기결정’을 행사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정부와 핵산업만이 정보를 장악한 채로 시민의 일상을 좌우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의견을 내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아베정부는 ‘이제는 괜찮다, 제염은 완료되었다’는 주장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몇몇 주민들이 최근 서울시내에서 무산된 후쿠시마 먹거리 홍보행사 소식을 잘 알고 있다면서 매우 서운해 했는데, 이 분들은 괜한 의심으로 인한 ‘풍문피해(風聞, 소문피해, 편집자 주)’가 늘고 있다는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반핵세계사회포럼의 한 세션은 후쿠시마로의 귀환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시민모임 ‘후쿠시마 에토스 프로젝트’가 실은 의심스러운 뒷배경이 있다는 폭로를 하기도 해서 상당히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후쿠시마처럼 핵발전소 인근지역에 많은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면 어느 순간 아베정부의 주장을 믿고 싶어지지 않을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방사능 피폭의 결과가 전염병처럼 당장 눈에 띄는 증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자연이 변화하고, 후손들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우리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면 적어도 ‘지금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일본 반핵운동, 후쿠시마의 경험을 아프게 내보이며 각국 시민사회 자각과 연대를 촉구!
3월 26일 요요기 공원에서 진행된 대규모 집회는 3만5천명 정도의 시민들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정확히는 ‘안보관련법 반대와 탈원전’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SEALDs라고 불리는 20대 운동권 청년들이 전쟁반대를 주장하며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이 집회는 머리가 희끗한 시니어그룹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전 세대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전쟁반대와 핵발전소 재가동반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3만5천의 일본시민을 부러워하는 국내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곁에서 볼 수 있었던 이 숫자는 어쩌면 히로시마, 나가사키, 후쿠시마를 기억하는 그 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닐까 염려스러워졌다.
일본의 반핵활동가들은 핵발전 수출반대, 재가동반대, 핵발전 관련소송, 방사능감시와 측정 등 다양한 노력을 헌신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후쿠시마의 경험을 아프게 내보이며 각국의 시민사회의 자각과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사고 5년, 이제 후쿠시마는 회복되었으며, 후쿠시마 시민들은 일상으로 귀환하였으니, 전 세계도 안심하라. 수출입 규제를 풀고 도쿄올림픽에 참여하라. 이 말을 하고 싶은 유혹을 후쿠시마의 주민들과 일본사회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세대와 시간을 넘어선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19세기 일본의 첫 공해문제를 제기했던 정치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다나카 쇼조(1841~1913)의 조언을 떠올린다. “진짜 문명은 산을 파괴하지 않고, 강을 파괴하지 않고, 마을을 망가뜨리지 않으며,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탈핵신문 2016년 4월호
히옥스(하자작업장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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