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금)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지난 8월 8일 계기용변압기의 화재로 핵반응로(=원자로) 정지사고를 일으켰던 한빛2호기(영광핵발전소 2호기)에 대한 재가동을 승인했다. 화재원인과 부품 결함 및 검증 투명성, 설치 및 운영의 적법성, 운영절차서 적절성, 재발방지와 개선방안 등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나 대책이 없이 재가동을 서둘러 승인됐다.
사뭇 예전과 다른 분위기였다. 핵발전소 내 화재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사고로 적극적인 대응이 있을 법 했으나, 영광지역은 별다른 대응없이 재가동을 받아들이고 있다.
왜 그랬을까?
영광지역의 미온적인 대응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지난 상반기 한빛원전(=영광핵발전소)과 영광지역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광지역은 지난 상반기 쉼 없이 터지는 한빛원전의 크고 작은 사고로,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올해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에 공개된 사고 4건 중 3건이 한빛원전이었다. 3차례의 핵반응로 정지사고(4월 16일(3호기), 6월 3일(2호기), 8월 8일(2호기))가 기록됐으며, 심지어 3호기는 앞서 재가동된 지 4일만에 핵반응로 정지사고가 났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출력감발, 증기발생기 쇳조각 미제거 재가동,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 중·저준위핵폐기물 해상운송, 불량용접, 제어봉집합체 정비오류 등등…. 한빛원전은 숨 쉴틈 없이 사고를 치고, 한숨만 나오는 ‘한숨원전’이 되고 말았다. 잦은 사고는 불안감과 함께 피로감을 몰고 왔으며, 사람들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특히, 영광지역주민들의 한빛원전에 대한 피로감은 3호기 재가동 승인이라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재가동 승인은 핵발전소사고와 문제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무기력, 지역갈등과 혼란, 논의의 마비 등을 야기했다. 3월초, 한빛3호기 증기발생기 내 15년간 89개의 쇠조각이 방치된 사실이 알려졌다. 영광탈핵공동행동, 한빛민간환경감시기구 등은 ‘쇳조각 제거 없이 재가동 불가’를 천명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나, 원안위와 한수원은 ‘기술적 안전성을 만족하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을 강조했다. 한 달여 수차례의 회의 등은 지루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원안위는 ‘주민수용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단한번의 주민설명회도 없었다. 기본적인 민주적 형식조차도 없이 주민동의, 주민수용성 등을 이야기 했다.
4월 10일 영광·고창원전안전협의회 직후, 3호기 재가동 승인…오해·불신, 지역 내 논의 마비
결국 4월 10일 원안위는 영광과 고창원전안전협의회 회의를 끝내자마자, 미뤄왔던 3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원안위가 말해왔던 ‘주민수용성’은 관계자의 말처럼 ‘주민들의 사고에 대한 인지’까지였다. 수용성의 의미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해와 설득, 협의나 합의가 아니었던 것이다.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수용성(受容性)’이 아니라, 주민들의 의견을 녹여버리는 ‘수용성(水溶性)’이라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 말장난에 불과했다. 원안위는 역시 ‘원한위’였다.
한빛3호기 재가동 승인의 타이밍은 ‘신의 한수’였다. 영광원전안전협의회(이하, 협의회) 위원장이 수차례 ‘협의회 회의가 재가동에 대한 주민동의 권한이 없고, 창구가 아님’을 강조했다. 원안위는 악의적으로 회의가 끝나자마자 재가동 승인을 내렸고, 마치 협의회가 재가동을 동의한 것처럼 비춰지게 했다. 비난의 화살은 협의회와 위원들에게로 방향이 돌려졌다. 한순간 한빛원전의 안전성 확보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던 위원들은 위험한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동의해준 사람이 돼버렸다. 확인되지 않는 의혹들이 난무했으며, 지역 내 신뢰가 무너졌다. 오해와 근거없는 불신은 상처를 남겼다. 핵발전소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자체에 부담을 갖게 됐으며, 결과적으로 지역 내 핵발전소문제에 대한 논의 프로세스(과정)를 마비시키고 말았다.
비약일지는 모르나, 지금 영광지역은 4월 10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으나 4월 10일 원안위의 악의적 ‘신의 한수’는 영광지역에 배신과 좌절을 다시한번 안겨줬다. 너무나 아팠다. 이후에도 영광지역은 핵반응로 정지사고 등 한빛원전의 사고에 대응하고, 사용후핵연료 문제, 증기발생기 관막음 기준치상향, 중·저준위핵폐기물 해상운송 등 각종 핵관련 현안들에 대응하고 있으나 기존의 영광지역이 보여줬던 적극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4월 10일의 상처와 오해로 인해 영광지역 내 논의구조는 마비됐다. 핵발전소에 관심을 갖고, 듣고, 말하고, 논의와 찬반의 의사표현조차 부담스럽게 만들어 버렸고,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피하기 위해 대화자체를 피하는 구조가 돼버렸다. 지역 내 논의가 되지 않으니, 대응 또한 미온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
영광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7월말, 영광군농업대책위 발족
핵발전소 문제에 대한 논의 프로세스가 마비됐다고는 하나, 영광지역은 여전히 핵발전소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활동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으며, 논의구조는 다시 살아나고 영광지역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
영광지역은 앞서 말했던바와 같이 한빛원전의 각종 사고와 현안들로 잠시도 다리 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반기를 보냈다. 영광지역은 지금 산적한 현안들에 대한 지역 내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포문은 농민단체들이 열고 있다. 7월 20일 영광군농민회, 농협 등 농민단체가 ‘한빛원전 영광군농업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사용후핵연료, 증기발생기 관막음 기준치상향, 중·저준위핵폐기물 해상운송, 지자체 원전규제권한, 방재대책, 피해대책 등 한빛원전 안전성 확보를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설 것을 천명했다.
증기발생기 관막음율 상향 논란 등 4가지 주요 현안…다시 ‘선봉장’의 역할을!
영광지역 내에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의 과정을 통해 내부적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싸움을 준비해야할 중·단기적인 현안들이 많다.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한다면, 첫째, 증기발생기 관막음율 기준치 상향에 대한 대응이다. 지난 8월 6일부터 한빛4호기의 정기계획예방정비가 시작됐다. 이번 예방정비는 증기발생기 세관의 균열이 얼마나 증가하고, 현재 5.37%인 관막음율이 기준치인 8%를 넘어설 것인지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 초인 지난 2월 설날 연휴 시점에, 한수원이 원안위에 관막음율 기준치를 8%에서 18%로 상향해줄 것을 요청해놓았고, 영광지역은 8%를 넘을 경우 2018년 증기발생기 교체 때까지 가동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세우고 있어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둘째로, 부품의 품질보증 민간참여와 지자체의 원전규제권한 확대다. 영광지역은 한빛원전의 핵반응로 정지사고 등을 발생시킨 핵발전소부품의 품질보증에 대한 신뢰성 회복과 개선방안 그리고 품질보증 과정에 민간참여를 정부·한수원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잦은 사고의 원인이 부품으로 인한 사고였기 때문이다. 영광지역은 잦은 부품으로 인한 사고의 원인을 자체적으로 파악하고 부품의 품질,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주민들의 입장에서 독립적으로 검증하는 활동을 위해 한빛민간환경감시위원회 회의수당, 전남도의 지원 등으로 예산을 마련해 검증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민간의 참여로 지속적인 품질보증을 담보하고, 이와 더불어 핵발전소에 대한 규제권한의 지방사무 이전과 민간의 참여를 요구하며,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로,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지역 내 논의가 아직은 ‘우리(영광)지역에 고준위핵폐기물을 둘 수 없다’는 정도의 기존 원칙을 확인하는 정도이지만, 보다 심도깊은 논의를 진행시키며, 영광지역의 원칙을 세우고 대응해 나갈 것이다. 지역의 의견을 무시하고, 부실한 과정을 거친, 다시한번 핵시설 주변지역에 부담을 지우는 사용후핵연료공론화 권고안에 대한 영광지역의 대응은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저준위 핵폐기물의 해상운송문제다. 7월 24일 한수원은 영광 중·저준위핵폐기물 해상운송을 위한 ‘방사성폐기물 인수의뢰 신청서’를 경주의 원자력환경공단에 접수하고, 10월말 이송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달리 보상문제에 대한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으며, 해상운송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더구나 해상운송에 있어 영광군만을 대상으로 보상협의가 진행되고 있을 뿐, 이송선이 지나는 지역 특히, 긴급피항지로 예정된 진도, 광양, 김해, 포항 등의 지자체와는 협의조차 진행하고 있지 않다. 영광수협대책위를 중심으로 어업피해와 사고대책에 대한 대응이 이뤄지고 있으며, 광역해양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핵발전소 문제에 있어 영광지역은 그동안 선봉장의 역할을 했다. 기간의 투쟁과정을 통해 영광지역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이익을 대변하고, 민간의 참여와 핵발전소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노력과 다양한 활동이 있었다. 최근까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재설정,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수명연장, 삼척과 영덕 신규핵발전소 투쟁, 7차 전력수급계획 등의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영광지역이 전국적 연대활동에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영광지역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을 것이다. 근래 영광지역의 적극적 활동이 미흡했던 이유는 여기에 기인한다.
다시 영광지역이 선봉장의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2015 영광 한빛원전 사건·사고
일자 |
사건·사고 |
2월 17일 4월 10일 4월 16일 6월 2일 6월 3일 7월 9일 7월 23일 8월 8일 8월 20일 |
4호기, 증기발생기 관막음 기준치 8%→18% 상향신청 3호기, 증기발생기 이물질 34개 미제거 상태 재가동 승인 3호기, 핵반응로 냉각재펌프 차단기 비정상 개방으로 핵반응로 정지 5호기, 가압기노즐 불량용접 폭로 2호기, 스위치야드 차단기 비정상 개방으로 원자로정지 제어봉 구동장치 하우징 용접부위 검사오류 6호기, 주급수펌프 윤활유펌프 정지로 출력감발 2호기, 변압기화재로 인한 핵반응로 냉각재펌프 정지로 핵반응로 정지 1호기, 저압급수가열기에서 튜브누설로 출력감발 |
박상은 통신원(핵없는세상광주·전남공동행동 운영위원장)
탈핵신문 2015년 9월호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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