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한빛핵발전소 중·저준위 핵폐기물 드럼통은 더 이상 쌓을 곳이 없다.
한빛핵발전소 중·저준위 핵폐기물 저장한계는 23,300드럼이며, 현재 22,918드럼으로 98.4%의 포화도를 보이고 있다. 올 연말이면 저장한계에 다다를 전망이다. 한수원은 경주 방폐장으로 올해 안에 1천 드럼을 옮기고, 이후 매년 2~3회씩 옮긴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위험한 핵쓰레기를 영광 밖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영광주민들의 요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주민들은 핵폐기물의 운송과정의 안전성 문제제기와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첫째는 해상운송의 안전성 검증과 사고 시 수습대책이다.
핵폐기물의 해상운송 시 안전성의 검증을, 요구에 따라 한수원과 원자력환경공단은 지난 10월 16일 검증활동의 일환으로 시험운항을 진행했다(9월 30일 진행하려 했으나 기상상태가 나빠 취소됐었다). 그러나 시험운항을 안전성 검증이라고 부르기는 민망하다. ‘뱃놀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주민들이 요구한 것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진행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실제 운항과는 동일한 조건에서 이뤄져야 검증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나, 16일 시험운항은 한빛핵발전소 물양장(物揚場,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부두의 바다 방향 수직으로 쌓은 벽, 편집자 주)에서 방사성폐기물(이하, 방폐물) 운반선인 청정누리호를 타고 7km 밖까지 나갔다가 배를 돌려 다시 물양장으로 돌아오는 것이 검증의 전부였다.
그나마 1천 드럼의 무게를 대신해 배에 물을 채워 무게를 맞춘 것이 과학적인(?) 배려의 전부다. 그런데 이 한번의 단 몇시간만의 운항으로 항로와 주변 해양생태계의 건전성 등을 검토하고, 조선·해양, 운송 안전성, 원자력 품질, 방재·비상대응 분야 등을 모두 검증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2천6백톤의 청정누리호가 서해안의 얕은 수심에 안전한가이다. 물양장에서 해상 3km까지는 간조 시 3~4.8m, 만조 시 8m이상으로 청정누리호가 필요한 수심 4m이상이 확보되고 항로는 암초나 수심 등의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1992년 4호기 부품운송 바지선, 2010년 36톤급 해파리 유입방지막 설치 예인선이 좌초되는 사고가 있었다. 좌초사고 배보다 70배 이상 큰 청정누리호가 해저지형 변화가 큰 상황에서 안정적 항로를 확보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안전성 검증방식은 주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한수원과 정부의 안전수준에 대한 인식이 주민들과 너무나 간극이 큼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고 수습 대책에 대한 인식의 간극은 더욱 크며, 더욱 가관이다.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을 가정하고 사고에 대비하고 있기에, 주민들이 우려하는 사고는 없을 것임으로 대책이 필요 없다는 식이며, 사고에 대비해 연안과 먼 영해기선을 따라 운항한다는 식이니 말이다. 부실하고 형식적인 안전성 검증과 이전의 좌초사고 선례뿐 아니라, 사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지역민들의 해상운송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주민들이 해상운송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수원과 정부가 ‘셀프차단(Self-Block)’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둘째는 해상운송으로 인한 조업손실의 보상 등 주민들과의 협상이다. 정부와 한수원의 주민들과의 협상과정은 불안과 분노를 부추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당초 한수원은 ‘주민설득 후 운송’이라는 방침을 세우고, 지난 3월까지 주민들과의 협상을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주민들의 광역해양조사, 방류제 철거, 조업손실 보상과 사고시 피해 및 수습대책 요구 등으로 다른 지역과 달리 협상이 난항에 빠지자 방침을 철회하고 한수원은 7월 24일 불연 원자력환경공단에 ‘방폐물 인수의뢰 신청서’를 제출하고 주민과의 협상포기를 선언(?)하고 일방적인 행보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수원은 주민들과의 협상에 형식과 내용에 있어 최선을 다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내용은 둘째치고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단 한차례의 핵폐기물의 해상운송 계획에 대한 주민설명회나 공청회 등을 진행해 본 적도 없다. 주민들이 아닌 행정과 의회만을 협상의 대상으로 암암리에 진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을 배제한 협상이 과연 주민들이 느끼고 있는 정서적 불안과 주민들의 요구를 명확히 반영할 수 있을까? 그러다보니 주민들의 안전성 요구에 대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숫자들만 오가는 기술적 안전성만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그나마 영광은 협상 테이블에라도 앉아보고 핵폐기물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운송된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 양반이다. 다른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은 위험천만한 핵쓰레기를 실은 배가 그 지역의 바다를 지나간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다른 지자체와 주민들을 대상으로는 협의나 설명자체를 진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긴급 피항지로 예정된 진도, 광양, 진해, 포항 4개 지역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영광 한빛핵발전소에서 경주 방폐장까지의 거리는 843km이며, 한빛핵발전소에서 출발해 15km 직선거리의 영해기선까지 나가서 영해기선을 따라 경주까지 먼 바닷길을 돌아서 가는 항로를 채택하고 있어서 48시간이나 걸린다. 최단거리 항로를 포기하고 영해기선을 항로로 택한 것은 안전을 위한 결정이 아니라, 최단거리 항로로 운행할 경우 항로상의 지자체와의 협의를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한 것이었다.
정부가 핵폐기장 부지선정에 나선 것은 1986년부터이다. 1995년 굴업도, 2003년 부안을 부지로 선정하려 했으나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2005년 경주, 군산, 포항, 영덕 중 주민투표로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하는 상식 밖의 방식으로 경주를 핵폐기장 부지로 결정했다. 그리고 10년후인 2015년 7월 핵폐기물을 반입하기 시작했다. 안전이라는 배려 따위(?)를 빼고도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핵산업계와 정부는 느긋했었다. 그들의 문제해결의 기본전술은 ‘불가피론’이었으니 말이다. 미루면 미룰수록 불가피론은 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지금 창고가 꽉 차서 더 이상 핵쓰레기를 쌓을 곳이 없어 애가 타는 것은 한수원이다. 창고가 꽉 차서 발전소를 운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답답한 것 또한 한수원이다. 주민들이 바쁠 이유는 없다. 애초에 요구했던 해상운송의 안전성 검증과 성실한 협상을 요구하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다른 지역과 해상운송의 안전성 검증 등을 함께 요구해나가야 할 것이다.
탈핵신문 2015년 11월
박상은 통신원(핵없는세상 광주전남행동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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