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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탈핵에너지전환 독일 국제회의와 몽골 우라늄광산 방문기

지난 31~12일까지 독일에서 개최된 탈핵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국제회의에 참석한 후, 베를린을 방문해 후쿠시마 4주기 탈핵집회 등에 참여했다. 이어 모스크바를 경유해 315~19일 몽골 도르노고비의 우라늄광산지역 방문하고, 관련 세미나 등에 참가한 내용을 소개한다.

 

독일 국제회의에서, 다양한 주제발표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입국신고서 없이 여권심사만으로 통과하니, 거의 20년전 개찰구 없는 기차역을 출입하던 경험이 떠올랐다. 11시가 넘어 중앙역 옆 엑설러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아침 괴테대학에 도착해 마틴랩 박사와 인사하고, 사전 기자간담회 자리에 참석했다. 일본 참가자들이 먼저 사진 자료를 포함해 후쿠시마사고 이후의 진행 실태와 도쿄방사능올림픽을 풍자한 포스터를 소개했다. 나는 한국-타이완-일본의 협력 상황, 일본의 책임과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고, 타이완의 비핵(非核)국가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소개했다.

33일 오전 승합차로 1시간 거리인 아놀드스타인의 니뮐러하우스에 도착했다. 나치에 저항하다 투옥된 전후 독일교회의 참회(나치에 협력했던 죄상에 대한 죄책고백)와 재건을 주도했던 마틴 니뮐러 목사 기념관이 있다는 것이 반갑고 존경스러웠다. 반나치독재, 민주화, 통일, 탈핵이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 헤센나사우지역 교회의 역사와 저력이 느껴진다. 일본 불교계 참석자들이 많았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쪽 인사들도 반가웠다.

에큐메니칼센터 대표의 환영인사 후 WCC(세계교회협의회) 조나단 프리드리히의 첫 발표가 이어졌는데 WCC 중앙위 선언문(Toward Nuclear Free World, 2014. 7)처럼 핵무기와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탈핵방안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윤리와 에너지와 정치 그리고 교회와 정치의 대화를 강조하는 등 발표자들이 차례로 맡은 주제에 관해 설명하고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독일의 탈핵선언을 결정한 것이 상식적인 여러 분야의 시민들이 모인 윤리위원회였던 것을 떠올리게 된다. 저녁식사 후에는 다큐멘타리 영상물이 상영되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이권호 목사가 참석했다. 둘째 날에는 바덴 풀다 다름슈타트 지역에서 개신교와 가톨릭교회의 활동사례를 발표했다.

점심 이후에는 후쿠시마 상황에 대해 일본의 여성 저널리스트 오시도리 마코 씨가 소개를 했고, 후쿠시마 사고지역 근처 이이다테무라에 대한 아이자와 씨의 설명에서는 아베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일본연합교단과 불교계측의 발표가 이어졌다. 해외를 다니면서 에너지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스님 등 다양한 분들이 계셨다. 일본어가 공식 통역되었기 때문에, 한국 측 네 명의 참가자들은 자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저녁시간에는 헤센나사우교회 대표가 참석한 환영축하연이 있었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활달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회의 3일째 먼저 일본YWCA의 가토 마사미, 카톨릭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대표한 미치노부 신부의 발표가 있었다.

이어 오전 11시부터 한국 참가자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안홍철 목사의 한국탈핵운동 전반과 핵그련(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연대)에 대한 소개, 김영희 수녀의 가톨릭 탈핵운동에 관한 소개가 있었다. 점심 후에는 박은실 국장이 YWCA의 탈핵운동에 관해 소개했고, 필자도 아시아탈핵연대운동에 관해 소개했다. 모두 성실히 준비를 했고, 발표 후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사회는 일본 아키야 마토루 목사가 진행했다. 후쿠시마사고와 플루토늄 문제 일본 불교에 소속된 미국인 조나단 왓츠는 불교계의 동아시아연대를 설명했다.

넷째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해 뢰머광장의 기독교아카데미 건물에서 공개적인 심포지엄이 진행되었다. 핵무기와 핵발전의 상관관계, 우라늄광산 문제, 후쿠시마의 진실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김영희 수녀님께서 꼼꼼히 기록하고 계셨다.

 

후쿠시마 4주기, 베를린 탈핵집회

37일 토요일 아침 기차로 4시간여를 달려 베를린 중앙역에서 U55지하철을 타고 브란덴부르크문에 도착했다. 그동안 페이스북으로 만났던 파독간호사 출신의 한정로 선생과 인사하고 일본 친구들도 만났다. 일본 주최측(sayonara-nukes-berlin.org)이 준비한 공연 후 행진이 시작되었다. 경찰이 선두에 서서 안내를 해 주는 모습이 마치 선봉대처럼 인상적이다. 트럭을 개조해 만든 선도차량과 젊은 여성들이 주축이 된 퍼포먼스와 거리 공연 등이 눈길을 끌며 축제같은 시위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핵무기와 핵발전을 함께 반대하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독일여성들을 중심으로 많은 독일인들이 적극 선두에 섰고, 필자도 주최측의 배려로 함께 선두에 섰다. 포츠담광장역 앞에서는 연사들이 나와 연설을 했고, 재일교포 차숙옥 씨도 짧은 연설을 했다. 주최측은 7백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일본시민단체는 독일에서 활동이 활발하다.

집회를 마치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함께 이야기했다. 안체 모르소바라는 동독출신 여성을 비롯해, 일본여성등 네 명이 함께했다. 통일 후 동독출신들의 비판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모두 친구가 되기로 하였으니, 탈핵을 향한 국제연대가 이런 것이리라. 베를린 세월호 집회 그룹과도 만났고 슈투트가르트의 EMS(복음선교연대)를 방문했다. 2016년 역사NGO활동가대회를 겸한 독일역사평화여행 준비 사전답사를 겸해 기차로 뉘렌베르크 라이프치히 함부르크 등을 돌아보고, 베를린에서 통일과 탈핵평화 작은 강연회 발표와 좌담을 하고 베를린공항을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

 

몽골 우라늄광산 주변 기형 가축 출산·사산고준위 핵폐기장 설치 추진, 주민들의 우려

모스크바를 경유해 316일 아침 몽골에 도착하니 몽골 환경단체 DMNN 베진 대표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호텔에 도착해 일본 참가자들과 통역자 체체크한드와 하루 울란바타르를 돌아보는 자유시간을 갖고, 17일 아침 두 대의 차량으로 남쪽 도르노고비 사막지역으로 이동했다.

워낙 먼 거리라 오후 늦게 도착해 게르에서 하루밤을 묵고 아침부터 개발현장을 방문했다. 중국국경 지역인데 프랑스 국경전력기업인 아레바사가 우라늄광산을 개발중인 곳이다. 유목민의 안내를 받아가며 노천광산 주변의 방사선측정기에서 3밀리시버트(mSv/h, 방사능 연간 허용 상한치는 1mSv/, 편집자 주)까지 올라간다. 가축의 출산시기여서 갓 태어나거나 사산된 염소새끼와 양을 볼 수 있었다. 동행한 수의학자는 즉석에서 해체된 양 장기 부위를 메스로 도려내 포르말린병에 담으면서 장기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르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울란바타르로 향했는데, 두차례나 도로에서 검문을 받았다. 외국인만 여권을 조사하니 이례적이라, 아레바사가 경찰에 연락해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어제 다녀온 우라늄광산지역의 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취재열기가 매우 높았고 그날 저녁 TV뉴스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다음날에는 농업대학 강당에서 공개세미나 겸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넓은 강당을 가득 메운 주민과 학생 등 수백명의 참가자들이 여러 연구자들의 결과발표를 경청하면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피해현실을 증언했다. 최승구 사무국장(반핵아시아액션)과 야마모토 씨가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몽골에 설치를 추진 중인 고준위 핵폐기물처리장의 위험성을 소개했다. 필자는 312일 충청남도청의 우라늄광산 개발 불허가가 정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소개했다.

행사를 마친 후 마지막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그간의 호의의 감사드렸고, 2017년 몽골에서의 국제회의 개최 필요성과 가능성을 의논했는데 몽골에서는 적극적이었다. 한달이 지난고, DMNN 베진 대표의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몽골정부가 세계우라늄심포지엄(414~16일 카나다 퀘벡주, uranium-network.org)에 참가하기 위한 출국을 허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집단항의 해외 메일이었다. 우라늄 모라트리움(채무지불유예)을 선언하자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는데, 핵발전이 기후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우라늄은 자연상태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탈핵의 첫 단추에 해당한다고 느껴졌다.

 

 

 

사진설명=3월 17일 몽골 도르노고비사막, 프랑스 아레바 우라늄광산 사업장 앞에서 몽골 환경단체 등 활동가들과 함께.

 사진제공=이대수

 

사진설명= 3월 7일 후쿠시마 4주년 브란덴부르크문을 출발한 시위대의 행진 모습

 

이대수(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201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