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위원장은 2015년 3월 11일~15일 일본 후쿠시마핵발전소 피해지역 등을 방문한 뒤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 일본 탐방기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탈핵신문은 오마이뉴스의 허락을 구해, 지난 4월호에 이어 필자의 원고를 연속으로 공동게재합니다. 이번 호는 지면 관계 상, ‘다시 찾은 후쿠시마 일본 탐방기’, “유령마을로 가라?…소련도 이렇게는 안 했다” 기사 후반부와, “‘어차피 피폭’…방사능 사토리 증후군 앓는 일본” 전문을 함께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전국 곳곳서 방사능쓰레기 소각…야만적이고 반생명적인 정책
또 부흥산업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방사능 쓰레기 소각로 건설은 어떠한가. 방사능 폐기물중간처리장 확보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는 방사능 쓰레기를 소각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방사능 쓰레기 소각을 생각하는 후쿠시마 연락회’의 와타 나카코 대표에 따르면, 방사능 쓰레기의 경우 Kg당 10만베크렐(Bq) 이하면 방사능 폐기물 처분장으로 향하지 않고 일반 쓰레기로 분류돼 소각된다고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소각시설이 후쿠시마현 내 19개 시·정·촌에 모두 24기가 존재한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지자체 소각시설로 방사능 쓰레기를 보내서 태워 없애고 있다.
소각로에서 날리는 소각재는 1~1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아주 작은 미립자다. 꽃가루보다 더 작다. 바람을 따라 소각재가 날아간다면, 일본 전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된다. 아베 정부와 일본 핵산업계의 목적은 방사능 쓰레기를 태워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방사능오염의 전국화 현상을 통해 후쿠시마 암환자 발생율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없애려는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정말이지 야만적이고 반생명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정부의 주민 피난 대책은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사고 당시 소련 정부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반인륜적이다. 소련은 연간 5밀리시버트(mSv/h) 이상 지역을 이주의무지역으로 지정했다. 연간 20밀리시버트(mSv/h) 미만 지역은 강제피난지역으로 설정했다. 또 1~5밀리시버트(mSv/h) 지역도 이주권리지역으로 지정했다. 특히 사고 이후 29년째인 지금까지도 핵발전소 반경 30km 안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통제구역으로 지정해두고 있다.
▲ 방사능오염을 제거한다는 제염사업은 집 앞 마당이나 지붕, 눈에 보이는 농경지 일부의 토양을 걷어내 검은색 비닐 포대에 담아 동네 곳곳에 쌓아두는 게 전부였다.
일본 정부의 무리한 제염작업과 주민귀환정책은 지역주민이 아닌 핵마피아집단의 재건과 토건세력을 위한 것일 뿐이다. 지난 40년간 대도시 전력공급을 위해 희생된 지역주민들은 핵발전소사고로 건강과 고향을 잃고 난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후쿠시마 부흥정책을 통해 지난 세월 핵발전산업으로 이익을 본 건설업계가 다시 핵발전소사고로 이익을 얻는 수혜자가 되었다. 포크레인과 검은 방사능 쓰레기 더미는 제염을 구실로 한 핵발전산업과 토건세력의 돈벌이 사업일 뿐이다. 방사능오염지역은 주민 귀환이 아니라 폐쇄지역으로 지정해야 하는 게 마땅한 조치다.
다음 목적지인 이이다테촌으로 향하는 버스 안, 만약 우리나라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후쿠시마 상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피폭’…방사능 사토리 증후군 앓는 일본
‘안전하다’는 정부 말만 믿고, 피난해야 할 곳으로 피난온 주민들
3월 12일 오후 무렵 이이다테촌무라(飯館村)에 도착했다. 사고 핵발전소에서 짧게는 30km, 멀게는 50km 떨어져있지만 고농도의 방사능에 오염되어있어 거주제한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지역은 핵발전소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만 풍향의 영향으로 고농도 방사능에 오염됐으나 일본 정부가 피난 구역을 ‘사고핵발전소로부터 반경 20km 이내’로 설정하는 바람에 한 달 이상 방치된 지역이다.
버스가 해발 약 600미터 지점에 오르자 차량 엔진이 휴식을 취한다. 이이다테무라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일행을 마중 나온 주민대표 오미야 씨가 말했다.
“이이다테촌은 산림이 전체 면적의 75%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연평균 기온이 10℃일 정도여서 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습니다. 300만 도쿄 인구가 살 수 있을 만큼 넓은 230㎢의 지역에 6,200여명이 살았던, 정말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집도 잃고 이웃도 잃고 정든 고향 땅 모든 걸 잃어버리고 4년째 난민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오미야 씨는 사고 당시 정부가 피난 지시를 엉터리로 해서 핵발전소 바로 옆 마을인 후타바마치(雙葉町) 주민 1,200여명이 이 지역으로 피난을 왔다고 했다. 이이다테무라가 방사능을 피해 피난을 떠나야 했던 이들의 피난지였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이다테무라야말로 피난지시가 내려졌어야 할 고농도 방사능오염 지역이었다. 오미야 씨에 따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 폭발 이후 2~4호기까지 연달아 폭발할 때인 3월14~15일 이이다테무라에는 많은 눈과 비가 내렸는데,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30~100마이크로시버트(μSv/h, 사고 전 통상 0.05μSv/h 수준과 비교하면 약 600배~2천배 가량 오염된 수치, 편집자 주)까지 올라갔다. 3월 21일 주민들이 마시는 음용수에선 요오드131이 965베크렐(Bq/kg, 당시 일본 음용수 기준치는 300Bq/kg으로, 3배 이상 오염된 상황, 편집자 주)이나 검출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정부의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아이들과 함께 이 물과 공기를 마시면서 살았다고 원통해했다.
일본 정부는 사고발생 한 달 후인 4월 12일이 돼서야 이이다테무라를 피난 지역으로 지정했다. 피난지가 다시 피난을 떠나야 하는 거주제한구역으로 지정된 거다. 고농도 방사능오염지역에서 무방비상태로 살던 주민들은 뒤늦게 피난을 떠나게 되었고, 6월말이 되어서야 이이다테무라를 모두 떠났다.
출입금지와 폐쇄해야 지역에서 진행 중인 제염작업과 주민복귀 정책
핵발전소 사고 4년이 지난 즈음에 찾은 이이다테무라는 제염작업이 한창이었다. 방사능오염을 제거한다는 제염사업은 말이 제염이지, 집 앞 마당이나 지붕, 눈에 보이는 농경지 일부의 토양 3~5cm를 걷어내서 검은 비닐 포대에 담아 동네 곳곳에 쌓아두는 것이다. 산림이 전체 면적의 75%를 차지하는 이이다테무라 전체를 제염한다는 것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다수 주거지가 산 밑에 위치해 있는데 집 앞 또는 농경지 위의 토양을 걷어내다 한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산에서 내려오는 방사능물질에 오염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생태계 먹이사슬을 통한,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들의 방사능 농축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도쿄대학 기무라 교수가 핵발전소에서 30~40km 떨어진 지역의 삼나무 잎의 세슘을 측정한 결과 지상에서 4m 높이의 잎에서 1만 200베크렐(Bq/kg)의 세슘이 측정됐다. 14m 높이의 잎에서는 2만 2,000베크렐(Bq/kg)이 검출됐다. 토양과 지하수에 축적된 방사능이 생태계 먹이사슬을 통해 광범위하게 농축되고 있는 상황을 드러낸 조사였다. 당시 조사결과가 공영방송 NHK에 방영되면서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제염작업이 이루어진 지점에, 가지고 간 방사능 계측기를 내려놓자 쉴 새 없이 경고음이 울려댔다. 수치는 17마이크로시버트(μSv/h). 이런 상황에선 제염을 중단하고 구소련의 체르노빌처럼 사람 출입을 금지하는 폐쇄지역으로 결정해야 한다. 제염작업을 하는 노동자들도 위험하고 복귀를 준비하며 이곳을 드나드는 주민들도 모두 위험한 상황이다.
▲ 17마이크로시버트(μSv/h), 구소련의 체르노빌처럼 사람 출입을 금지시키고 폐쇄지역으로 결정하는 게 마땅한 조치다.
현장에선 만난 주민은 “핵발전소는 고작 40년 가동하고 중단되었지만 주민들의 삶은 100년이 지나도 결코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과 자연, 이웃과의 연대, 일자리 등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들이 없다”고 호소했다.
주민들은 절망하며 자포자기…지역주민을 희생시키는 정부 정책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를 뜻하는 일본어로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돈벌이는 물론 출세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의 ‘3포 세대(결혼, 연애, 출산)’과 비슷한 표현이다.
‘사토리’란 단어를 끄집어 낸 이유는 핵발전소사고 피해지역을 돌며 만난 주민들과 제염작업자 등 때문이다. 그들은 신기할 정도로 방사능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제대로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제염작업을 하거나, 고농도방사능오염 지역에서 주민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집은 사고 핵발전소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사고 후 고농도오염지역으로 변해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동안 피난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연간 피폭 허용치(1mSv)를 훨씬 뛰어넘는 상황에서 살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지킬 수도 없는 방사능피폭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됐습니다.”
짧은 그의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그도 처음엔 이런 상황에 분노를 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일본 정부의 무시와 침묵뿐이었단다. 거기다 힘겨운 피난생활까지 더해지니 분노는 곧 절망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방사능오염은 무신경할 정도로 득도하게 됐다는 거다. 심각한 것은 현재 일본에는 이렇게 ‘방사능 사토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이이다테무라에 위치한 귀환곤란구역을 찾을 때다. 귀환곤란구역은 일본정부가 정한 이름이지만 연간 방사선량이 50mSv를 넘는 곳으로 정말이지 사람이 출입해서는 안 되는 초고농도 오염지역이다. 그런데 출입금지 바리케이트 안쪽 귀환곤란구역에서 차량 한대가 나오고 있었다. 차량에 타 있던 주민은 평상복 차림이었다. 심지어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역주민들이 매일 순번을 정해 마을 순찰을 돌기 위해 귀환곤란구역을 오가는 일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과 동행한 주민도 귀환곤란구역에 있는 자신의 집에 한 달에 몇 차례 가서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온다고 설명했다. 관청 허락만 받으면 주민들은 고농도 방사능오염지역 출입이 가능하고 가재도구의 외부 반출이 자유롭다는 거다.
제염작업자의 방사능 피폭도 심각한 상태였다. 작업자들은 고농도 오염지역에서 제염작업을 하면서 마스크와 헬멧 정도만 착용했을 뿐, 방사능쓰레기를 손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이다테무라에만 이런 제염작업자가 7천여명 정도고 전체규모로는 약 2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고현장 방문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착잡하다. 후쿠시마 사고발생 4년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와 핵산업계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부흥정책이라는 미명하에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를 지나간 일로 치부하고 ‘부흥에 힘쓰자’는 슬로건만 곳곳에 나부꼈다.
지역주민을 희생하고 건설업계와 핵발전소 산업만 살리려는 일본 정부의 ‘기민(棄民, 국민을 버리는, 편집자 주)정책’, 그것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4년을 맞은 일본의 실태였다.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 끝없는 피난생활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은 그저 주민들의 절규에 그치고 있었다.
일본에 이어 세계 5위의 핵발전 국가인 한국, 원전 밀집도만 놓고 보면 세계 1위인 우리나라, 후쿠시마의 공포가 한국에서 재현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2015.5월호 (제30호)
김혜정(환경운동연합 원전특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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