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일본 전력 소매 전면 자유화’ 된다는 것을 본지 지난 5월호에서 전한 바 있다(탈핵신문 30호 4면, “일본 2030년 핵발전 비율 20~22% 발표-내년 전력자유화로 핵마피아들의 ‘헛된 꿈’이 될 수도…”). 이에 대해 핵발전 추진파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이 점을 살펴보도록 한다.
일본 전력자유화 개요에 대해서는 본지 이번호 10면 “다른 장면⑯ - 송전과 배전의 구조, 전력자유화로 무엇이 바뀌는가?”를 참조하기 바란다.
핵발전을 유지하려는 일본정부와 기존 전력회사들
전력 소매가 전면 자유화되면, 지금까지 지역 독점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살 수밖에 없었던 일반가정에서도 전력회사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핵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거부하고, 자연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또 보다 저렴한 요금플랜으로 살 수도 있게 된다(단, 자연에너지로 만든 전기에 대해서는 이번 호 10면 “다른 장면⑯ - 송전과 배전의 구조, 재생가능에너지 접속 왜 거부됐는가?” 참조).
현재 일본의 전기요금은 ‘총괄원가방식’으로 결정되고 있다. 이는 전력회사가 자기 회사 자산에 보수율을 곱해 산출한 이윤에 필요경비를 더해 총 전기요금(총괄원가)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발전소라는 자산의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전력회사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이 요금 산출방식은 전력회사들이 핵발전소를 계속 만드는 원동력이 됐고, 그 결과 일본의 전기요금은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 되고 말았다. 이 방식이 내년도 전력 소매 전면 자유화로 폐지될 예정이다. “핵발전은 값싼 에너지”라는 추진파의 주장이 드디어 시험대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일본정부와 전력회사들은 핵발전 유지에 나섰다. 그 대책 중 하나는 핵발전으로 만든 전기의 가격보장이다. 영국사례를 참고로 했는데, 재생가능에너지의 ‘고정가격매입제도(FIT)’와 비슷한 말하자면 ‘핵발전판 FIT’이다. 정부가 기준가격을 설정하고, 시장가격이 그것을 밑돌면 차액을 전기요금에 얹어주거나 또는 세금으로 보태주는 것이다. 영국에선 기준가격이 시장가격의 두 배가 됐다. 반대로 시장가격이 더 비싸면 핵발전 사업자가 차액을 내게 되는데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핵발전과 가스화력의 건설 및 폐로비용을 비교해 보면 이해가 간다(표 참조).
[표]핵발전과 화력발전 비용 비교
|
핵발전 |
화력 | |
건설비 |
4200억엔(120만kW급) |
1620억엔(천연가스화력, 135만kW급) | |
폐로/폐지 |
기간 |
20~30년 |
1~2년 |
비용 |
550억~830억엔 ※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 사고 시 손해배상 비용 - 추가적 안전대책 비용 → 자유화로 비용회수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
최대 30억엔(50만kW 이하) |
* 출처, 아사히신문 2015년 3월 13일자를 필자가 수정
기준가격엔 폐로비용과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핵발전소 신규 건설비용 등이 포함되며, 심지어 이미 파탄이 분명한 핵연료사이클사업 운영비용까지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가 핵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선택하지 않아도 핵발전에 돈이 들어가게 돼 자유화의 의미도 크게 깎이게 된다.
또 하나는 2020년에 실시한다는 발·송전 분리의 연기 또는 알맹이 빼기다.
지금 일본 국회에서 심의 중에 있는 “발·송전 분리를 정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발·송전을 분리함에 있어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에 지장이 없는지를 검증해야 한다’는 규정이 부칙으로 달려 있고, ‘필요한 대책을 강구한다’고 규정돼 있다. 일본전기사업연합회(각 지역 독점 전력회사의 집합체로 핵발전 추진파의 중심 조직) 야기 마코토 회장(간사이전력 사장)은 지난 2월 기자회견에서 “검증결과에 따라서는 발·송전 분리 연기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개정안에선 발·송전 분리 방식을 ‘법적 분리’로 했는데, 이는 기존 전력회사를 분리시켜 만드는 송전회사를 기존 전력회사의 자회사로 남게 하는 방식이다. 이번 개정안 제정에 관여한 일본 경제산업성 전력시스템개혁전문위원회에선 이 ‘법적 분리안’과 송·배전 설비의 소유권을 기존 전력회사에 남기고, 운용만을 외부에 맡기는 ‘기능 분리안’의 두 가지만이 논의되었고, 송·배전 부문을 별도 회사로 하고 발전 및 소매회사와의 자본관계도 인정하지 않는 ‘소유권 분리’ 방식은 안조차 제시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자회사를 통해 앞으로도 송전을 지배하며 신규 발전업체에 대해 접속을 거부하거나 높은 송전요금을 요구할 여지가 남는다. 사실 규슈전력 등이 바로 지금 자연에너지에 대해 저지르고 있는 접속거부(이번 호 10면 “다른 장면⑯ - 송전과 배전의 구조, 재생가능에너지 접속 왜 거부됐는가?” 참조)는 이것이 기우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 전력 소매 자유화는 이미 지난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발·송전 분리는 그 마무리 단계로 자리매길 수 있다. 다만 이 순서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발·송전 분리는 신규 전력회사가 기존 전력회사와 같은 조건으로 소매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발·송전 분리는 소매 자유화보다 앞서가야 할 내용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송전 지배야말로 기존 전력회사가 자유화 이후에도 시장에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선이고 정치가 기존 전력회사를 위해 발·송전 분리를 마지막으로 미뤄 줬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잡아먹기 시작하는 전력회사…핵발전 비율 높은 회사, 궁지로 몰려
다만 핵발전 종언(終焉)의 단서 또한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전력 소매 전면 자유화 이후, 기존 전력회사의 라이벌은 신규 참여 업체들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각 지역에서 독점기업으로, 이해를 같이 하던 타 지역 전력회사들이 기존 관할지역을 넘어서 전기를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은 주부전력과 간사이전력의 관할지역에서 가전소매 체인점 80여 점포와 계약을 맺어, 작년 10월부터 공급을 시작했다. 주부전력 및 간사이전력 관할지역 내에서 자가(自家)발전의 잉여전력을 싸게 구입하고, 간사이전력과 주부전력에 송전요금을 내는 방식이다.
한편, 타사 관할지역 내에 자신의 발전소를 만드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과거에도 핵발전의 경우에 흔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구밀집지역에서 떨어진 곳에 핵발전소를 짓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현재 움직임은 타사 관할지역에 공급하기 위해 그 지역 내에 화력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특히 인구가 집중하는 수도권에서 두드러지다.
그러나 핵발전 의존도가 높은 간사이전력은 뒤떨어지고 있다. 4년 연속 적자경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스회사를 비롯한 신규 업체 또한 간사이전력의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2014년 10월 1일 현재, 간사이전력에서 고객 이탈건수는 총 9872건에 이르렀다(산케이WEST 2014년 11월 26일 기사).
고노 다이스케 편집위원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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