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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가까운 이웃 타이완, 민주화와 탈핵이 함께 간다~

가까운 이웃 타이완, 민주화와 탈핵이 함께 간다~

 

이대수(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일제 식민지배와 국민당 군사독재를 넘어선, 타이완의 민주화 역사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국정부가 일본에 타이완을 할양했고, 타이완은 일제 패망 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다.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1949년 대만으로 천도하면서 타이완의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었다. 타이페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 2·28화평공원 내 민주화역사관이 보여주듯이 타이완에 상륙한 국민당 정부는 계엄령을 발동하였고 1만명의 본성인(本省人, 대륙에서 조기 이주한 한족으로 대만 본토 출신, 편집자주)을 학살하면서 통치하였다.

이러한 계엄령하에서도 대만의 민주화 운동은 조금씩 진전되어 갔으며 장제스의 사망 이후 아들 장징궈의 유화정책, 1987년 계엄령 해제와 장징궈 총통 후 정당설립 허용과 언론자유도 증대되었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의 발전을 통해 국민당 일당독재를 끝내고 2000년 민주진보당(민진당, 현 제 1야당)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부터 탈핵운동은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는데, 1998년 독립파에 해당하는 대만 장로교회(PCT)는 핵발전소 반대를 선언하였고 민진당도 반핵발전소정책을 추진하였다. 민진당의 린이슝 대표 시절부터 반핵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왔고, 2002년 타이완에서 개최된 반핵아시아포럼에서 핵발전소 반대와 민주주의를 강조했었다. 한국의 민주화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면서 탈핵에 관해 무신경했던 한국 정치상황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한국의 핵마피아가 그만큼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8년 재집권한 국민당에 의해 핵발전소 추진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사진 설명 : 경제부앞에서 전국교사공회, GCAA 등의 단체들이 연대하여 노후핵발전소 폐로시위를 하고 있다.>



타이완과 중국, 양안관계를 알아야

중국과 타이완 사이의 양안(兩岸)관계는 군사적 긴장이 높아 진먼다오(金門島, 중국본토로부터 약 10km, 타이안으로부터 약 200km, 편집자 주)를 최전선으로 1958년 대량의 포격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2차 대전 중 중국을 대표해 연합군의 일원으로 활동해온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미·소 냉전시기에 높은 국제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경제성장도 달성하였다. 그러나 1979년 미·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국제적 위상은 급락하였고,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한국과는 단교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타이완 국민은 원주민과 본성인 그리고 외성인(外省人, 1949년 전후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에 패할 때 타이완으로 이주한 중국인, 편집자주)으로 구분된다. 크게는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성립된 중화민국과 국공내전에서 승리를 통해 1949년 출범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적 정통성 문제가 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또는 홍콩처럼 일국양제(一國兩制) 수준을 고수하고 있으며 타이완은 실질적인 독립국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타이완의 민주화는 외성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본성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친민진당 중심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최근 국민당 집권하에 양안관계가 급진전되면서 중국자본과 본토인들의 타이완 진출로 인해 시장잠식과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젊은 층의 불만이 커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올 봄 대규모 시위의 배경이었다.

 

<경제부 앞에서 간부 공무원과 시위대가 이야기하고 있다.>


불안한 핵발전소, 국민반대여론 높아타이완, 아시아 최초의 탈핵국가 가능성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의 파괴력에 충격을 받았던 세계를 향해, 1953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유엔 연설을 시작으로, 핵발전을 추진했다. 그리고 일본은 1966년 오이핵발전소 가동을 시작으로 한국과 타이완은 1970년대 후반 차례로 핵발전소를 가동하게 되었다. 이들 국가들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급속히 추진하면서 핵발전 신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뒷받침한다는 것이었다.

1978년 가동된 진산 제1핵발전소와 제2핵발전소 모두 인구 250만 타이페이 근교 해안가였고, 핵폐기물 처리장은 남부 란유섬에 설치되었는데 피해가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반대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타이완 핵발전소는 모두 미국의 GE(제너럴일렉트릭)와 웨스팅하우스가 참여했다. 핵발전 원천 기술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통제권을 가진 것이 미국이다. 그리고 제4핵발전소는 일본의 히다치가 참여하고 있어 일명 히노마루 원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역시 타이페이 동부 가까운 해안가 활성단층대에 속해 있어 지진과 쓰나미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후쿠시마사고를 계기로 불안감을 느낀 북부시민들의 대중적인 반핵운동이 전개되어 완공단계의 제4핵발전소 건설이 중단된 채 국민투표를 통한 결정으로 봉합된 상태이다. 집권 국민당의 여론지지는 바닥에 머물러 있다. 1백여 단체가 연대한 전국반핵행동 NNAAF가 대중적인 집회 시위를 이끌었고 그 중심에는 서있는 녹색공민행동연맹(GCAA)가 있다.

GCAA는 반핵활동가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타이완 곳곳에서 탈핵교육을 전개하였고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학교와 여성단체, 청년단체 등에서도 반핵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번 11월 말 지방선거에서 예상대로 집권 국민당은 참패했고 민진당은 큰 승리를 거두면서 향후 탈핵운동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는 한국과 비교할 때, 타이완은 아시아 최초의 탈핵국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발행일 : 2014.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