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에, 후쿠시마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온몸에 하얀 반점이 생긴 소를 트럭에서 내리려고 하는 모습, 경찰이 막고 있다.오하라츠나키 제공>
6월 20일 도쿄 도심 한복판에 난데없이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 소는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浪江町) ‘희망 목장’에서 왔다. 목장주인 요시자와 마사미(吉沢正巳)씨가 피폭된 소 한 마리를 트럭에 싣고 온 것이다. 소 몸에는 피폭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하얀 반점이 있다. 그날 요시자와 씨의 목적은 소와 함께 일본 농림수산성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구(舊) 경계구역 내 가축에 대해, 국가가 내린 살(殺)처분 명령의 철회, 피폭된 가축에 대한 조사연구 추진, 피폭 소들에 대한 사료 지원 등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요시자와 씨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약 14km 떨어진 나미에마치에서 약 300마리의 소를 키우는 축산인이었다. 그 지역은 소를 중심으로 축산 농업이 활발한 지역으로, 소 3500여 마리, 돼지 3만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반경 20km 지역이 경계구역으로 설정되어 주민들은 강제피난을 해야만 했다. 돌봐줄 주인이 없어진 가축들은 축사에서 무참히 굶어죽거나, 야생에 방치되어 마을을 헤매다니다가 도축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들도 방사능 피폭 염려 때문에 시장에 내보낼 수 없어 살처분 대상이 되었다. 요시자와 씨는 본인이 키운 소를 살처분할 것을 끝까지 거부했다. 그러나 시장에 내다 팔수도 없는 소를 애완으로 계속 키울 수도 없는 법이다.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 했으나 그럴 때마다 그의 머리를 스치는 것은 ‘나는 소지기로서 소를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진실을 알리는 증인으로서 소를 살리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여러 사람들의 조언과 지원을 받아 일반사단법인 ‘희망의 목장 후쿠시마’를 설립해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요시자와 씨와 같은 뜻으로 구 경계구역에서 계속해서 가축을 키우고 있는 농가는 13곳. 그곳에서 700여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 하얀 반점이 생긴 소는 요시자와 씨 목장에서 무려 10마리. 그 외의 목장에서도 여러 마리씩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이날 요시자와 씨가 소를 끌고 도쿄에 있는 농림수산성을 찾아간 것에는 이유가 있다. 가두에서 연설한 요시자와 씨는 지난 몇 달 동안 일본에서 큰 화재가 되었던 만화책 <맛의 달인>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맛의 달인>은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책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지만, 최근에 후쿠시마 제1원전 피해 현황을 소재로 다뤄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말았다. 해당 지자체나 정부는 ‘풍문(風聞,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 편집자 주) 피해를 조장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만화작가와 출판사를 상대로 연이어 거센 항의가 잇달았다. 이에 대해 요시자와 씨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로 인한 인체영향은 이 반점 소가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동안 오염된 목초를 통해 심각하게 내부피폭이 되어 버린 소의 몸에 반점이라는 이상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경종일 수밖에 없다. 그는 만화책 <맛의 달인> 파문에 대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본인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개입이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요시자와 씨가 이날 소와 함께 도쿄를 방문해 여론에 호소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보도되었다. 그러한 요시자와 씨의 행동에 대해 모든 후쿠시마현민의 마음이 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후쿠시마의 비교적 방사선량이 낮은 지역에서 여전히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 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다. “안전기준치 이하가 확보된 농산물도 요시자와 씨의 행동 때문에 시장에서 안 팔리게 된다”, “후쿠시마 부흥을 위한 노력에 찬 물을 끼얹는 행동이다” 등의 주장이다. 후쿠시마를 떠나는 사람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안전하다’는 정부의 주장을 믿으며, 피폭의 공포를 잊은 채 후쿠시마에 머무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 생긴 갈등과 균열은 심각하다. 일본 내 탈핵운동 진영에서도 ‘후쿠시마’를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의견차가 꽤 커 보인다.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국가의 책임의식 부재가 피해자 지원을 소홀히 하고, 결과적으로 모두의 생존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이것을 요시자와 씨가 말하는 ‘기민(棄民, 백성을 버리는)정책’ 말고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발행일 : 201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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