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미래
박혜령 (영덕핵발전소유치 백지화투쟁위 집행위원)
(사진 설명, 지난 4월 12일 밀양역 광장에서 열린 희망콘서트 '밀양의 봄' 행사장앞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김준한(신부, 밀양 대책위 상임대표), 이계삼(사무국장), 곽빛나, 박인화, 정상규, 위쪽 남어진, 장수민 씨다)
다섯 명의 청춘들이 밀양 송전탑 반대활동을 24시간 자원해, 대책위 사무실과 현장을 분주히 오가고 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 현장에서 만나, 왜 이들은 이곳에서 동고동락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들어봤다.
국민을 괴물로 만드는 ‘국가폭력’
박인화 활동가(21세)는 작년 10월말 국가폭력이 난무하는 밀양으로 향했고, 애초 2박 3일로 계획했던 일정은 점점 길어졌다. 공권력에 맞서 극렬하게 저항하는 주변 활동가들을 보면서, ‘나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지만, 저 친구처럼은 못하겠다’라고 생각했던 그가 단 이틀 만에 변했다. 주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탄압하는 거대한 공권력에, 어느 순간 그 친구와 같이 극렬하게 싸우고 있는 자신을 본 것이다.
‘싸운다고 결과가 바뀔까’라는 의문도 있었지만, 밀양 주민들이 터무니없이 부당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안 올 수는 없었다. 유한숙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던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한전의 일방적인 공사 강행에 좌절한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지만, 당일에도 공사헬기와 한전의 공사강행을 위한 경찰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다. 국가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억울하게 죽었다. 죽음 앞에도 아랑곳 않는 국가와 한전의 태도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경찰은 격렬하게 저항하는 그를 향해 욕을 하고 괴물처럼 대했다. “경찰에 분노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마치 한전의 경호원과 같이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처사가 불법이기 때문이죠. 남은 4개 현장의 싸움이 지속되는 한 주민들과 함께 현장에서 싸울 거예요.”
국가가 ‘배신’한 비폭력의 삶
남어진 활동가(19세)는 밀양에 공권력이 투입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게 되었다. 경찰이 주민들을 향해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주민들이 많이 다치는 것을 보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산꼭대기로 물과 음식을 나르고 경찰과의 거친 몸싸움이 있어도 힘들지 않다. 정작 가장 힘들고 안타까운 일은 대화와 존중이 사라지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회이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는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이익과 손해만 생각하며 움직이죠. 명령에 따라 공사를 강행하고 주민들을 폭력으로 막는 경찰의 모습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은, 수 없이 좌절하게 해요.”
그도 한편에선 가해자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해와 배려 없는 무지나 무관심, 무의식적인 행동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사회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민이 가해자가 될 것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 앞으로 남은 4개 현장에서 더 큰 싸움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몸도 마음도 더는 다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밀양을 위해 함께 싸우는 것이 비폭력의 삶이라는 그의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
나도 밀양이다!
장수민 활동가(41세)는 대전환경운동연합 활동 경력과 연구원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지난 해 10월 공사 재개 후 밀양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싸움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주민들에 대한 국가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는 지난 3월 밀양으로 이사했고, 현재 밀양의 주민으로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 싸움의 끝이 무엇일지 알 수 없지만, 밀양의 시민으로 살면서 대책위에서 함께할 것이다.
“탈핵의 문제는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 만큼 밀양 송전탑 문제와 탈핵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죠. 그리고 밀양의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가진 선의에, 끝까지 신뢰를 가지고 지켜보고 지원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상규 활동가(31세)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송전탑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와 희망버스에도 참여했으며, 2월 중순부터 상황실에 들어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평소 핵발전소는 나와는 거리가 먼 문제였어요. 밀양에 와서 이 문제가 내 삶과 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송전탑 건설이 핵발전소의 문제이며, 탈핵을 통해 송전탑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을 보고 많이 배웁니다.”
앞으로 주민들의 재산권과 건강권 침해에 대한 법률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지난 4월 초 밀양 법률 지원단이 발족했고, 앞으로 간사로 활동할 계획이다. 주민들의 정당한 보상과 구제가 이루어져 소송까지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힘들어도 함께 한다. 이것이 공동체다!
(사진설명: 2평남짓의 좁은 방안에 5~6대의 컴퓨터가 켜져있고, 벽에는 현장 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들이 가득 붙어있다. 상황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활동가들간에 짧은 회의들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다.)
곽빛나 활동가(26세)는 마창진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을 갓 시작한 새내기 시절 밀양으로 와서 2년을 함께 하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위험한 현장을 오가는 지금의 딸에 대해, 부모님은 평범하게 살 수 없는 딸의 미래를 걱정하신다. 하지만 그는 밀양 어르신들과 함께 자라고 성숙해지는 자신을 후회하지 않으며 건강한 20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밀양은 당장 내일 일도 예측할 수 없는 곳이에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전과 공권력에 대항해 싸우시는 분들 옆에 제가 끝까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정의롭게 싸우시는 분들이 마음의 상처가 작을 수 있도록, 그 곁을 지킬 거예요.”
“한 때는 이길 것 같은 순간도 있었고, 질 것 같은 절망과 초조함의 순간도 있었어요. 싸움의 끝이 패배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의롭게 싸우는 분들이 우리와 함께 많이 남아, 마을의 공동체를 지키는 한 우리에게 패배는 없고 밀양 송전탑 반대싸움은 승리의 싸움으로 계속 될 거예요.”
합의한 주민들과의 반목과 갈등, 공권력으로부터의 폭력에 대한 상처는 주민들의 삶에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이것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프로그램을 위한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그를 포함한 밀양주민 모두는 송전탑 싸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그 과정에서 갖게 된 상처와 보람, 신뢰와 갈등을 함께 나누고 극복해가는 평화의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국민의 호통에 정부는 응답하라!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수천명의 공권력을 앞세운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공사강행만이 아니다. 상동면 고정마을 고 유한숙 어르신이 돌아가신지 5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다. 유족들은 고인의 사인이 왜곡되었으므로 이를 바로 잡아달라고 호소하며 긴 시간을 견디고 있다.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송전탑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시종일관 고인의 죽음을 ‘개인사’로 치부하며 고인의 죽음을 능멸하고, 송전탑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밀양은 선처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정부에, 국가에 잘못을 지적하고 호통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가 외면한 밀양에서 주민들과 함께 상처를 나누고 치유의 책임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밀양의 희망의 미래는 이어질 것이다.
발행일 : 2014.5.28
'송전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 11일 밀양송전탑 행정대집행, 능멸의 정석은 이것이다 (0) | 2014.07.16 |
---|---|
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위한 시론(試論) - 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0) | 2014.07.16 |
청도345kV송전탑싸움 “밭 갈던 손으로 망루 오른 할머니를 잊지마세요” (0) | 2014.05.07 |
송전탑 대신 희망을 약속한, 1박2일 밀양 희망버스의 기록 (0) | 2013.12.12 |
내가 밀양이다. 밀양의 ‘외부세력’이 응답한다! (0) | 2013.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