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3주기, 동경에는 없고 서울에는 있다
진상현(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 이 칼럼은 월간 《통일한국》에 투고한 저자의 원고를, 탈핵신문이 각각 양해를 구한 후 게재한 것입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가 발생한지 올해로 3년이 되었다.
독자들에게 간단한 퀴즈 하나를 내보도록 하자. 후쿠시마 사고 3주기를 맞아 동경에는 없고 서울에는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바로 ‘탈핵 시장’이다.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사고국인 일본에는 없지만, 핵 없는 세상을 선언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국에는 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1년 사고 이후 일본에서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촉발된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는 그야말로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사고 직전까지만 해도 찬핵론자들은 핵발전의 부흥을 주창하며, ‘원자력 르네상스’를 선언했었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핵발전을 저탄소 에너지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처럼 황당한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사고 이후 일본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후쿠시마 사고 덕분에 독일과 스위스는 탈핵을 선언하게 되었으며, 핵발전 중주국인 프랑스조차 80%의 핵발전 비중을 2025년 50%까지 낮추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를 지켜본 다른 나라들이 이 정도로 충격을 받았으니, 일본 내에서도 핵발전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을 리가 없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2030년 핵발전 제로를 명기한 ‘혁신적 에너지·환경전략’을 2012년 9월에 발표했다. 이로써 일본에서도 핵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국가 선언이 공식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의 야심찬 계획은 석 달 뒤에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총리로 내정된 자민당이 정권을 재탈환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집권하고 있던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일본의 기술력으로 핵발전소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었지만,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소라는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탈(脫)핵만이 해답이라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했었다. 심지어는 2013년 독일 공영방송(ZDF)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서 핵마피아가 총리까지 배제시킬 정도로 위험한 폐쇄적인 집단이라며 경고할 정도였다.
반면에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하며,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군대를 보유하기 위해 평화헌법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야스쿠니 참배를 통해 주변 국가를 자극하고 있을 정도로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핵발전과 관련해서도 민주당 정권의 탈핵선언을 철회한 뒤, 핵발전 의존적인 국가로 회귀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민주당이 자민당의 찬핵노선을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핵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라는 점이다. 실제로 같은 자민당 소속의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3년에 젊은 정치인에 불과했던 아베를 간사장으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2005년에는 핵심 요직인 관방장관으로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각별했던 정치적 사제지간이 결별하게 되었던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 바로 핵발전이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탈핵으로 전환하게 되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2012년 8월에 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 건설현장을 다녀오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바위를 뚫고 들어가 가로 세로 2km의 대형 지하광장을 만든 모습을 본 뒤, 지반이 불안한 일본에서는 이런 시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처럼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사후처리가 일본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핵발전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이후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14년 2월 동경도지사 선거에서 탈핵시장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원전 즉시중단’ 공약을 내건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煕) 전 총리가 후보로 출마하면서, 아베 정권에 대항하는 대리전 성격의 선거가 진행되었다. 특히 고이즈미 전 총리의 탈핵 주장에 63.8%가 찬성한다는 설문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탈핵시장 선거전이 치열히 전개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이 연합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고이즈미 전 총리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는 탈핵후보들이 각각 20.2%와 19.6%로 분열된 덕분에, 마스조에 요이치 후보가 43.4%의 지지로 도지사에 당선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동경은 국민들이 바라는 탈핵시장이 아닌 찬핵시장이 정권을 장악하고 말았다.
반면에 서울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 탈핵 후보가 출마해 시정을 운영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11월 선거에 출마해 탈핵 공약을 제시해 당선된 이래로, 지금까지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탈핵 정책은 찬핵 성향의 이명박 정부로부터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담당 장관으로부터는 원전 하나 없는 서울시가 무슨 원전 줄이기냐며 비난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2014년 200만톤의 에너지절약 목표 가운데 67%인 134만톤을 2013년에 이미 달성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번 6월 선거에서 탈핵시장을 다시 배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새누리당의 유력한 시장후보인 정몽준 의원도 핵발전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이다. 후쿠시마 사고 3주기를 맞이해서 누가 되든지, 핵에너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서울시를 만들어줄 수 있는 시장이 당선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발행일 : 20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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