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3년 … 우리가 얻은 것과 놓친 것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2011년 : 핵발전과 에너지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
한국 현대사를 쓰면서 1987년과 1998년을 빼 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987년 6월 민중항쟁을 통해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었고, 1997년 외환위기와 노동자 대투쟁은 우리 사회전체를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과 양상은 다르지만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사고와 9월 915 정전사태는 그간 전문가 영역에 국한되어있던 핵발전과 에너지 문제를 우리 일상생활 앞으로 가져온 일대 사건이었다.
선진국, 그것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던 일본에서 벌어진 대형참사는 그간 ‘필요악’이라고까지 불리던 핵발전이 인류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석유 정점’이나 ‘에너지위기’ 같은 교과서적인 말로만 접했던 에너지문제를 이제 우리 국민은 전국적 정전사태와 전력대란을 통해 ‘위태로운 현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까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십수년동안 진행한 교육과 캠페인, 여타의 활동들을 뛰어넘는 변화였다. 특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누출에 따른 수산물 파동은 ‘방사능이 위험하다’하는 어떠한 캠페인보다 파급력이 컸다.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느낄 수 없는 방사능, 그리고 원산지를 속이면서 국내로 유입되는 일본산 수산물은 말 그대로 ‘공포’로 우리 국민들에게 다가왔고, 결국 전국의 수산시장이 개점휴업 상태로 들어가는 파국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3년, 무엇이 달라졌나?
2011년 이후 우리사회는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사고를 모르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핵발전에 대한 찬반논쟁은 언제나 뜨거운 주제이지만 ‘핵발전은 위험하다’는 명제는 이제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수원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었다(다만 이 위험은 통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을 뿐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전 진보진영에서조차 ‘반핵운동’은 ‘과격하고 대안없는 운동’으로 불리곤 했으나 이제 ‘탈핵’은 우리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후쿠시마 사고라는 뼈아픈 역사의 교훈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지지 못했을 소중한 성과이다. 지금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약 8만여명의 후쿠시마 주민들, 피난과 피폭스트레스, 생활고 등으로 세상을 등진 수많은 이들에게 한국사회는 소중한 빚을 졌다.
하지만 현 상황을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었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졌는가? 일본, 바로 옆 나라에 있는 대한민국의 핵발전정책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바뀌었는가? 전체적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면, 지난 3년간 단 한기의 핵발전소라도 멈추거나 건설이 백지화되었는가?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불안과 불만이 세상을 바꾼 적은 없다
인류 역사에서 불안과 공포, 세상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적은 많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것들은 세상을 바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일정한 방향성을 갖추지 못한 불만은 기득권 세력에게 이용당하거나 몇 가지 ‘당근’ 앞에 무력하게 무너져버린 예들이 많다.
소수의 활동가들과 지역주민들이 외로운 싸움을 하던 때는 이제 끝났다. 이제 ‘탈핵운동’에는 수많은 동지들이 생겼고, 자발적인 활동들이 전국적으로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3주기를 맞는 우리의 현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험하다’와 ‘불안하다’는 같은 자기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향해 ‘핵발전소를 없애라!’는 강한 요구와 실천이 이어져야 할 때이다.
그간 탈핵운동진영은 2012년 대선에 즈음해서 어느 때보다 강력한 ‘탈핵 요구’를 한바 있다. 그리고 그 여파로 당시 박근혜 후보는 ‘유보’와 ‘재검토’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언급들이 ‘핵발전 추진’을 은폐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나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핵발전소 백지화로, 그간의 기득권과 입지를 불안해하던 핵산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열심히 과거에 하던 일을 하고 있지만, 열심히 ‘탈핵’을 외치던 많은 이들은 과거만큼 높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어짜피 안되겠지…’ 푸념 역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단 한기의 핵발전소 폐쇄, 단 한곳의 신규 핵발전소 부지 백지화를 이루기위해 이제 우리는 다시 힘을 합치고 정부를 향해 요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앞으로 이 땅에 태어날 후손들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희생을 통해 인류에게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린 후쿠시마 주민들을 위해서 말이다.
발행일 : 20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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