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은 탈핵운동을,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우노다 요코 (오사카 거주, 1996년부터 반핵아시아포럼 멤버로 핵없는 미래를 지향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진피해 사망자 수를 추월한, 핵발전소 사고 관련 사망자수 ‘1671명’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부터 3년째인 올해 3월11일 14시 46분. 저는 그 시간을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南相馬市)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맞이했습니다. 시계가 46분을 가리켰을 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3년 전 이 순간에는 설마 이런 비극이 올 줄이야 우리는 아무도 몰랐지.”
주류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3주기 뉴스는 마치 지나간 과거 일을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 후쿠시마 지역신문의 1면 기사에 저는 눈이 끌렸습니다. 후쿠시마에서는 핵발전소 사고 이후 피난 과정에서 사망한, 소위 ‘핵발전소 사고 관련사(死)’ 사망자 수가 총 1671명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3월10일 현재). 직접적인 지진피해로 사망한 1603명을 추월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 수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후 알게 된 사실…“절대로 마음대로 도망갈 수 없다!”
후쿠시마 사고로 우리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우리는 절대로 마음대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정부는 지금 핵발전소 재가동을 강행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가동을 위한 안전심사 항목에는 주민을 위한 피난 계획의 여부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피폭을 면할 수 있도록 피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도망가려는 주민들의 차령으로 도로가 꽉 막혀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건강하고, 차량 등 이동수단을 가진 시민들조차 죽음의 공포를 눈앞에 두고 죽기살기로 도망 다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또 얼마나 큰 공포는 느꼈을까요.
미나미소마시의 예를 들어봅시다. 수소폭발이 일어났을 당시 미나마소마시는 긴급차량으로 버스를 운행했습니다. 그러나 TV와 라디오 등 홍보 수단이 모두 차단된 상황에서 버스 운행을 알리는 수단은 확성기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남게 된 분들이 있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입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주변에 사람이라는 사람이 온데간데없고 혼자가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핵발전소 부근 고령자시설이나 병원에서는 환자를 구출하는데 1주일 이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고령 환자 50명 이상이 사망한 병원도 있었습니다. 허리가 구부러지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환자를 관광버스에 짐을 싣듯이 태워야만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병원이나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직장을 떠날 것인지, 아니면 환자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각오로 남아야 할 것인지…”라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환자들과 함께 남은 직원들은 비상용 전원이 떨어져서 의료기구들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외롭게 구출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핵발전소만 없었다면 이런 비인간적인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아남아, 피난생활 중인 사람들도 생활의 어려움이 동반되고…
무사히 피난을 마친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는 생활은 마냥 쉽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사는 간사이(関西) 지역에도 방사능 오염을 피해 피난해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남편을 두고 아이와 단 둘이 피난해 왔습니다. 그러나 간사이 지역 사람들과 잘 사귈 수 없어 혼자 고립되었습니다. TV에서 바다를 볼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등 외로움 속에 우울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자식에게 폭력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와서는 아이를 데리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우울증이 악화된 그녀는 도쿄전력에 대한 복잡한 배상청구 서류를 챙길 기력조차 없어, 지금도 배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피난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약한 입장에 있을수록 피난 생활에도 어려움이 동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3주기, 지금 후쿠시마의 모습은 ‘스노우돔(SNOW DOME)’
후쿠시마에 가면 지금도 보통의 생활이 펼쳐져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슈퍼에는 상품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도,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람들은 이미 방사능 피폭과 함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어떤 피난민은 그런 후쿠시마의 모습을 ‘스노우돔(SNOW DOME)’이라고 표현합니다. “유리 안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면 모순과 상처, 그리고 무서운 방사능물질이 날아오른다. 그 모습은 마치 스노우돔 같다”라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일이 세계 어디에서도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핵발전소 수출은 이런 비극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탈핵을 갈망하는 목소리는 점점 식어가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의 기억은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부흥’을 노래하는 마치 축제와 같은, ‘스노우돔’ 속에 갇히지 않도록,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 옆에서 살아가기를 마음속에서 다짐합니다.
국경을 넘어 핵없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발행일 : 20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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