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합기사, 핵폐기물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왜 그리 하고 싶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왜 그리 하고 싶나?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미국-베트남 협정이 국내신문 1면 기사?

지난 27, 국내 언론은 일제히 미국과 베트남이 원자력협정을 맺은 소식을 다루었다. 한 보수일간지의 경우, 1면 탑기사로 미-베트남 원자력협정소식을 다루었고, 한 통신사는 1보 기사를 통해 대략적인 소식을 알린 후 이후 종합기사를 내는 속보형식으로 미-베트남 원자력협정 소식을 다루었다.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보이는 이 소식이 왜 이리 중요하게 다뤄졌을까?

 

핵기술과 핵물질은 핵무기 전용가능성 때문에 일반적인 수출-수입절차를 따르지 않고 국가간 협정을 통해 기술사용과 핵연료 사용범위를 정하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원자로 도입단계에서부터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고, 연구용 원자로와 상업용 핵발전소, 핵연료 등을 도입해왔다. 미국은 그간 원자력협정을 맺을 때 우라늄농축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금지하는 조항 소위 골드 스텐다드조항을 그간 넣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 조항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맺은 미국-베트남 원자력협정 조항에 우라늄 농축과 핵재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언론은 베트남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중있게 이 문제를 다루었다. 우리나라 역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서 이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수출하고 싶은 미국, 스스로의 원칙을 조금씩 무너뜨려

사실 이 소식은 그리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이미 작년말 미국-베트남 논의과정에서 골드 스텐다드조항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이미 러시아와 원자력협정을 맺고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체르노빌 핵사고 이후 극도로 위축된 세계 핵발전소 시장은 핵산업계 전체의 인수합병으로 이어졌는데, 대부분의 미국기업들은 일본에 인수합병되면서 영향력이 줄어드는데 비해, 러시아는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핵발전소 수출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미국은 국제사회 비난에도 불구하고 NPT 탈퇴국인 인도와도 원자력협정을 맺어 논란을 일으킨 바 있고, 베트남과의 협정에서도 협정문에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빼는 대신, 베트남 스스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의사가 없음을 밝히는 선에서 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간 미국은 스스로 핵무기 확산을 막기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왔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최근 핵산업계의 위축 앞에 자기 스스로 내세운 원칙마져 뒤흔드는 일이 계속 발생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조차 미국이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미원자력협정개정, 여론 몰이가 아니라 실익을 따져봐야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 정부와 일부 언론의 태도이다.

-베트남 원자력협정 소식이 들리자, 앞으로 진행될 한-미 원자력협정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스스로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꿔 말하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있는 약간의 여지만 보이면, 이것을 기회로 2가지 요구사항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이미 23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그간 단 한번도 우라늄 부족사태로 핵발전소 가동에 지장을 받은 적이 없다. 또한 세계 우라늄 시장은 최근 일본의 핵발전소 가동 중지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해체한 핵무기로 인해 어느 때보다 충분한 우라늄이 공급되고 있다. 심지어 낡은 설비로 몇 년째 경영합리화를 하던 미국 유일의 우라늄 농축공장인 미국농축공사(USEC) 퍼커두 공장이 작년 폐쇄되는 가하면, 최근에는 결국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우리나라가 우라늄 농축을 해야만 하는가? 특히 북한 핵무기와 일본의 우경화 등 동북아 핵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우라늄 농축은 북한과 일본에게 새로운 빌미를 줄 가능성까지 높다. 이는 핵재처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구를 위한 우라늄 농축, 핵재처리인지를 명확히 따져보는 노력 없이, ‘이제 우리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안일한 생각만으로 결코 이 문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동북아 평화와 핵없는 세계를 만들고자하는 그간 인류의 노력을 단 한번이라도 고려한다면, 우라늄 농축과 핵재처리 프로그램을 국내에 도입하자는 주장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주장이다. 정확하게 실익과 주변 정세를 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한미원자력협정 논의는 결국 우리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발행일 : 201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