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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기사, 핵폐기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일그러진 출범식


지난 1030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2004년 제253차 원자력위원회에서 중·저준위 폐기장과 고준위 핵폐기장 계획을 분리하고,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을 국민적 공감대하에 결정하겠다고 밝힌 지 10여년 만이다.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은 애초 시민사회단체가 제안한 방안이다. 하지만 지난 30일 출범식에선 시민사회단체 추천인사들이 위원 구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사퇴하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말 그대로 반쪽짜리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보수언론들은 환경단체가 국민을 핵폐기물 재앙으로 밀어넣으려고 하느냐며 맹비난에 나섰고, 일각에서 처음부터 판을 깨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소설같은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총리실 산하가 아닌, 산업부 산하의 자문기구라는 제한된 위상 문제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먼저 현재 구성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올해 2월 처음 제안될 때부터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다. 먼저 공론화위원회 위상이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문기구 성격이어서 범부처적 성격을 갖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미 미래부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 등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외교부에선 이를 지원하기 위해 한·미원자력협정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 매번 사용후핵연료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산업부와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미래부는 각자의 입장이 달라 서로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을 이해한다면, 산업부 산하의 자문기구라는 위상은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012년 당시 지경부 주도로 이뤄진 원자력정책포럼에서 조차 공론화위원회를 총리실 산하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권고안이 나왔으나, 총리실의 반대로 결국 이러한 내용은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현재 상황에선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을 핵산업 진흥이 주된 목적인 원자력진흥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하는 모순적인 순서를 밟게 생겼다.

 

산업부 스스로 밝힌 원칙조차 무너뜨린, 공론화위원 추천과 구성

둘째, 공론화위원 추천과정에서 시민사회와의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져 버렸다. 산업부는 2월부터 수차례 간담회를 거쳐, 지난 7월 공론화위원 선정을 위해 인력풀을 만든다며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에 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이 과정을 전후로 해서 공론화위원회 참여의사를 밝힌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기존 공론화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대화에 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일방적인 토론회 진행, 추천위원회 선임과 추천위원 비공개 등 대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뜨려버리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결국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토론회 불참 선언과 항의 성명 발표 등을 통해 정부의 일방적인 독주에 강력 항의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론화 위원 최종 추천과정에서 그나마 남아 있었던 신뢰마저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7월 당시 정부가 스스로 밝힌 공론화위원 구성 인문사회 6, 기술공학 2, 지자체 추천 2, 환경·시민단체·경제단체 4명 등 위원장을 제외한 14명의 구성을 지자체의 반발로 바꿔버린 것이다.

지난 7월 이후 핵발전소 인근지역 지자체에서는 2명의 배정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5개 지역이 모두 공론화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애초 산업부는 특정분야의 과다대표성을 방지하기 위해 참여비중을 적절히 조절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요구에 떠밀려 전체 위원 구성 중 1/3이 지역주민으로 구성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할 때 5개 지역의 의견을 2명의 위원이 반영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전체 위원의 숫자를 늘려 지자체 추천위원의 비중을 줄이거나, 특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늦은 공론화위원회 출범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조급함이 결국 자신들이 만든 원칙조차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논의에서 지역주민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공론화위원회의 주요 역할이 지자체에 대한 보상이나 지역선정 방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논란이 많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 중간저장의 필요성 문제에 대한 논란 등 국가 정책적 결정이 앞서 진행돼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정책적 논의보다 보상 중심의 논의를 선호하는 지자체의 입김에 좌우될 우려까지도 떠안고 말았다.

 

 

<이헌석 제공> 

공론화위원회에 대한 모니터링과 시민적 개입이 필요하다!

이렇게 구성된 공론화위원회가 앞으로 어떤 결과물을 내 놓을지 아직 알 수 없다. 특히 일부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는 인사들마저 빠지면서, 더욱 편향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농후해지고 말았다. 따라서 공론화위원회에 직접 참여를 하지는 않지만, 그 결정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개입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중심의 전력정책으로 인해 만들어진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다음세대가 아닌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해묵은 과제 중 하나이다. 사용후핵연료의 발생을 멈추고, 이미 만들어진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은 핵발전의 찬·반을 떠나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과제이다.

이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 공론화위원회가 지금 제기되는 비판에 대해 되돌아보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발행일 : 2013.11.1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